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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10. 2021

'바라봄'에 대하여

[책 리뷰] 명랑한 은둔자 | 캐럴라인 냅




바라봄에 대하여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아침마다 요가원에 가는데, 요가에선 내 몸과 마음을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내 호흡에, 마음에 집중하여 관찰하다 보면 그동안 등한시했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기에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선 관찰과 인내, 수용의 자세를 통한 꾸준한 수련이 필요하다.


책은 42살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캐럴라인 냅의 유고 에세이집이다. 냅은 수년간 불안정적인 자신의 상태를 끊임없이 관찰했고,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또 직시했다. 고립에 대하여, 관계에 대하여, 중독에 대하여, 상실에 대하여, 결함과 실수를 동반한 삶이었지만, 그녀는 결코 자기 자신을 외면하지 않은 채 바라보려 애썼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상태를 온전히 수용했고, 능동적으로 자신을 변화시켰다. 그녀의 글 속에는 살아가며 개인이 마주 봐야 하는 상처, 슬픔, 편견, 시선들이 느껴진다. 가장 솔직한 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의 소리를 속삭이는데, 그 모든 말들이 가슴에 묵직하게 와 닿는다.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며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의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는 것, 그 속에서 보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찾아낸다는 것, 남몰래 숨겨 왔던 사사로운 감정들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에는 여러 호흡이 필요했다. 그리고 조금씩, 천천히 그녀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바라본다. 갖은 생각들에 둘러싸여 '혼자'를 자처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생전 그녀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고독이 얼마나 쉽게 고립으로 변하는지,
마음을 달래던 자족감이 얼마나 쉽게 소격 감으로 대체되는지.
일단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고 나면 도로 돌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고독은 평화와 고요를 키우는 일이다.
하지만 고립은 두려움에 굴복하는 일이고,
우리가 두려움에 더 많이 굴복할수록 우리를 붙잡은 그것의 손아귀 힘은 더 세진다.
<명랑한 은둔자> P22


내면의 상처


되돌아본 2019년도는 나에게 큰 상처로 남은 해였다. 대학교 4학년,  진로 결정을 앞에 두고 나의 무능력함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큰 좌절과, 시련을 맞보았고, 나의 무능력함에서 오는 자격지심은, 일상적인 안부 질문조차 받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나에게로 향하는 시선들이 무서워 내 안으로 숨다 보니, 어느 순간 돌아본 나는 혼자 잠수 타는 것이 편한, 불편하고 예민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고독이 주는 편안함은 마치 나를 기만하듯, 밖으로 한 걸음 나서는 것도 두려운 고립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나는 순식간에 외부로부터 나의 눈과 귀를 막았다.


나와 상당 부분 닮아 있는 저자의 직관적인 관찰은, 바라보기 겁났던 나의 내면의 상처들을 직시하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내가 차마 말로 표현 못 했던 나의 작은 감정 하나하나까지 꼬집어 주었고,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긴 방황을 함께 공감해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아물 것이라 생각하며 방치해뒀던,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따끔거린다.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날들의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한 번쯤 외부로부터 도망쳐 '혼자'라는 틀 안에 갇혀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또 삶에 의문을 제기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무언가에 완전히 중독돼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책 속 그녀의 말들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나와 같이 그녀의 글로 인해 가장 깊숙이 숨겨뒀던 상처들이 어느 순간 지상으로 올라와 과거의 아픔을 직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냅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녀의 진솔한 목소리는 우리더러 용기를 내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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