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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11. 2021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것,

[책 리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히가시노 게이고

30여 년 동안 비어 있던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 삼인조 도둑 쇼타, 고헤이, 야쓰야. 자동차를 훔쳐 도망가던 도중 고장이 나는 바람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오래된 폐허에 숨게 된다. 그런데 이미 폐허가 된 가게 안으로 갑자기 편지 한 통이 떨어진다. 편지 안에는 '달 토끼'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어떤 여자의 절절한 고민이 적혀 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시간이 멈추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신비하고 특별한 공간, 나미야 잡화점. 이곳은 원래 잡다한 것을 파는 잡화점이지만, 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익명의 '고민 상담소'이기도 했다. 9월 13일 오전 0시부터 새벽까지, 단 하룻밤만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 창구가 부활한다.

내 답장이 도움이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본인들의 마음가짐이 좋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착하게 살자, 열심히 살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도 내 답장도 아무 소용이 없었겠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P199

고민에 대하여

학창 시절, 작은 고민 하나 생기면 세상이 무너질 듯 걱정하며 친구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2시간이나 넘게 전화기를 붙잡고 있곤 했다. 했던 말을 반복하며 신세한탄을 하다, 끝에는 '절대 말하면 안 돼!' 친구의 말하지 않겠다는 비밀 유지 서약을 받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소심한 고민이었는데 그땐 왜 그렇게 겁을 먹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야 그거 뭐 별것도 아니구먼!" 친구의 이 말 한마디면 나의 모든 고민은 해결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내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혼자 끙끙 싸매고 있다 고민이 해결된 후에야 "그런 일이 있었다" 하며 뒤늦게 슬쩍 말을 꺼내본다. 글쎄, 왜 그럴까. 이젠 '스스로' 고민을 해결해야 할 나이가 됐다고 생각해서일까? 나 말곤 아무도 대신 답을 못 내려 준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아니면 각자만의 길로 들어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친구들에게, 차마 징징거릴 자신이 없어서일까? 커가며 드는 생각이 하나 있는데,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참 힘들다는 것이다. 가쁘게 내가 걸어가는 방향만을 바라다보면, 나 말고 주위를 둘러보는 일이 참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내 심정을 스스로 잘 알다 보니, 괜한 역지사지의 마음이 들어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불현듯 나에게도 아무 고민이나 진지하게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참 좋겠다, 생각이 든다. 장난스러운 고민이든, 진지한 고민이든 간에,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대신 종일 머리를 싸매 주는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와, 그 뒤를 잇는 당찬 삼인조 도둑이 있어 그 마을 주민들이 참 부러웠다. 내가 만약 나미야 잡화점 근처에 살았다면, 나는 분명 할아버지를 많이 귀찮게 했을 것이다. 아무런 신경도 안 쓰고, 그저 내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니까. 어떠한 고민이든 상담자의 심정을 헤아려 진심을 담아 답장을 보내주는, 나미야 잡화점이 우리 집 근처에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가 들수록 어려운 선택지가 늘어간다. 눈치도, 괜한 자존심도, 불안도 함께 늘어가, 그 쉬웠던 '고민 상담'조차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당신의 선택이 옳습니다.' 이 한 마디면 모든 고민은 해결될 것 같은데, 그 말을 속시원히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사람이 '정답'을 얻기 위한 '고민'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저 '내'가 하는 결정에 '용기'와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조심스럽게 운을 뗄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할아버지의, 상담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감사해서 행복했고, 삼인조 도둑의 배려는 없었지만, 진지하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예뻐서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