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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11. 2021

사유에 대하여

[책 리뷰] 한나 아렌트의 말 | 한나 아렌트


사유에 대하여


나는 어려서부터 줄곧 ‘어른들 말씀 잘 들어야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이 곧 법인 냥 순응하며, 정해진 답을 찾는 연습에만 열중했다. 반항하지 않고, 주어진 규칙에 적응하여 정답을 잘 찾기만 한다면, 착한 아이라는 평을 받을 수 있었다. 20살, 끊임없이 지시를 받으며 자란 나에게, 대학은 다른 모양새의 새로운 ‘틀’을 정해주었다. 그 틀 안에선 나의 모든 결정은 자유였다. 하지만 처음 가져본 ‘자유’는 막막함으로 다가왔고, 나는 나만의 자유를 찾는 대신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나도 하고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 생각했다. 편안히 앞에 놓인 길만 걸으면 됐던 나에게, ‘사유’란 딱히 필요가 없었다.  

 

스물다섯.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을 따라가던 나는, ‘진로결정 앞에 우두커니 서버렸다. 졸업을 1 앞두고, 그제야  안의 눈이 떠졌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시키는 대로 움직였고,   듣는 착한 아이인데, 이젠 누가 나를 코치해주지?’ 비참하고 한심한 나의 모습에 참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든 해야 했고, 늦었지만 ‘라는 사람을 알기 위해 모든 문을 두드려봐야 했다. 나를 찾겠다 ‘생각함과 동시에, 아빠에게 말했다. 아직 아무것도 없고 나도  모르는 나이지만, 언젠가  나만의 길을 찾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때부터 나는  행위에 대한 ‘사유 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유럽, 독일의 경악스러운 범죄 뒤에, 아무런 생각도, 이념도, 동기도 없이 그저 권력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 평범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세상은 경악했다. 이에 한나 아렌트는 ‘남들에게 동조하기 ‘우리라고 말하고 싶어 하기만으로도 역사상 가장 극악한 범죄가 자행되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부정하고 싶지만 과거의 나는, ‘아돌프 아이히만 매우 닮아 있었다. 그저 부모님과 학교, 사회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였고, 정답이라고 하는 것을 비판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했다. 누군가   눈을 암흑으로 가린 , 나의 행위에 대한 ‘사고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례는 주위에서도 흔하게 발견할  있다


그렇기에 아렌트 ‘스스로 사유하라강조한다. 멈춰서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보라 말한다. 아렌트가 그토록 강조한 ‘사유 그런 게 아닐까. 편안히 정해진 틀에 순종해 그저 고개 끄덕이며 따라가는 것이 아닌, ‘만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볼  있는 힘을 갖는 .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있는 지혜를 갖는 . 나만의 주관을 만드는 . 사유의 무능력 개인을 넘어 사회로까지 이어질 경우, '사유'하지 않는 자들에 의한 제2의 아이히만의 출현을 막을  없을 것이다.

 








정치적 사유에 대하여


‘사유의 무능력’은 사회에도 손쉽게 발견된다. 힘과 자본은 개인의 ‘사유’를 막고 권력자의 말에 군말 없이 따르길 원한다. 끊임없이 가상의 적을 만들고, 작은 선동을 일으켜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오늘날, 사실관계 여부와는 상관없이, 언론의 자극적 기사 한 줄만으로 손쉽게 마녀사냥과 물타기가 이루어지는 것만을 보고도, 많은 이들이 누군가의 이익관계로부터 쏟아지는 정보를 ‘비판적 사유’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제공함과 동시에, 무분별한 정보 주입으로 사람들의 사유를 앗아가 버린다.   

 

조지 오웰 <1984>를 읽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전체주의 사상에 환멸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역사를 조작하고,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가상의 적을 만들어 선동을 일으키는 그 추악함에 책을 읽으며 경악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도 아직까지 그날의 찝찝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네 현실 속 온갖 형태로 깊숙이 박힌 전체주의 정신을 외면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힘과 권력에 의해 손쉽게 흔들리는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며, 온 세상에 추악함이 ‘사회’라는 옷을 입고 버젓이 지키고 서있는 듯 느껴진다. 역사는 ‘힘 있는 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권력자가 꿈꾸는 세상이, 온갖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그렇기에 우리는 ‘남’의 생각이 ‘나’의 생각인 양 끌려다니지 않고, 끔찍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아렌트의 단단한 말들에 주목해야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가 해야 할 정치적 사유란, 작은 선동에 쉽게 끌려가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되, 어느 한쪽으로도 경도되지 않는 것. 세상은 집단의 ‘이익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고, 누군가의 주장에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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