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린씌 Apr 11. 2021

사유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악이다

[책리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인간이 얼마나 ‘악’해야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총구를 들이밀 수 있을까. 얼마나 ‘악’해야 죽은 사람들을 보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나치 정당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 이 악명 높은 대학살은 1945년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약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스에 의해 학살되었다. 그리고 최종 해결책인 대학살이 자행될 때, 유대인의 강제 이주 문제를 전적으로 다룬 사람이 바로 나치스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독일의 패전 후, 아이히만은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짜 이름으로 15년간 생활하다가, 이스라엘의 비밀 요원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잡지사의 도움을 받아 취재를 하러 간다. 1961년 12월 이스라엘 예루살렘 법정에 서게 된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는 그의 생애부터, 나치 정당에 가입해 유대인 학살을 감행하게 된 이유 그리고 처형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을 낱낱이 담아놨다. 그녀의 공판 기록서로 인하여, 과거 전기 설비회사의 판매부에서 일하던 평범했던 사람이 어떻게 학살의 주요인물이 되었는지, 유대인 학살을 도와준 자들은 누구인지, 학살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등 조용히 묻힐 뻔했던 이야기들이 세상에 밝혀진다.  



아돌프 아이히만 | 나는 괴물이 아니다.


공판에서 무려 33차례 심문대에 선 아이히만. 그는 15개 기소 항목 모두 유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끝까지 의기양양한 태도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의 당당한 태도에 세상은 경악했고,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그의 정신 상태를 검사했다. ‘살인에 대한 위험하고 탐욕스러운 충동에 사로잡혀, 도착적이고 가학적인 성격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사람은, 끔찍하게도 너무도 정상일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온 평범한 사람이었다. 유대인에 대한 어떠한 거부감도 없었으며, 명령받은 일을 즉각 처리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거대한 악의 이면에 신념도, 악의도, 동기도 없었다. 그저 권위자의 말에 따라 순종적으로 움직이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거부한 평범한 사람만이 존재했다.


전 지시대로 했습니다. 명령을 따라야 했죠. 그 사람들이 죽든 말든 명령은 수행해야 합니다.
행정적인 절차니까요. 그 가운데 일부를 제가 맡은 것 뿐입니다. 저는 무죄입니다.
전 유대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







Banality Of Evil | 악의 평범성


놀랍도록 평범한 한 사람의 범죄에는 ‘대단히 특별한 악’은 없었다. 600만 명의 죽음 뒤에는 허무하게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거부한 무능력한 사람이 서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언제나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진부하고 평범한 것이라 말한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악’이 존재한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 비판적 사고 없이, 그저 주어진 상황에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순종적인 어느 누구에게라도,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악’이 발현될 수 있고,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그렇기에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임은, 나치 전범들뿐만 아니라, 상황을 보고도 모른 척한 독일 국민들 모두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제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세상에 일어나는 각양각색의 범죄들을 보며, 어떻게 같은 인간이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기가 찼다. 분명 ‘나’와는 다른 차원의 사람일 것이라고 확신에 찬 듯 말하곤 했다. 하지만 타인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고, 스스로 비판적으로 사유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무섭도록 간단한 명제를 듣고는, 많은 생각이 든다. "권위자의 부당한 조치에 반박할 수 있으며, 나만의 사유를 통해 옳고 그름을 가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엄청난 절대악은 평범성, 즉 생각하기의 무능, 말하기의 무능, 판단하기의 무능에서 비롯된다.   


생각이라는 바람을 표명하는 건 지식의 돛이 아니라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말할 능력이에요.
내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생각의 힘으로 예기치 않은 일이 닥칠 때 파국을 막는 거에요.
-한나 아렌트


*다음 글 <한나 아렌트 - 사유에 대하여>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