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을 만들고 싶어 졌다. 먼 미래의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준비하던 일이 허공에 흩어지고 시간이 남아도니 당장 생각나는 게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평소 그리던 그림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인체 비율을 맞춘 탄탄한 드로잉보다는 휘갈긴 느낌의 자유로운 드로잉을 선호한다. 사실 묘사보다는 과장된 묘사를 좋아한다.
그런데 살면서 그것들을 깊게 판 적은 없었다. 늘 그리던 대로 그렸고 마음에 들면 인스타에 올렸지.
하지만 책을 만들 거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몇 세의 누구든 매력적으로 느껴질 색감과 그림체를 가져야 했다.
그런데 이 그림체라는 것이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알 수가 없어진다. 도전하는 것의 30%만 그럴싸해 보인다. 그마저도 내 기준일 뿐 다른 사람 눈엔 어찌 보일지 모른다. 내가 목표한 날짜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림체에 대한 고민은 방사형으로 커져만 간다.
오늘도 그림을 그렸다. 좋아하는 작가의 텍스쳐를 연구하며 새로운 그림을 그렸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한 장의 그림을 완성했다는데 의의를 두었다. 그림을 정리하려고 다른 종이들을 모으다가 첫 연구 때 그린 그림을 보았다.
오늘 내가 그린 그림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왜 결과물이 퇴화됐지?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엔 다르게 그려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잘 시간이 다가왔으니 일단은 붓을 내려놨다.
그렇게 밤이 되고, 나는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을 하다 이어폰 줄이 엉켰고 그걸 풀기 위해 윗몸을 일으켰다.
불도 안 켜고 손의 감각과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실루엣에 의존해 줄을 풀고 있다. 어딘가가 단단히 걸렸는지 아예 당겨지지조차 않는다. 그럼 다른 쪽을 당겨본다. 역시나 풀리지 않는다. 그럴 땐 꽉 묶인 핵심부를 더듬어야 한다. 묶인 틈새 구멍을 넓혀야 줄 전체에 여유가 생기니까.
앉은 자세로 한참을 이어폰과 씨름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상황이 딱 꼬인 이어폰 줄이네.
뭘 어떻게 시도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채로 일단 아무거나 시도해본다. 아크릴 물감, 오일파스텔, 콜라주, 펜화 어떻게든 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늘 확답은 얻지 못하는 기뷴.
시험을 또는 졸업을 준비할 땐 자유를 갈망했다. 그 일에 매여있지만 않았다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막상 할 일이 없어지니 좋아하던 그림에서부터 스텝이 꼬인다. 이곳은 자유로라 아무도 나를 안내하지 않는다.
망망대해보다 넓고 밤보다 어두운 상자 속에 갇혀있다. 어디로 가는지 맞게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나는 무조건 옳다는 믿음 하나 달랑 쥐고 걷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