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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Aug 03. 2021

전화 공포증이 사라진 이유

말 한마디가 주는 작지만 강한 힘




    나는 전화를 싫어했다. 배달앱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주문 전화를 하는 게 싫어서 배달도 시키지 않았고, 병원 예약을 할 때도 전화를 걸기까지 수십 번 고민을 해야 했다. 대학생 때는 동아리 선배들에게 행사 안내 전화를 드렸어야만 했는데, 그럴 때면 대본을 쓰고 시뮬레이션을 열심히 돌린 다음에야 겨우겨우 전화를 걸 수 있었다. 타인과의 전화통화를 극히 꺼려하는 탓에 내 통화 기록에는 가족들 이름만 줄줄이 적혀있을 때가 많았다.


    인턴을 시작하고 나서 전화 응대 업무를 맡았을 때는 두피에서 식은땀이 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큰일이지. 아는 사람이랑 전화하는 것도 힘든 와중에 모르는 사람이랑 전화를 해야 한다니. 차마 '전화 공포증이 있어서 응대 업무를 못할 것 같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없을뿐더러, 회사 생활을 하려면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 알고는 있지만 영 내키지 않는 건 똑같다. 자리에 놓인 내선 전화를 보면서 제발 울리지 말아라, 울리지 말아라 염원했다. 물론 그런 주술은 통하지 않는다.


    내내 고요하던 내선 전화가 따르릉, 하고 처음 울렸을 때는 움찔하고 놀랐다. 고요한 사무실을 울리는 이 소리를 잠재우려면 얼른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나는 전화벨이 세 번 울리는 동안 차분히 심호흡을 하고, 인사말을 생각하고, 입술을 축인 다음 머뭇거리면서 수화기로 손을 뻗었다.


    "네, 감사합니다. OOOO센터 김xx입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걸 놓칠 세라 얼른 펜 하나와 이면지를 끌어왔다. 업무에 투입된 지 겨우 일주일 되었으니 나한테 물어봤자 아는 게 없다. 네, 네에…. 아, 그건 제가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넵, 감사합니다…. 용건만 듣고 전화를 끊으려다 순간 드는 생각에 후다닥 말을 있는다. 아, 전화 주신 분 성함이랑 소속 좀 알려주시겠어요? 다급한 내 목소리가 고요한 사무실을 울린다. 순간 민망해져서 얼굴이 좀 더워지는 게 느껴졌다. 상대의 대답을 대충 휘갈겨 쓰고 다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문의 내용을 상사분께 공유하고, 이렇게 답변드리라는 답이 돌아오면 다시 수화기를 든다. 전화를 거는 순간에도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머릿속으로 대본을 줄줄 써보고, 또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건다.


    그렇게 한 통의 전화를 해결하고 나면 어쩐지 기운이 쏙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심란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해야지. 걱정해봤자 나아질 것도 없으므로 이내 생각을 툴툴 털어버린다.


    입사를 한 지 두 달이 훌쩍 지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나의 '전화 공포증'에도 나름대로 큰 변화가 생겼다.


    우선 전화가 오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일을 하다가도 내선 전화가 울리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전화를 받는다. 인사말도 이제는 기계적으로 나온다. 아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비교적 능숙하게 하고, 모르는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대응한다. 가끔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웃어주기도 하고,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다시 연락 달라는 말로 전화를 끊기도 한다. 이제는 전화를 거는 일도 익숙해져서, 급한 용건은 전화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가끔씩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진상'의 전화를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담당 업무가 아니니 담당자에게 전화를 돌려주겠다는 말에 이런 것도 모르냐며 반말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인이 공지된 내용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선 안내가 엉망이라면서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타인에게 이런 식의 무례함은 살아생전 겪어본 적이 없는 터라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고 심장이 두근댔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 이해했음을 알고 난 후에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한 10분 간은 전화 내용을 곱씹고, 그 신경질적인 말투를 되뇌게 된다. 그러다 그들로 인해 내 기분이 잠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최대한 감정을 환기시키려 노력한다. 내 잘못은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응대한 나 자신을 칭찬해준다.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스스로의 무례함을 알아채지 못하는 그들을 조금쯤 안쓰럽게 생각하기도 하면서.


    하지만 그런 생각도 한다. 매일 그런 전화만 받았다면 나의 전화 공포증이 더욱 심해졌을 거라고. 나를 하대하는 식의 전화가 계속해서 온다면, 전화를 무서워하는 마음은 더욱 커졌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전화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례한 사람들의 말보다 더 큰 힘을 가진 말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교육에 관련한 문의 전화가 왔다. 우리 쪽에서 운영하는 교육이 아니었지만 혹시 모르니 해당 내용을 확인하고 다시 연락을 주겠노라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알고 보니 다른 기관에서 운영 중인 교육이었고, 이를 안내하려 다시 수화기를 들으려던 찰나 같은 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유, 죄송합니다. 제가 기관을 잘못 알고 전화를 드렸네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들려오는 말에 나도 웃으며 안 그래도 해당 기관 연락처 안내 전화드리려 했다 말씀드렸다. 그분은 이미 연락처를 받아서 괜찮다고 말씀하시며, 바쁘실 텐데 죄송하다는 말씀을 거듭해서 하셨다. 죄송할 일이 아님에도 말이다. 전화를 끊으며 그분은 '친절하게 답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셨다. 그날은 유난히 몸이 피곤했던 날이었는데, 그 말 하나에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전화 응대를 하며 말이 가지는 힘을 더욱 체감하게 된다. '수고 많으십니다.'라는 인사말로 전화를 시작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는 이들을 보면 별 거 아닌 일임에도 그날 하루 기분이 좋고 뿌듯해진다. 단순히 전화 예의를 잘 갖췄다는 느낌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말의 힘을 잘 아는 이들이라는 인상강하게 받는다.


    때때로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이가 건넨 단 한마디의 말에 무너지기도 하고 일으켜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일으킬 만큼 멋진 말을 하겠다는, 그런 거창한 포부는 접어두고 싶다. 다만 나 스스로 말로써 누군가를 무너뜨리지 않기를 소망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무너져가는 이들을 받쳐줄 수 있는 등받이 역할 정도는 할 수 있기를 꿈꾼다.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면서, 이 글을 볼 누군가에게도 전하고 싶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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