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로진 Jun 24. 2022

사랑은 어려워

SICFF, <운명을 찾아서>, <수네-여름축제 대소동>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주인공들이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들을 알아차리는 과정들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어른들의 욕망 가득한 눈빛이 아니라, 세상에 진짜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확인해가는 과정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으른의 연애'라는 것들이, 때로는 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때 청소년들의 사랑이야기는 얼마나 상큼한가.


이번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 참여하면서 청량감 같은 것들을 느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여름밤에 평상에 앉아서 수박을 퍼먹었던 날이 떠오른다. 이제는 열대야를 견딜 수도 없고, 평상 같은 게 있을리 만무하며 수박은 한 통에 2만 원 한다.


이따금 누구를 좋아하는 일이 왠지 죄스러웠는데, 죄의식의 근원은 당연히 모른다.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경이를 맛보지 않고 죽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대사가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너무도 추상적이다. 어쩌면 나는 죽지도 못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 일찍이 사랑을 찾아 떠나는 아이들이 있다.


안우연 학생은 아주 어릴 때부터 모든 여자들에게 거절만 당해왔다. 이럴수가. 맨날 차이고 차이고 또 차인다. 어른인 나의 눈에는 왜 차이는지 알 것 같은데... 안우연 학생은 모르는 듯하다.


혼자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종이학 천 마리를 접어주고, 웬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주고... 스크린 밖에 안우연 학생이 있다면 더 이상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에 안우연 학생이 있다면 스웨덴에는 수네(sune)가 있다. 수네는 거의 아기 때(?)부터 소피와 연인사이이다. 소피와 수네의 가족은 미드소마 기간에 미슐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여름축제를 즐기기로 한다. 미슐트는 여름축제가 유명하고, 메이트리에 링을 만들어 운명의 짝을 찾곤 한다.


수네는 영화 속 장면에 감화를 받아 소피를 찾아가는데, 영화처럼 샴페인과 굴을 싸들고 간다. 하지만 소피는 피자를 좋아하는 아이이다. 우리의 우연이가 일방적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가듯이. 그래서 "이거 네 거야." "내 거 아니야." "네 거라니까?"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차이듯이 수네 역시  장렬하게 차인다.


우연이는 어딘가에 운명 같은 사랑이 우연이를 기다리고 있어, 그 사랑을 만나기만 하면 상처받지도, 헤어지지도 않을 거라고 믿는다.


수네는 소피와 결혼까지 할 마음으로 여름축제를 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엄마아빠가 여름축제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반드시 여름축제에서 소피를 고리에 걸어야 하는 것이다. 우연이가 운명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수네도 운명을 믿는다.


우연이는 운명탐지기를 만든다(엄청난 실력자이다). 운명탐지기는 운명의 신호를 따라 우연을 인도한다. 우연은 우연히(아마도 그런 이유로 작명한 듯하다) 여자아이를 만나는데, 탐지기가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운명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이 여자아이는 이유도 없이 우연을 따라나선다. 



수네는 소피의 떠난 마음을 돌려보고자 미슐트에 사는 아이 알렉스와 작당모의를 한다. '질투심 유발' 따위의 뻔한 술수이다. 알렉스는 당뇨 환자이고, 마을의 지분을 각각 1/3씩 가진 레즈비언 엄마들이 있고, 그들은 지금 이혼한 상황. 알렉스는 수네를 돕는 대신, 나머지 지분 1/3을 가진 수네의 엄마가 알렉스의 엄마들 중 누구에게도 집을 팔지 말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여름축제를 열어야 소피를 잡을 수 있다고 크게 착각한 수네는 엄마에게 축제를 열어주는 쪽에 집을 팔라고 설득하는 배신을 때리고야 만다. 모든 것이 들통나고, 소피는 축제를 다른 친구네 집에서 보내겠다며 떠나버린다. 수네는 영화 속 장면처럼 소피를 따라가지만 소피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하이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엔 다 잘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연에게 운명적인 사랑이 곧 찾아올 거라는 것도 알고, 수네와 소피가 화해할 거라는 것도 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 그리고 순수하고 풋풋한 장면들이 하이틴 영화의 묘미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나!'에 매몰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해 주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사랑일 것이다. 청소년기는 더욱이 자기중심성이 강한 시기라 자신의 사랑이 이 세상 제일가는 절절한 사랑인 줄 안다. 자기 마음대로 학을 접어주고, 케익을 만들고, 좋아하지도 않는 굴을 선물하는 것이 사랑이고,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우연이도, 수네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가 주고 싶은 게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두 영화를 보면서 여러모로 아차 싶을 때가 많았다. 나는 어른이지만 아직도 사랑이 어렵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사랑이 쉬워질까?


 


작가의 이전글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