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르에서의 기다림

고흐를 만나러 간 곳에서 나를 만나다

by 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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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9년 전 봄, 나는 파리에서 첫 기차를 타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했다. 오베르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나에겐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나를 다시 살게 한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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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미술 유치원을 다니며 화가의 꿈을 꾸었지만 현실과 타협했고, 그 꿈은 점점 멀어졌다. 화가라는 직업은 가난하고 외로운 직업처럼 느껴졌고, 그 인상은 아마도 반 고흐에게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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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을 잃었던 20대, 나는 적당히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을 선택했고, 첫 직장을 뒤로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반 고흐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의 그림 속 어두운 색감은 내 마음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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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 도착해서 마을로 들어서자, 그림에서 본 시청과 라부 여관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회색 담벼락에 기대어 피어 있던 연보라색 라일락은, 조용히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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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더 걷다 보니 반 고흐 그림처럼 강렬한 인상을 가진 오베르의 교회가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봄이라는 생각이 잊힐 정도로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반 고흐는 이곳에서 삶의 희망을 기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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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발길이 닿은 곳은 ‘까마귀 나는 밀밭’이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초록빛 밀밭이지만 반 고흐가 마지막을 보낸 장소라는 사실이 그곳을 특별하게 느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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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매일 밀밭을 바라보며 완벽한 그림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의 기다림은 죽음 이후에야 세상에 닿았지만, 나의 기다림은 밀밭에서 시작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끝에서 무언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밀밭의 고요함은 나를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게 하면서도 이내 빨리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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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행복해지기 위해 철학서를 읽고, 종교에 기대기도 했다. 특히 내가 한참 빠져 있던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에는 이런 문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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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누군가 색다른 세계에서 경험한 색다른 사건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부러워해야 할 것은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들의 해석력이다. 정열적인 사람은 현실 속에서 흥미진진한 갈등만 보고, 우울한 사람은 비극만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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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반 고흐의 삶을 단지 비극이라 여겼던 나를 돌아보게 했다. 평범한 직업도, 나를 둘러싼 사람이나 환경도, 그리고 내 감정까지 그저 우울하다고만 여겼던 시절이었다. 행복은 우울함을 견디고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에게 천천히 찾아온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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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막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언젠가 아이에게 오베르에서 내가 느낀 감정을 말해주고 싶다. 우울함도 삶을 다채롭게 만드는 감정이지만, 그 감정은 억누르기보다는 천천히 흘려보내는 기다림 속에서 치유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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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느지막이 다시 파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오베르 마을과 작별 인사를 해보았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인생의 종착역이 되었던 곳이었지만, 나에겐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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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에서 파리행 기차를 기다리며 ‘오베르-쉬르-우아즈’ 기차역 표지판 글자를 하염없이 바라봤던 그 순간, 그곳에 우울한 감정을 다 내려놓고 왔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오베르에서 내 머리칼을 스쳤던 봄바람은 영원히 쓸쓸함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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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더 이상 반 고흐의 어두운 그림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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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의 우울한 그림을 찾지 않게 되었어요. 우울한 감정들을 흘려보내는 기다림을 배웠어요. 나의 우울을 가져가 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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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어둠을 가졌지만, 압도되는 아름다움으로 오히려 나를 어둠의 밑바닥으로부터 구원해 준 빈센트 반 고흐. 어둠이 다가올 때마다 멀어지고 나서야 나에게도 따스한 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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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웃음 짓게 만드는 밝은 동반자를 만났고, 그를 닮은 햇살 같은 아이를 낳았다. 오베르를 떠난 지 7년 뒤 나는 그와 함께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호아킨 소로야의 찬란한 바다를 마주했다. 그 순간 오베르의 회색 하늘이 서서히 잊히고 눈부신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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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에서 시작된 기다림은 결국 나를 새로운 계절로 이끌었다. 그 기다림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봄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봄은 더는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삶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