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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가는 작은 책방 아저씨

마지막 이야기

by 이정욱 교수

노트와 다이어리는 앱으로 대처가 됐다.

종이로 인쇄되는 책들도 노이즈가 낀 LP 음악도 구독을 해야만 보고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세상이다.


하지만,

아직도 코스피 종목 중엔 '양지사'가 있다. AI가 어떻고 반도체가 어떻고 로봇이 어떻고 바이오가 어떻다는 현란한 주도테마들로 돈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냉정한 주가 시장 바닥에서

그래도 아직도 바닥권에서 버티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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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0년째 같은 자리에서 책방을 지켜왔다.
아이들이 교복 차림으로 와서 문제집을 고르던 시절, 신학기가 되면 양지사의 노트와 다이어리가

책방 한쪽 벽을 가득 채웠다.
표지에 작은 로고가 찍혀 있던 그 노트들은, 학생들에게는 새 학기와 희망의 상징이었다.

양지사.
1950년대부터 한국의 노트와 다이어리를 만들어온 회사.
누구나 한 번쯤은 썼던 그 얇고 반듯한 공책, 선명한 줄, 그리고 한 해를 정리해 주던 다이어리.
그 회사는 여전히 코스피에 등록되어 있지만, 이제는 책 보다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기록하는 시대다.
내 가게에 들어오는 아이들 손에는 노트 대신 태블릿이 들려 있다.

나는 요즘 책방 문을 열 때마다, 오래된 나무 선반 사이에서 먼지를 털어내며 생각한다.
“노트도, 다이어리도, 책도… 모두 사라지는 건가.”

어쩌면 양지사의 차트처럼 내 가게도 비슷한 운명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한때는 최고점을 찍었던 시절이 있었다.
시험기간이면 아이들 발자국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매대에 놓아둔 양지사 노트가 동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파리만 날리고, 한 달 매상이 전기세도 못 내는 날이 있다.

방 아저씨로서 나는 양지사의 스토리에 깊이 공감한다.
기업도, 가게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기 힘들다.
노트에서 태블릿으로, 책에서 전자책으로, 학원가에서 온라인 강의로…
사람들은 점점 더 종이를 손에서 놓고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끝은 아닐 것이다.


양지사는 여전히 매년 다이어리를 만들고, 누군가는 새해의 첫 장을 그 다이어리로 열고 있다.
나 역시 매일 문을 열고, 몇 권이라도 팔릴 책을 선반에 꽂는다.

나는 작은 책방 아저씨.
양지사의 노트를 만지던 손길처럼, 내 가게에 오는 단 한 명의 손님이라도 따뜻하게 맞이하고 싶다.
비록 세상은 변하고, 종이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지만…
여전히 글을 쓰고, 기록하고, 책을 읽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많은 책방 아저씨들을 위해

폭락하는 주가를 손으로 살짝 올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https://bit.ly/3IZCx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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