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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Aug 10. 2022

오늘, 코스트코 냉동고 문을 살짝 닫아주었다



나는 마트에 가는 걸 좋아한다.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땐 대형마트에 가서 무슨 물건들이 있는지, 뭘 세일하는지 둘러본다. 굳이 뭐가 필요해서 가는 건 아니다. 한참을 돌아본 후 군것질할 것 하나 정도를 사서 나온다. 아내는 이런 나를 참 잘 받아준다. 받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같이 좋아해 줘서 고맙다.


아내는 마트에서 물건이 떨어져 있거나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정리를 해놓는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가끔 이렇게 놀린다.


어? 언제 나 몰래 마트에 취직했어?


마트에서 카트에 물건을 담았다가 생각해보니 그 물건은 필요 없을 때가 있다. 특히 계산대에 다 와서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계산대 옆 진열대에 물건을 살며시 내려놓는다. (물론 냉장/냉동식품이 아닐 때다)


그럴 때면 아내는 내 손을 탁 잡으며 미소를 짓는다. 가서 제자리가 놓고 오라는 뜻이다. 하지만 코스트코 같이 넓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나는 좀 너무 한 거 아니냐는 눈으로 아내를 바라본다. 그러면 아내는 좀 전과 같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내가 계산하고 있을 테니 다녀와 ^^






한인 2세 가수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는 그녀의 책 『H마트에서 울다』에서 이렇게 썼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더 이상 마트에서 우리가 먹던 김이 어떤 거였냐고 물어볼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울음이 터졌다고.


지금 나는 미국에, 아내는 한국에 있다. 나는 아내 없이 혼자 간 마트에서 울지는 않는다.






오늘은 혼자 코스트코에 갔다. 냉동칸을 지나는데 냉동고 안에 빈 박스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냉동고 문을 열어 박스들을 정리하고 냉장고 문을 살짝 닫아주었다.


이런 나를 본다면 잘했다고 웃어줄 아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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