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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Jan 10. 2021

출판의 추억

글쓰기, 그리고 출판 _ 그 즐거운 중독

40대가 끝날 무렵,

49세에 첫 번째 책을 냈다.


시도는 이미 35세에 했었다. 

무려 2006년, 영국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2년 동안 마케터로서 느꼈던 소회와 에피소드들을 정리해서, 

지인 소개로 국내 유수의 출판사에 보냈다. 그때 돌아온 반응은 “유명 인물도 아니면서 왜 에세이를 

쓰시나?”였다. 사실 형식은 좀 가볍고 자유로웠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인사이트 

있는 글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나에게는 다소 상처가 되었다. 


유명인이 아닌 나는 에세이를 쓸 수 없구나. 

그렇다고 내 직업을 활용해 정통 마케팅 책을 쓰기에는 아직 식견도 모자라고, 

남들과 다른 독특함도 없고.

어렵겠구나.


그래서 한동안은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2017년 어느 날, 내 옆에서 같이 일하던 중국 주재원 후배가 자기가 이번에 책을 내게 됐다고

갑자기 말했다. 아직 중국이 핫할 때였고, 중국 젊은이나 트렌드에 대한 콘텐츠는 부족할 때였다. 

출판사에 아는 사람 있었냐고 하니 그냥 몇 군데 마음에 드는 출판사 찍어서 보냈는데 

연락이 와서 덜컥 내게 됐다고 했다. 

게다가 읽어보니, 글도 잘 썼다. 늘 바쁜 와중에 도대체 언제 시간을 내서 이런 일을 꾸민 거야..


우와

물론 진심으로 축하했지만, 또 한편으로 질투심이 활화산처럼 솟구쳤다


그러고 보니, 나도 중국 마케팅이라는 흔하지 않은 체험을 한 거잖아. 

기억이 따끈따끈하게 남아 있을 때 재빨리 써 보자. 아는 출판사 없으면 어때. 중국 마케팅에 관심

있을 만한 출판사 찍어서 무조건 보내면 돼지.


질투심에 눈이 멀어서 몇 달을 정신없이

후다닥후다닥 쓰고 보니, 

와우 

책 한 권 낼만큼 양이 찼다.


신나서 출판사 세 군데를 찍어서 보냈다.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다시 세 군데를 골라서 보냈다. 일주일 만에 그중 한 군데서 연락이 왔다. 

그다음은 일사천리. 


2018년, 마침내 내 이름을 단 책이 나왔다.

서점에 가서 내 책을 확인하던 순간의 설렘과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냉정하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면 아래와 같다. 


돈은 되지 않았다. 마침 중국 거품이 빠지는 시기여서 책이 기대만큼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강연을 많이 다녀야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회사에서 엄격하게 외부 강연 기회를 제한했다. 

출간 기념 북 토크 정도만 허용했다. 그나마도 가서 이야기하다가 진땀을 뺐다. 


발표야 늘 하던 일이라 어려울 게 없었으나, 발표 후 참석한 분들의 질문이 너무 날카로웠다. 

중국에 대한, 중국 마케팅에 대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 듣는 황당한 질문에 어버버 거리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당황스러웠고,

내가 이렇게 중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강연을 한다고 나서다니 철이 없었군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물론 지나고 보니 순진한 생각이었다. 

모든 질문에 제대로 된 멋들어진 대답을 하겠다는 것이 내 욕심일 뿐. 

나는 내가 한 경험에서만 전문가였지, 중국이나 중국 마케팅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본다면 그저 

흘러가는 배 한 척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열심히 목적지까지는 저어 나갔기에, 그 

노력이 가상해서 의견을 들어보려는 것이지, 제대로 된 완벽한 정답이란 마케팅 바닥에서

어차피 기대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어쨌거나 결과만 말하면, 

직접적인 이익이라고 할 수 있는 인세와 강연, 둘 다 별 재미를 못 본 셈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성과가 있었다.

책이 나온 후 인터뷰를 몇 군데 하다 보니, 미처 생각지 못한 화학 작용이 일어났다. 


첫 번째는 관광업 관련 잡지였다.

그 해 처음 기자가 되었다는 앳된 기자 분이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서는,

마침 중국에서 젊은 관광객이 많이 오는데 이들에게 어떤 마케팅을 해야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나도 나름 고민하면서 대답을 하다 보니, 의외로 이슈 자체가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었다. 

오호, 관광업 분야는 내가 늘 고민하던 소비자들의 취향, 트렌드를 그대로 상품화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회사 차원의 이익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공적인 영역이라, 다음 직업으로 괜찮겠다 

라는 생각을 불현듯이 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다음 해 관광마케팅 석사 과정을 지원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두 번째는 중소기업 관련 잡지였다.

한국의 중소기업이 중국 소비자까지 염두에 두고 제품을 기획한다면 어떤 것이 좋을지,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백전노장 같은 원로 기자분께서 사진기자까지 대동하고 오셨다.

미리 주신 질문지에 성실히 답을 써서 전달해 드렸더니 인터뷰 시간 자체는 길지 않게 잘 끝났다.

그런데 그 준비성과 문장력(?)이 나름 좋은 인상을 남겼는지, 그 잡지에 정기 코너를 맡아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회사 일에 코 박고 사느라 외부에 어떤 딴짓도 벌일 여력이 없던 나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래. 출판이라는 게 꼭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을 하는구나


물론, 가장 큰 보람은 

그냥 지나갔으면 개인적인 추억으로만 남을 경험들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어떤 공공재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내 이름 걸고 하는 일이 아닌 바에야, 대부분 회사원들의 시간과 에너지는 다 드르륵 갈려서 

조직에 녹아들어가 버린다. 20, 30년 직장 생활을 해도 월급 말고는 내 손에 남는 것이 없다. 

학자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피디가 된 친구들이 사실 가장 부러운 게 그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남는 연구와 케이스와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

이제 와 그들이 하는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한 일들을 잘 정리해서
공공재로 만들 수는 있는 거잖아


단연코, 출판은 중독이다.

막연하게 꿈꾸던 로망보다 더 큰 보람이 있고, 그 맛을 보고 나면 절대 한 번에 그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한은 절대 이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꾸준히 시도할 생각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출판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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