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 시가 되는 하루
지나가는 소리에도
부아가 돋아
하늘을 원망하고
이번 한 번만
마지막이라는 핑계로
하늘에 기대고
어떤 모습에도
구설에 오르고 마니
하늘도 참 속 시끄럽겠다
하늘도 버거운 날에는
한껏 구름을 펴서
귀마개로 쓰는 게 아닐까
하늘에 부여하는 의미는 어떤 자연물보다 클 것이다. ‘하늘’이 출연하는 속담과 관용구만 봐도 알 수 있다.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날씨를 가늠할 때, 대가 없는 요행을 바랄 때, 털어놓고 싶을 때, 무작정 탓할 대상이 여의치 않을 때도 어김없이 하늘을 찾는다.
산을 오르다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기도 싫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푸념이었다. 나도 그랬다. 하늘을 보겠다고 고개를 든 적도 별로 없었지만, 본다 해도 웃으면서 하늘을 대한 적도 별로 없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며 어떤 날은 날씨가 좋다고 덩달아 춤추다가, 또 어떤 날은 날씨가 좋아서 더 화가 났다. 하늘을 향해 내뿜는 나의 ‘묻지 마 분노’는 따져보면 터무니없었다.
빼곡한 편백숲 한가운데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젖혔다. 곧게 뻗은 편백나무 사이로 한껏 구름을 펴 놓은 하늘이 보였다.
그 모양이 꼭 17년 전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던 고양이 같아서 걷잡을 수 없이 슬퍼졌다. 반가워 짧게 인사를 나누고 멍하니 서 있다 문득 생각했다. 하늘도 참 속 시끄럽겠다고.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맹랑한 원망과 소망을 들어야 할까. 어쩌면 널리 저며 놓은 구름은 버거워진 하늘의 귀마개가 아닐까. 그 날 나는 다짐했다. 나라도 거들지 말아야지. 보태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