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길'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제목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이번에야 말로 온전히 읽어보았다.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이 어둡고, 답답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희망과 긍정이라곤 찾을 수 없는 이야기다.
이 책에는 상징성이 너무나 확연한 인물들이 나온다. 노동자와 약자를 대표하는 난장이와 그의 아내, 그의 자식인 영수/영호/영희, 난장이와 영수를 깨어나게 한 지식인 지섭. 자본가 또는 승자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은강그룹의 막내아들 경훈과 그의 사촌, 그리고 중간층을 대표하는 윤호와 신애 등이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가진 자와 없는 자로 구성된 이분법적인 사회'다. 약자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고군분투와 절망을 보여주고, 승자들의 삶으로 그들의 공허함과 인격적인 결함을 보여준다. 동정심과 양심이 있는 중간층은 약자의 입장을 공감은 하나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사회에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존재하는데, 권력을 가진 이를 악으로, 힘이 없는 이를 선으로 표현하면서, 결코 섞일 수 없는 둘 사이의 괴리감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안타까운 것은 서로를 그렇게 적대시하는 선과 악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과연 양쪽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유토피아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 의문은 약자를 희생시키며 경제성장을 이뤘던 과거의 유신 시대나 부족함 없는 넘침으로 오히려 모두가 불행해진 요즘이나, 결국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P40 <신애의 남편>
두 사람은 서로의 이상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큰 희망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도, 희망도,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 도움이 되어 주지 못했다. ... 아버지는 전 생애를 통해서 그의 시대, 사회와 불화했던 사람이다. 신애는 남편이 같은 혈통의 사람임을 잘 알았다. 좋은 책을 쓰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던 남편은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실어증 환자로 생각했다. 증오하는 돈도 죽어라 하고 벌었으나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P178 <신애 남동생>
동생의 친구는 변해 버렸다. 처음에는 기진해 쓰러진 것이라고 동생은 말했다. 그러나 동생은 오랫동안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만나야 이제는 할 이야기도 별로 없다. 동생의 친구는 둘에게 첫 번째의 상처를 입혔던 그 사람 옆방으로 가 일하고 있다. 친구는 애써 잃어버린 희망을 찾지 않기로 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냉난방 시설을 갖춘 큰 집에 없는 게 없이 해놓고 산다. 몇 개의 낙원 중 하나를 보는 것 같다. 친구의 낙원은 언제나 따뜻했다. 비싼 그림도 사다 걸었다. 곧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승용차도 갖게 될 것이다. ... 동생은 병실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간호사가 나가면서 손가락을 입에 댔다. 동생 머리맡에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갖다 놓은 것이다. 동생의 아이들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사람을 제일 약하게 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웃고 있었다.
누구보다 난장이네 가족을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어 했던 중산층 윤호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P217
난장이의 큰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윤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난장이의 아들딸을 위해서 윤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공장 안에서 돌아가는 기계들은 정밀한 것이었지만 그 사회는 이상한 습성, 감시, 비능률, 위험 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난장이가 원한 것은 사랑이었다. 약자를 향한 착취가 너무나 당연했던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똑같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원했다. 그 사랑은 아마 인간의 존엄성, 가족 간의 사랑, 사회의 연대가 아니었을까.
P268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깃줄도 잘라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 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아버지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나의 생각을 수정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옳았다.
아버지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았던 영수는 결국 아버지한테 받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다.
P253
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다. 우리는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 살았다. 배운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그들은 책상 앞에 앉아 싼 임금으로 기계를 돌릴 방법만 생각했다. 필요하다면 우리의 밥에 서슴없이 모래를 섞을 사람들이었다. 폐수 집수장 바닥에 구멍을 뚫어 정수장을 거치지 않은 폐수를 바다로 흘려 넣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반면 모든 것을 가졌지만 영혼을 채우는 사랑은 받지 못했던 은강그룹 막내아들 경훈은 결국 그 사랑이 없어 괴로워한다.
P345
개 밥그릇을 개집 앞에 놓아준 여자아이가 늙은 개의 목을 꼭 껴안았다. 난장이의 큰아들이 끌려 나갈 때 난장이의 부인이 그런 몸짓을 했다. 공원들은 밖으로 나가 울었다. 지섭은 올라올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했다. ...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나를 제쳐 놓을 것이다.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밝고 큰 목소리로 떠들 말들을 떠올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
유신 시대의 아픔을 담은 이 책에서 '자본가를 악마'로, '노동자를 천사'로 묘사하는 부분을 읽으며 마음 한편이 조금 불편했다. 물론 그 시대는 힘없는 사람들이 착취당하던 시기였기에 당연한 묘사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뿌리 깊게 내려온 '자본가=악마'라는 이분법적인 인식이 과연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이런 흑백논리가 오늘날 우리를 더욱 극단적인 자본주의로 몰아가고, 돈을 가진 것을 거리낌 없이 과시하는 분위기를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다르다. 유신 시대에 쓰인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을 배우고 공감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시대를 동일시하며 열심히 돈을 벌어 부자가 된 사람들을 손가락질을 하는 문화는 오히려 우리를 더 돈 안에 갇히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이분법적인 흑백논리는 대한민국만의 사상이 아니다. 지구 대부분의 나라들이 우리와 같은 어두운 시대를 통해 전진을 해왔기에, 대부분 '자본가=악'이라는 이미지가 기저에 깔려있다.
다행히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란 영화가 인간의 이런 보편적인 선악 이미지를 뒤틀어서 보여주며, '자본가=악'이라는 사상에 갇혀 있던 세계인을 꺼내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전 세계의 상을 휩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대한민국은 더 이상 어두운 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우리는 그 시기를 견뎌냈고, 빛나는 현재에 도달했으며, 찬란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과거 어둠 속에서 형성된 '돈의 유무'에 따른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인성과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모두가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