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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Sep 25. 2020

남는 건 사진뿐?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한다. 어딜 가든 무얼 하든 열심히 찍는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진인지 모르겠다. 이 많은 사진을 나중에 다 보기는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남는 건 사진뿐에서 더 발전하여 사진이 전부가 되어 버린 듯도 하다. 연신 찍어 각종 SNS에 올리기에 바쁘다. 거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올리는 듯하다. SNS만 봐도 그 사람의 하루 일과를 알 수 있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를 갔는지 심지어는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알 수 있다. 나를 위한 사진인지 남을 위한 사진인지 이젠 좀 헷갈린다. 

가수 핑클 멤버가 다 같이 모여 캠핑을 떠나는 한 예능 프로가 있었다. 거기서 이효리와 이진이 아침 해돋이를 보면서 나눴던 대화에 크게 공감했다. 둘은 한참 멋진 해돋이 광경에 푹 빠져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효리가 이진에게 말을 건넸다. "나도 사진 잘 안 찍는데, 너도 참 사진 안 찍는다. 이렇게 멋진 걸 보면 사진 한번 찍을만한데." 이진은 대답했다. "어, 나 사진 잘 안 찍어. 눈에 담는 게 더 좋아. 사진 찍다 보면 놓치는 게 너무 많아. 보는데 집중이 안 돼." 이효리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보는데 집중이 안 되지. 사진 찍다 보면 카메라 통해서만 보게 되고 이렇게 멋진 건 직접 봐야지. 카메라는 다 담지도 못해. 보는데 집중하자." 그리고는 둘은 다시 멋진 광경에 빠져들었다. 


몇 년 전에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마우나케아산에 올라갔는데 해지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졌다. 황홀 그 자체였다. 특히 해가 구름 아래로 숨어버리는 순간에는 감탄이 절로 났다. 주변은 온통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로 가득했다. 스마트폰부터 전문가용까지 온갖 종류의 카메라는 다 모인 듯했다. 우리 가족도 그에 빠질세라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해가 다 떨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찍었다. 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카메라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붉게 물든 하늘을 감상했다. 왠지 모를 허무함이 올라왔다. 내 눈으로 본 것보다 카메라로 본 광경이 더 많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좀 덜 찍고 앉아서 감상을 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 생각해도 좀 아쉽다. 눈에 더 많이 담아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얼만 전 집 앞 물놀이장에서 한 엄마와 아이를 봤다. 아이는 대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아이는 물속에서 신나 보였고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집중하는 듯했다. 엄마는 그 순간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멀찍이서 아이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OO야 엄마 봐!” 아이는 잠깐 엄마를 보는 듯하더니 이내 장난감으로 눈을 돌렸다. 엄마는 답답한 듯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보라고 엄마”, “웃어. 웃어야지. 활짝 웃어!” 아이가 애써 엄마를 보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엄마는 그 순간을 놓칠세라 얼른 사진을 찍고는 만족했다는 듯이 말했다. "됐어~" 아이를 위한 사진일까 엄마를 사진일까? 나중에 아이가 커서 이 사진을 본다면 아이는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 아마 물놀이장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보다 열심히 놀고 있는데 엄마가 여기 보라고 큰 소리로 외쳐 엄마의 핸드폰을 보고 억지 웃음을 지었던 기억을 떠올릴 확률이 더 크지 않을까? 만들어진 장면은 만들어진 기억을 남긴다. 이왕 사진을 찍을 거면 물속에서 장난감에 흠뻑 빠져 놀고 있는 모습을 찍어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한다. 이 편이 노는 아이에게 방해도 안되고 나중에 사진을 꺼내 보더라고 생생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아이가 좀 더 어릴 때 밤에 재워주면서 나눴던 대화가 있었다. “꿈에서 만나.”, “오늘은 어디서 만날까?”, “오랜만에 하와이 해변에서 만날까? 거기 좋았지?”, “응, 좋았어. 우리 수영도 했잖아.”, “맞아. 오늘은 거기서 만나자.” 매일 밤 추억도 하나씩 꺼내고 장면도 하나씩 꺼내봤다. 이 시간이 좋았다. 굳이 사진은 필요 없었다. 추억이 많아 행복했다.     

 

사진보다 추억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다. 남는 건 사진보다는 추억이지 않을까? 사진은 일부러 꺼내 봐야 하지만 추억은 애써 꺼내지 않아도 된다. 또 추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추억까지 소환한다. 사진이 많은 사람보다 추억이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하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지 않던가.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추억을 먹고 살 수 있지만 사진은 먹고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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