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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Sep 29. 2020

한턱 쏴!

친구 하나가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다들 부럽다고 난리였다. 한 친구가 축하한다며 말했다.

"야, 한턱 쏴야 되는 거 아냐?"

이 말에 다들 맞다며 크게 한턱 쏘라고 맞장구를 쳤다. 친구는 약간 당황한 듯 "이런 걸로 무슨 한턱이야"라고 했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이런 걸로 한턱 내지 뭘로 한턱을 내냐며 더 호들갑을 떨었다. 그 친구는 결국 여러 성화에 못 이겨 날 한번 잡아보자고 했다.

     

회사에서 승진을 하면 주변에서 한 마디씩 했다. 

"축하해. 한턱 쏴야지."

축하는 고맙고 승진도 기뻐할 일이지만 가끔은 뒤에서 한숨을 쉴 때가 있었다. 승진은 했어도 월급이 기대만큼 많이 오르지 않았을 때다. 이럴 때 평소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거나 왠지 호감 가지 않던 사람이 하는 '한턱 쏴'란 말은 좀 거슬린다. 나 승진하는 데 뭘 도와줬다고? 란 생각마저 든다.      



한턱내다 혹은 한턱 쏘다에서 '한턱'은 뭘 말하는 걸까? '턱'은 신체 일부분 외에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남에게 베푸는 음식 대접'이란 뜻이 있다. 여기에 아마도 '하나' 라는 뜻보다는 '크다'는  뜻을 가진 '한'이 붙어 한턱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한턱을 낸다는 말은 말 그대로 내가 기분이 좋아서 누군가에게 크게 음식을 베푼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내가'와 '베풀다'이다. 내가 자진해서 베푸는 것이지 다른 누가 베풀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큰 집으로 이사를 했든, 승진을 했든, 좋은 회사로 이직을 했든 뭘 했든 내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대접하는 것이 한턱이다. 당연히 '한턱낼게', '한턱 쏠게' 란 말은 성립이 되지만,  '한턱내', '한턱 쏴'란 말은 맞는 말이 아니다. '즐거워해'나 '기뻐해'란 말은 어딘가 좀 어색하다. 즐거워하란다고 즐거울 수 없고 기뻐하란다고 기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쁘게 대접하란다고 기쁘게 대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으레 '한턱 쏴!'란 말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듯이, 혹은 당연히 받아야 할 일이라는 듯이.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저절로 고마웠던 사람들부터 생각나기 마련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크게 대접하고 보답하고 싶다. 이럴 땐 그야말로 과하게 한턱을 내고 싶다. 그러니 보채지 마라. 특히 강요하지 마라. 한턱내겠다는 말이 없으면 베풀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내가 그렇게 큰 도움은 주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턱 쏴!'라고 하기 전에 내가 한턱을 받을만한가부터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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