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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4. 2020

있는 것들이 더하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크리스마스 때면 전 직원에게 케이크를 선물했다. 생일이면 도넛과 커피를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을 보내줬고, 밸런타인데이에는 여직원들에게 초콜릿을 선물했다. 여름철 무더위가 심한 날에는 종종 아이스크림을 돌리기도 했다. 몇 번인가 전 직원에게 책을 선물한 적도 있고, 좋은 공연이 있을 때는 원하는 직원에 한해서 공연 티켓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렇게 들으면 좀 복지가 괜찮은 회사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운동과 어학공부에 대한 지원 외에 특별한 복지는 없었다. 이마저도 한도가 있었고 전액이 아닌 절반만 지원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직원들은 회사에서 보이는 이 같은 성의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가끔은 “이런 거 주지 말고 월급이나 올려주지”라며 투덜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듣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괜한 걱정이겠지만 회사 대표가 들으면 기분 상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름 생각해서 베푼 호의이고 회사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일 텐데. 

     

내가 아이에게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고맙다고 인사드렸어?”였다. 아이가 어릴 때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사탕이나 연필 같은 선물을 받아올 때마다 하던 말이었다. 하루는 회사에서 명절 선물로 한우 세트를 받았다. 흔치 않은 경우였다. 택배를 같이 풀어보던 아이 반응이 재미있다. “우와~ 엄마 회사 사장님 통 크시다.” 아이 말에 웃음이 터졌다. 아이는 이어서 “사장님한테 고맙다고 인사드렸어?”라고 물었다. 갑자기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아니 고맙다는 말은 못 했네.”라고 얼버무렸다. 아이는 내 눈을 보며 “잊지 말고 꼭 말씀드려.”라고 했다. 나는 당황하며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해 크리스마스 때 변함없이 회사로부터 케이크를 선물로 받았다. 아이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직접 대표님에게 인사를 할 수는 없고 간단히 메일로 감사를 전했다. 특별한 말은 없었다. ‘케이크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시길 바랍니다.’ 정도였다. 답장을 받았다. 답 메일에는 ‘고맙다고 해줘서 오히려 내가 고맙다. 직원 중에 고맙다고 해주는 사람은 김 과장 하나네.’라고 적혀 있었다. 어쩐지 쓸쓸함이 묻어 있는 듯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내 감사 인사가 회사에 큰 이슈가 되었다. 누구 하나가 대표에게 감사 메일을 보냈다며 도대체 그게 누구냐는 것이다. 마치 내부의 배신자 혹은 최고의 아첨꾼이라도 찾아 나서는 듯했다. 많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동료에게 그게 나였음을 밝히면서 아이에게는 늘 감사인사를 하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안 하는 것 같아 간단히 메일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다지 이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쪽, 더 가진 쪽, 더 나이가 많은 쪽이 베푸는 걸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받아도 고마움 같은 건 없는 듯하다. 그들이 꼭 베풀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가끔 소위 잘나가는 유명인들의 기부금을 가지고 이런저런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렇게 잘 버는데 이것밖에 안 냈냐는 것이다. 어이가 없다. 또는 잘사는 친구를 두고 밥 한 번을 안 산다며 있는 것들이 더하다는 소리도 한다. 그들이 왜 밥을 사야 하나? 그들이 잘살게 된 게 내 덕분인가? 당연한 베풂, 당연한 호의는 없다. 베풂을 강요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과연 베풀고 있나.

© Peggy_Marco,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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