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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8. 2020

내가 다 해본 거야. 진짜?

‘나 때는 말이야’만큼이나 소름 돋는 말이 있다. ‘내가 해봤는데’ 혹은 ‘나도 다 해봤어’이다. 뒷말은 해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전 회사에 한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그 회사에서만 20년 가까이 있었다. 거의 회사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자주 했던 말이 바로 ‘나 때는’과 ‘내가 해봤는데’였다. ‘나 때는’은 그냥 들으면 된다. 귀가 좀 아프긴 해도 크게 피해가 되는 일은 없다. ‘내가 해봤는데’는 좀 다르다. 내는 의견마다 “그거 옛날에 다 해본 거야”라며 그녀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특히 상부에 얘기해보자는 말에는 “얘기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우리 얘기 안 들어.”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곤 자기 선에서 의견 제시 자체를 차단했다. 또 상사의 “이건 이렇게 바꿔 보는 건 어떤가?”와 같은 질문에 그녀는 의견 대신 “네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건 질문이 아니라 지시라고 했다. 후배들도 그녀의 말에 세뇌가 된 건지 더 이상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다. 뒤에서 불평만 들어놓을 뿐. 실무를 모르는 상사의 작은 의견 하나는 직원들을 힘들게 했다. 한 번에 끝낼 일을 두 번에 해야 했고, 안 해도 될 잡다한 일들이 늘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어느 날 부서 회식이 있었다. 이때다 싶어 난 그동안 참아왔던 말을 어렵게 꺼냈다. “상무님, 저희 지금 절차가 너무 많아졌는데 좀 줄이면 어떨까 싶어요. 간단히 끝낼 수 있는 일을 복잡하게 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에 시간을 많이 못 쓰거든요.” 걱정과 달리 상사의 대답은 너무나도 쿨했다. “그래? 줄일 수 있는 건 줄여야지. 어떤 걸 줄이면 좋을지 정리해서 메일 보내봐요.” 이렇게 쉽게 끝날 걸 그동안 뭘 한 건가 싶었다. 선배가 늘 말하던 ‘얘기해도 소용없어’는 도대체 뭘 근거로 했던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고의 오류>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일상은 우리의 관심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지만 특별한 사건은 이와 달리 뇌리에 깊이 박힌다. 그러면 그것을 가능성 있고 현실적이며 일상적인 일로 여기고 가용성 어림법에 따라 아무리 이상한 것이라고 해도 그런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과대평가한다.” 여기서 가용성 어림법(availability heuristic)이란 잘 기억하는 사건일수록 그 발생 빈도 혹은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선배에겐 큰 맘먹고 상사에게 의견을 제시했다가 단번에 거절당해 무안하고 머쓱했던 경험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경험이 선배에겐 충격으로 다가왔고 특별한 사건으로 인식되어 뇌리에 깊이 박혔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점점 그 특별한 사건은 일상으로 잘못 인식되고, 결국에는‘상사는 직원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틀을 만들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일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특별히 잘 기억한다. 이 특별한 한 번의 경험은 앞으로도 매번 그럴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마치 한 번의 주식 투자 실패가 주식은 하면 다 망한다는 인식을 낳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해봤는데”란 말에서는 해본 횟수가 빠져있다. 과연 몇 번을 해본 걸까? “나도 다 해봤는데”에서 ‘다’는 얼마큼을 말하는 걸까? 자신의 한두 번의 노력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고 실패를 단정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누가 하느냐도 중요하다. 내가 할 땐 안돼도 다른 사람이 하면 되는 일도 있다. ‘내가 해봤는데’란 말로 누군가의 시도를 막지 말았으면 좋겠다. 응원은 못 해줄망정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 geralt,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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