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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23. 2020

본문과 댓글의 주객전도

인터넷 기사를 읽으면 본문보다 댓글을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댓글이 더 재미있을 때가 많다.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읽어도 댓글을 읽어보게 된다.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이다. 올려진 사진이나 글보다 댓글이 더 궁금할 때가 많다. 


기사에 달린 악플에 일일이 센스 있는 댓글을 달아 화제가 된 연예인이 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본인 SNS에 올라온 댓글에 감정 섞인 댓글을 다시 달아 인성 논란으로까지 번져 곤혹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 기사는 본문보다 댓글이 더 유용할 때도 있다. 기사를 읽을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댓글을 읽고 나서야 뒤늦게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가끔은 기사를 쓸려면 뭘 좀 제대로 알고 쓰라며 더 상세한 내용을 담은 보도 자료의 링크를 올려 놓는 사람들도 있다. 또 기사에는 실리지 않은 반대편의 입장, 사건의 뒷배경, 혹은 이 기사의 의도까지 알려준다.  


또 댓글하면 인터넷 부동산 카페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곳만큼 재미있는 곳도 없다. 서로 자기 동네가 최고란다. 또 서로 자기 판단이 맞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올린다. 댓글만 읽어도 몰랐던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러다 어느 한 동네에 대해 거긴 이젠 끝이다 라는 식의 말이 나오면 전쟁이 시작된다. 살아봤냐, 뭘 알고 얘기해라, 공부 좀 더 해라, 와 같은 말들이 오간다. 급기야는 그러니까 당신이 돈을 못 벌고 평생 그러고 사는 거라고 한다. 그럼 또 내가 어떻게 사는지 봤냐고 한다. 초딩 싸움이 따로 없다. 읽다 보면 둘이 뭐하나 싶다. 어느새 본문의 내용은 잊히고 싸움 구경이 더 재밌어진다.      


댓글은 참 묘한 힘을 갖고 있다. 맞다 싶다가도 댓글이 온통 무슨 소릴 하는 거냐며 성난 목소리로 가득하면 아 그런가 한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다가도 ‘맞아요. 공감해요.’란 댓글 일색이면 나도 모르게 또 공감 쪽으로 기운다. 별 관심이 없던 것도 댓글이 많으면 일단 읽어보게 된다. 댓글란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기도 하지만 점점 내 생각을 잃게 만드는 힘도 갖고 있는 듯하다. 생각하는 힘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두뇌를 활발히 움직여 나만의 생각을 세우기도 전에 댓글이 나와 버린다. 내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댓글이 힘을 갖는 이유가 아닐까도 싶다. 힘들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만든다. 생각은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생각을 읽기만 하면 된다. 한편으로 참 편리하다. 생각까지 대신해주다니.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된 듯하다. 이젠 본문이 주인지 댓글이 주인지 모르겠다. 생각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생각을 보고 내 생각을 거기에 맞춰간다. 애초에 댓글란을 만든 이유가 뭘까? 일방적인 통보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 의견을 나누라는 뜻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또 습관처럼 댓글도 하나의 본문인 것처럼, 때로는 댓글이 본문인 것처럼 댓글을 읽는다. 내 생각보다 남의 생각을 더 믿을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세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단지 생각하기가 귀찮아서 일까.  

© ShariJo,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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