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여행의 기록이다. 기억의 왜곡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꽤 지나고 지난 날을 돌아보면 어려웠던 일도 추억으로 미화되곤 하니까. 그렇지만 또한 얼마간 소화가 된 경험들을 기록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터이다. 그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난 추억들을 다시 끄집어 내 본다.
"아버님, 어머님 독일 말고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으세요?"
몇 달 뒤 겨울, 아내의 가족들이 독일로 오기로 했다. 마지막 방문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곳곳이 차단되고, 나라마다 고립되는 편을 택하던 때였다. 그러니 꼭 2년 만의 방문이다.
딸 네가 유럽의 여러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독일에 살고 있기에 오신김에 프랑스며네덜란드며 조금은 자유로운 유럽여행을 기대하셨는데, 당시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몇 시간의 짧은 방문을 위해서 영사관마다 문의를 했어야 했고, 그마저도 국가마다 요구하는 기준이 달랐다. 치러야하는 절차와 비용이 만만찮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의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부채감이었을까? 다시 오는 처가식구들에게 제일 먼저 던진 말이 그랬다.
"스위스가 예쁘다던데."
어머님께서는 손주 녀석들 크는 것 보러가는 건데 그런 것까지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어머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님께서 넌지시 운을 떼셨다. 아니 어쩌면 두 분이 동시에 다른 말씀을 시작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아버님은 이것저것 재는 것도 없고 솔직한 분이시다.
스위스. 한국의 무수한 여행 유투버들이 죽기 전에 꼭 가보라며 소개하던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이 숨을 쉬는 땅이라지. 우리라고 못 갈 것은 없다. 팬데믹도 끝났겠다 이번에는 당당하게 해외여행 한 번 해보는 거야. 앞으로 말해도 스위스, 거꾸로 말해도 스위스! 이번에는 앞 뒤가 똑같은 아름다운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