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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16. 2022

아들 친구에게 시즌권을 끊어줘야 하나?

이유나 과정 없는 행운은 세상에 흔치 않다

 "오늘 내 친구 잠실 야구장 갔다고 하던데 그래서 또 이기는가 봐"


난 30년 가까이 프로야구를 즐겨보고 있다. 그것도 한 팀만을 응원하고 있다. 내 영향인지 아들도 나와 같은 팀을 응원한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열을 올리며 중계를 보진 않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나보다 더 열심히다. 아들은 외출했다 저녁에 귀가해서는 어김없이 야구 얘기다.


 "에휴 요즘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거 같아요. 경기 이기는 걸 보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데 도대체 삼성은 선발 투수가 잘해도 공격이 안되니. 안 되는 팀은 다 이유가 있다는 옛말이 맞네, 맞아"


6월 말부터 추락하기 시작한 삼성은 끝을 모르는 추락을 거듭했다. 이 기간 중에 13연패라는 저조한 기록을 세우기까지 했다. 라이온 킹 전성기 때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투수 왕국 시절엔 짜릿짜릿하게 지키는 야구를 봐왔던 우리라 전성기 때 향수가 가득인 요즘이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을 최근 삼성 야구단 상황을 두고 빗대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젠 한화 팬들의 마음을 배워야 할 것 같다고 아들과 서로 넋두리다.


 "아들 삼성 야구 직관하면 이긴다는 그 친구는 요즘 야구 보러 안다녀?"

 "응, 방학이라 시골집에 갔어"

 "어? 집이 지방이었어? 에 - 휴-!"

조금은 기대를 갖고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허무하기만 했다. 스무 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학교를 다니는 것이었으면 방학 때 집이 있는 지방에 내려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 현실조차 인정하기 싫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솔직한 심정이 한숨으로 고스란히 나왔다.


아들 친구 중 유독 야구 경기를 직관하는 날이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는 날이 많은 친구가 있다. 아주 운 좋게도 그 친구가 응원하는 야구팀은 내가 응원하는 팀과 같은 삼성 라이온즈다. 사, 오월에도 그 친구가 야구장을 찾는 날이면 무게감 있는 1,2 선발 투수의 등판이 아니어도 이기는 경기가 많았다. 우연이든 운이 좋든 그 친구가 야구장 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야구를 보는 내내 편안하게 중계를 볼 수 있었다. 목청껏 응원하며 마음을 졸일 필요가 없었다. 경기를 즐기며 승리의 결과만 들으면 그만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굿이나 보며 떡이나 먹으면 됐다.



살다 보면 주변에 나와 특별히 차이가 없는 배경이나 환경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나 직장동료 중 시간이 지나 보면 어느새 먼발치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도 그런 친구와 동료가 있었다. 예전 직장에서 함께 직장생활을 한 동료들 대부분이 현재는 외국계 회사에 재직 중이다. 첫 직장에서의 내 평가는 오히려 성실함을 무기로 그런 동료들보다 늘 앞서있다고 생각했었다. 직장을 옮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린 대부분 다른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회사를 옮겼을 때만 해도 몰랐었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있고, 현실적인 문제로 이렇게 동떨어진 느낌이 차오를지.


그중 한 동료에게 유독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는 나와 같은 나이에 비슷한 생활환경에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했다. 또 내가 처음 이직을 했을 때도 그는 그제야 이직을 준비했고, 내게 스카우트가 들어왔던 자리를 그 동료를 추천해 준 적도 있었다. 늘 그보다 앞서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그는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했고, 비슷한 시기에 전세 살던 무주택자에서 저렴하게 생각하고 옮긴 수도권 아파트를 구매하며 일 주택자가 되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며 집값이 껑충 뛴 지역의 주택자가 되었다. 게다가 타고 다니던 국산차를 외제차로 바꿨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내게 그는 '운이 좋은 동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부럽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예전 생각에 시기심도 들었다.


그러다 몇 년 전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그의 현재 위치나 자리가 단순히 운이 아닌 노력이 바탕이 되었음을 알게 됐다. 그 나름대로 치열한 30대를 살면서 여기저기 이직할 자리를 알아봤고, 이직을 위해 긴 시간을 준비했다. 짧은 외국어 실력에 지금같이  년을 외국계 회사에 다닐 수 있는 건 몇 년간 출근 시간을 쪼개서 영어 학원을 다니며 부족함을 채웠던 결과물이었다. 또 지금과 같이 마냥 좋아 보일 것 같은 외국계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나름의 처세술과 치열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젠 동료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갖고자 했던 지금의 자릴 위해서 그는  쉼 없이 달렸을 테고, 그걸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마다 갖고 있는 욕심, 욕망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인 성공을, 어떤 사람은 내 즐거움과 행복을,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을 위해 산다. 그래서 난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더 이상 사람들의 '행운', '성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부러워하지 않을 거다.


이유나 과정 없는 '행운'이란 흔치 않다. 행운 또한 성공에 일부분이라고 하지만 과정 없는 성공 또한 없음을 나이가 들어서 더 자주 경험하게 된다. 모든 일은 희생이 따른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행운을 부러워말고 주어진 삶에 충분히 행복해하며 사는 게 누구보다 잘 사는 거다.




 "아들 오늘은 웬일로 라이온즈가 화끈하게 이겼어"

 "응, 나도 보면서 왔어요. 오늘 내 친구 잠실 야구장 갔다고 하던데 그래서 또 이기는가 봐"


며칠 전 오랜만에 삼성이 시원하게 승리했다. 아들 말이 그 친구가 오늘 잠실 구장 직관을 갔다는 것이다. 아들 말로는 친구가 올해 직관한 경기 승률이 83퍼센트를 넘는단다. 현재까지 열두 번 가서 열 번을 이겼단다. 난 직관할 때마다 패하기 일쑤였는데. 아들 친구가 꾸준히 야구장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과정이나 이유 없는 행운이 없다고는 얘기했지만 요즘은 아들 친구의 '행운'에 그냥 기대고 싶다.


 "아들 친구한테 시즌권 끊어서 야구장 살라고 해. 우리도 가을 야구 봐야지"

내 얘길 곁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하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철수 씨가 사줄 것도 아니면서 그런 무책임한 소릴해요"

  "아, 하하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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