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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Aug 24. 2024

셋 다 브리즈번은 처음이라서

Day. 1

2024년 8월 4일 일요일


홍박사✐


9시간 비행기를 타고 남반구로 내려왔다. 회사 일정으로 가득 차다 못해 터져 버릴 듯한 하루를 멈추고 한없이 여유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호주 퀸즐랜드주의 브리즈번이란 도시에 와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중에 공항 안내 담당자가 줄 선 모든 아이들에게 팔꿈치 인사를 건넸다. 한국 아이들은 이런 풍경이 낯설지만 재밌었는지 깔깔깔 웃었다. 호주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친절한 이라면 일단 첫인상 100점. 이 여행, 그런대로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갑작스레 서늘함이 찾아왔다. ‘아, 여기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었지!’ 에어컨이 만드는 인공의 시원함에 몹시 지쳐있던 차에 천연 그 자체, 감미료 없는 시원한 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하면서도 마음은 곧추 펴게 했다. K-겨울과는 사뭇 다른 온화한 겨울 날씨에 40년을 왜 그리 춥게 살았나 싶었다. '팔자대로 산다지만 환경이 팔자도 바꾸겠구나.'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한 보통의 여행자라면 에어트레인을 타고 도시 중심으로 이동하지만 우리는 셋이니까 우버를 타는 것이 좀 더 저렴하다. 한 푼이라도 아껴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쓸 수 있는 곳에 쓰자는 게 이번 여행의 전략이라면 전략이었다. 


터번을 쓴 기사님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무뚝뚝한 양반이었지만 가속 페달을 적당히 밞으며 부드럽고 안전하게 움직였다. '이런 온화한 기후라면 도로에 난무하는 쌍소리 따위 없을 것 같아..'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 표정도 더없이 여유로워 보였다. 브리즈번 날씨의 위대함을 이리저리 대입해 보니 모든 게 쉽게 성립되었다.(여행의 착각은 자유!) 체크인보다 좀 더 일찍 도착한 우리는 짐을 맡겨두고 시내 중심가부터 탐색을 시작했다. 여행하는 이들은 잘 알 것이다. 도시에 처음 발을 내딛는 이 순간이 여행 중 가장 가슴 뛰는 시간 중 하나라는 걸. 앞으로도 매일매일 이 산뜻하고 화사한 설렘을 유지하고 싶어졌다.


호주 첫 커피. 보름간 인생 커피를 발견하길!


아차. ‘우리’ 소개가 늦었다. 15년의 회사생활에 이제는 조금 힘이 부쳐 이따금 탈출을 꿈꾸며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매번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템을 상상하지만 그다음 날이면 오늘도 이겨내자! 외치며 일터로 향하는 회사원이자 아빠이자 남편인 나. 역시나 이곳에 와서도 평소의 루틴대로 넥스트 인생을 위한 아이템을 발산하고 있다.(차 안에서도 ‘호주 와서 우버를 하며 살아가면 어떨까’를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기사님이 내 말을 이해했으면 어떤 조언을 주었을까..) 그러면서도 직업이 마케터이다 보니 이번 여행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 사이에서 영감을 받아 좋은 아이디어로 승화시키길 고대해 본다.(직업은 못 속여..)


그다음. 그녀(이하 김 군). 올해 현 직장 5주년 퀘스트 달성으로 보너스를 받아 이번 여행의 자금줄을 댄 우리 집안의 대들보. 항상 피곤함을 토로하지만 해야 할 일은 묵묵히 제대로 해내는 나의 롤모델이자 와이프. 그녀 역시 수년 째 마케터라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말은 안 하지만 아마도 나와 같이 ‘마케터’로서의 여행 전략을 일부 그리고 있음이 분명하다.(직업은 못 속여..) 둘 다 대단히 계획형 인간은 못되지만 간발의 차로 내가 좀 더 준비하고 정리하는 스타일에 가까워서 이번 여행 계획 수립의 A to Z를 담당하게 되었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돈을 댄 물주가 있으니 나머지 송사는 내가 맡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내년이면 결혼 10주년이 된다. 크게 보면 무탈하게 잘 살아온 것 같지만 분명 작은 슬픔들과 희미한 위기가 한여름 소나기 오듯 찾아왔었고 그때마다 김 군이란 넓은 처마 밑에서 잘 피하고 잘 이겨냈던 것 같다. 지난 10년도, 이번 여행도 지짜지짜 고마워!


그리고 이은. 여행 전에 무엇이 가장 기대되냐 물었더니 ‘학원을 안 갈 수 있어 좋아’라고 뻔뻔스레 답을 하는 참 초등학생스러운 9살 남아. 대답은 어처구니없지만 마지막 해외 경험이 코로나 전의 것이라 많이 설레고 기대하고 긴장하는 듯했다. 어떤 마음일까 상상해 보다가 만약 내가 아홉 살 시절에 보름간 집을 떠나 이웃나라도 아닌 먼 나라로 여행을 한다면 엄청난 모험과 여정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평소 애정하는 책과 장난감을 본인의 가방에 단단히도 챙겼다. 아무쪼록 커다랗고 색다른 세계를 만나는 녀석의 기억 속에 평생의 장면이 차곡차곡 아름드리 쌓여 오래도록 남았으면 한다.


사실 우리 가족은 사회에서는 꽤 내향형인 사람들인데 셋이 붙어있으면 더 과감해지고 적극적인 하나가 되는 무리성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셋이 함께 여행을 할 때 대화도 부쩍 많아지고 즐거움이 훨씬 커진다. 이런 우리가 호주에서의 보름간의 여행에 착수했다. 우리는 이 시간 동안 퀸즐랜드주 이곳저곳을 누빌 예정이다. 신나고 흥미롭고 재밌을 게 분명하다. 우리니까.


여행 중에 홍이은 화백이 그린 우리 가족


첫날밤. 소중한 기억이 잊힐까 아쉬워 각자의 기록을 매일 남기자는 작고 귀여운 미션을 만들었다. 나는 노트북으로, 김 군과 이은은 연필과 종이 노트로. 이런 부지런한 시도는 처음이다.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잘 써서 책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까지 해본다. 쓰다 보면 뭐라도 되어있겠지! 하루하루 어떤 이야기가 채워질까. 클라이맥스로 치달리는 장대한 영화 같은 스토리는 아니더라도 별 볼일 없는 우리만의 장면들이 담긴 시트콤으로 잘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매번 꺼내보아도 질리지 않고 히죽히죽 웃을 수 있는 여름, 아니 겨울이 되길 바란다.






김 군✐


여름이었다.


매일같이 회사일과 씨름하는 와중에 이은이의 학교 여름방학까지 시작되어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인 여름이었다. 워킹맘에게 아이의 방학은 아무리 겪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회사에서의 내 몫도 해내야 하는 와중에 아이의 뻥뻥 뚫린 시간표를 몸으로 때워야만 한다. 


그래도 나에게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회사 근속 만 5년을 달성하여 부여받은 무려 2주짜리 리프레시 휴가! 오, 일상의 71%를 (7일 중에 5일이나 노동을 해야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비율이다. 토요일에도 일터에 나가야만 했던 지난 날의 선배님들을 진심으로 리스펙한다.) 일에 저당잡혀 사는 근로자에게 휴가의 힘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이 휴가만 생각하면 침대에서 몸이 벌떡 일으켜지고, 쌓여있는 일들을 해낼 호랑이 기운이 샘솟았다. 그래. 오늘만 버티면! 이번 주만 버티면! 이번 달만 버티면! 


그렇게 버틴 나날들이 언제 지나가 버렸는지도 모르게 어느덧 그리고 그리던 대망의 휴가 날이 다가왔다. 이 귀한 시간들이 기억의 파편들로만 남는 게 아쉬워 우리 셋은 매일을 각자의 시선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일기는 여행 첫째 날 저녁에 다 같이 둘러앉아 적는 첫 번째 기록이다.


인천공항과 헤어질 결심


이번 휴가를 계획하면서 행선지를 정할 때 세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1. 영어권 국가일 것

요즘 영어에 한창 재미를 붙인 이은이가 영어에 둘러싸여 생활하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동시에 평소 영어 울렁증이 심각한 나와 홍박사에게 내리는 특단의 조치이기도 했다.   


2. 셋 다 안 가본 곳일 것

여행이 더 특별하기 위해 행선지는 모두가 처음 가 보는 장소였으면 했다. 예전의 기억에 덧칠하는 여행보다는 셋 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색채와 형태로 가득한 여행을 원했다.   


3. 규정할 수 없는 곳일 것

‘휴양지’, ‘대도시’, ‘대자연’ 등 한 단어로 규정되는 여행지가 많다. 2주나 머물러야 하는 행선지라면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시와 자연이 가까이에 있고, 휴양과 생활을 동시에 해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추려진 몇 가지 장소들 중 최종 행선지는 ‘호주 브리즈번’이 되었다. 처음 브리즈번 이야기가 나왔을 땐 갸우뚱했지만, 생각해 볼수록 내가 잘 모르는 곳이라서 오히려 더 좋았다. 머리에 곧바로 떠오르는 키워드나 이미지가 없어서 쉽사리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 물론 SNS나 유튜브에 작정하고 반나절만 찾아보면 마치 반년은 다녀온 것처럼 행세할 수 있는 시대지만, 가기 전에 최대한 내 머릿속에 브리즈번이 형상화되지 않도록 온갖 정보들로부터 최대한 열심히 도망 다녔다.(?)


그 결과 오늘 하루 나는 거의 100번이 넘는 감탄을 했다. 모든 순간이 경이로웠고 모든 풍경에 눈이 커졌다. 처음 보는 수 많은 새들. 둘레를 다 재는 데 장정 서너 명은 필요할 듯한 아름드리나무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위를 시원시원하게 내달리는 시티 페리들. 그 속에서 한껏 여유롭고 자유로운 사람들. (이건 오늘이 일요일이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저런 모습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도 가능하구나’를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야 말로 여행의 진수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나! 여행의 첫날부터 그 진수를 제대로 느껴버렸다. 생경한 풍경 안에 자꾸 나를 넣어서 그려보게 하는 매력이 브리즈번에는 있었다.


보타닉 가든이 조타!


첫 번째 날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마트에 들러 현지인들과 뒤섞여 잔뜩 장을 보고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바비큐를 해 먹은 뒤 후식으로는 호주산 과일들을 먹었다. 사과는 알이 좀 더 작고 단단하지만 그만큼 과즙이 꾹꾹 응축되어 있었다. 귤은 또 어떤가. 색도 맛도 향도 한국의 귤보다 더 진한 반면 안에는 귀여운 씨가 하나씩 숨어있었다.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선 달콤함을 맛보면서 즐거워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 세상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어딘가에, 이처럼 익숙하지만 낯선 새로운 기쁨과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는 동안 그것들을 기어코 찾아내 모두 맛볼 수 있을까. 갑자기 엄청난 인생의 숙제가 생긴 기분이 들지만, 일단은 이번 여행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겠다. 

돌아가는 날까지 최대한 새로운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기뻐하면서 지내야지!


첫날의 만찬. 많이들 먹어두라구.



이은✐


오늘 비행기에 내려 호주에 도착했다. 엄청~ 졸렸다! 나는 쉬가 마려웠다. 그래서 화장실에 갔는데 소변대가 너무 높아서 힘들었다. 그리고 여권검사를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너무~ 추웠다. 그래서 햇빛이 드는 곳만 골라 다녔다. 그리고 아빠가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택시 타기 전 자물쇠를 주었다. 그 자물쇠는 고장 난 자물쇠였다. 택시에 탔다. 우리는 브리즈번에 flyrise*라는 호텔에 예약을 했다. 호텔은 2시부터 갈 수 있었다. 그리곤 우린 곧장 슈퍼로 가서 엄마와 아빠가 슈퍼에서 Wonka kinder surprised와 Gumiyum을 사줬다. 그리고 우리는 공원에서 열리는 나눔 장터에 갔다. 거기엔 좋은 물건도 많고 합창단도 있었다. 우린 공원을 둘러보았다. 호주에는 쓰레기새*가 많이 살았다. 그리고 우린 샌드위치 가게에 갔다. 난 햄치즈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우린 어떤 호수에 가서 배를 탔다. 그리고 호텔에 와서 휴식타임을 했다. 그리고 다시 마트에 가서 바비큐 파티 준비를 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맛있었다. 후식도 맛있었다. 끝~!

*Skytower

*쓰레기새: 호주 흰 따오기새(Australian White Ibis)의 별명(?), 호주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새로 쓰레기통이나 사람들이 흘린 음식물을 공략한다 


아프리카 소시지 나무의 열매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소시지 좋아 어린이

 


⛳︎ 오늘의 일정

브리즈번 공항 → 숙소 체크인 → 브리즈번 CBD (퀸 스트리트) →  점심식사 (Joe’s Deli) → 보타닉 공원 (선데이 마켓) → 시티 페리 → 마트 → 저녁식사 (숙소)


◇ 보타닉 가든과 선데이 마켓 

브리즈번에 위치한 보타닉 가든은 공원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일요일에는 선데이 마켓이 열려 더 다채롭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셀러들이 각종 먹을거리와 직접 만든 수공예품 등을 판매하고 한 켠에서는 작은 공연도 열린다. 마켓에서 주전부리들을 구입하여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것도 빼먹을 수 없는 즐거움! 매주 일요일 오전부터 시작하여 이른 오후까지 진행되니 시간을 잘 맞추어 가야 한다.

◇ 시티 페리

시티 페리는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도 좋고, 도시 안에서 이동할 때도 매우 편리하다. 교통 카드(Go Card)를 찍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하고 강을 따라 군데군데 위치해 있는 정류장에서 타고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무료로 이용 가능한 시티 호퍼도 있다.) 2층 자리는 뷰가 좋아 늘 인기가 많고 특히 밤에 타면 브리즈번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퀸 스트리트

브리즈번의 중심부에 위치한 거리로, 우리나라의 명동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옷가게와 마트, 식당 등이 즐비하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금요일 밤에는 브리즈번 스퀘어 앞 광장에서 라틴 댄스 클래스가 열리기도 했다.


◇ 장보기

브리즈번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마트는 Wool’sworth와 Coles 등인데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매하기에 좋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들도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소량이지만 한국 라면도 판매하고 있다. (한인 마트도 두어 군데 있다. 햇반이나 김치 구입 가능. 우리는 쌈장을 사서 여행 내내 아주 요긴하게 잘 먹었다.) 현금보다는 카드로 주로 계산하는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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