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1
2024년 8월 14일 수요일
홍박사✐
평소에 걷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언제든 가벼운 산책을 즐기지만 생각이 막히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순간이 오면 조갈에 냉수 찾듯 걸음을 재촉한다. 걷기가 주는 신체 각성 효과도 있지만 때론 걱정과 분노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한 몸부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멀리 달아나보지만 그 끝에서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돌아왔을 때 떠나기 전에 가지고 있던 마음속 번뇌가 비로소 잠잠해진다.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문득 여행이 아주 긴 걷기가 아닌가 싶다. 현실에서, 일상에서 멀리 떠나 새로운 걸 보고 경험하고 느낀 후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 돌아왔을 때는 못 보던 것들이 보이고 깨닫지 못한 것들을 깨달으며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그 여행이란 커다란 걷기 안에 수많은 작은 걷기가 있다.
이동을 위해 다양한 교통수단을 활용하지만 걷지 않는다면 다다를 수 없는 경험이 많기에 걷고 또 걷는다. 여행은 자연스레 걷기의 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오늘은 숙소에서 가까운 웨스트엔드 지역을 둘러보고 비튄 고 브리지를 건너 포엑스 맥주공장 투어에 브리즈번 스퀘어 도서관(공휴일이라 겉만 살펴보았다), 퀸즈스트리트까지 버스와 우버를 타지 않고 걷기로만 이동했다. 웨스트엔드는 빈티지한 가게와 핫한 카페와 술집, 젊고 멋진 친구들이 많아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있었고, 다리를 건널 때에는 흐린 날씨 탓인지 저 멀리 도시의 풍경이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투어로 들른 맥주 공장은 규모가 커서 꽤 긴 시간 동안 걸어 다녔지만 맥주가 만들어지는 코스를 따라가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다양한 코스의 걷기를 여러 감정으로 맛볼 수 있는 하루였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며 확인한 걸음 수는 19,000보, 거리는 14Km. 꽤 많이 걸었다고 아이에게 알려주자 자기는 어른보다 보폭이 작으니 더 많이 걸었다고 했다. 반박할 수 없는 논리였다. 같은 거리지만 아이에게는 1만 9천이 아니라 2배 정도가 되는 3만 보 이상을 걸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정말 수고했다고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더 많이 걸었으니 같은 거리를 걸었더라도 더 많은 걸 봤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여덟 살 인생에 난생처음 보고 들은 것들, 어른의 눈과 귀로는 쉽사리 지나치는 깨알 같은 것들, 그 많은 것들이 아이의 마음에 차곡차곡 좋은 경험으로 쌓이고 추억이 되어 시간이 흘러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마음속이 엉켜버렸을 때 하나씩 쓰윽 꺼내 쓸 수 있길 바란다. 나도 그랬듯 그런 보석들이 평생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테니까.
김 군✐
아침에 눈을 뜨니 창 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애써 일으켰다. 이런 때일수록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려야 한다. 현지인이라도 된 것처럼 몰아치는 비바람에 우산도 없이 온몸으로 맞서면서, 브런치가 맛있다고 소문난 가게를 찾아갔다. 맛있는 가게일수록 길고 긴 웨이팅을 견뎌야 하는 건 세계 공통의 진리. 인고의 시간 끝에 우리는 안쪽 자리를 안내받았다. 메뉴판에 적힌 모든 메뉴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고르는 과정이 약간 고통스러웠으나 고심 끝에 뜨끈한 라테 한 잔과 메뉴 세 가지를 주문하기로 했다. (혹시 나중에 브런치 가게를 하고 싶어질 때 참고하려고 메뉴판 사진도 찍어왔다.) 음식들은 과연 매우 훌륭했다. 우리는 마치 전날 꼬박 굶은 사람들처럼 별 대화도 없이 먹는 행위에 집중했다. 아침부터 비바람과 싸우고 식당 앞에 줄을 서느라 조금 진이 빠져있었던 차에 오늘 하루를 헤쳐나갈 힘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든든하고 따뜻해진 몸으로 다시 빗길을 나섰다. 다행히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오전에 미리 예약해 둔 XXXX 브루어리 투어가 2시에 예정되어 있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열심히 걷다 보니 저 멀리 중절모를 쓴 신사(=설립자)의 마스코트와 X자가 4개 그려진 거대한 붉은 벽돌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빈티지한 로고와 세월이 느껴지는 외관에서부터 공장의 헤리티지가 그대로 느껴졌다. 2018년도에 나고야 여행을 갔을 때 기린 맥주 공장 투어를 즐겁게 했던 기억이 있는터라 기대되는 마음을 안고 건물로 들어섰다.
투어는 맥주의 유래부터 원재료, 보관방법, 패키징, 시음까지 실제 공장의 생생한 현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보고 듣는 형식이었다. 투어를 가이드해 주신 분은 38년 간 이곳 맥주공장에서 근무하신 Bill이라는 분이었는데 나이가 지긋하신데도 시종일관 즐겁고 유쾌하게 가이드해 주시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본인이 평생을 몸 담아 온 곳이라 그런지 그는 어느 대목에서도 막힘없이 공장의 역사와 자신의 에피소드들에 대해 술술 풀어냈다. 그분 자체가 이 공장의 살아 움직이는 역사인 듯했다. 무엇보다, 긴 시간 회사를 위해 헌신한 분의 노력과 경험을 존중하고 투어의 가이드로 재채용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 Bill을 보면서 나 역시 언젠가 나이가 들 텐데 그때가 되어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몫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에 가까운 궁금증과 함께, 아파도 죽지 못하는 120세 시대에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늙고 싶다는 새삼스러운 바람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노년의 남성을 보며 자꾸 나의 노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스스로가 조금 놀랍기도 했다. 대략 일흔 정도 되어 보이시던데, 나도 저 나이 때 저렇게 에너제틱하게 계속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브루어리 투어에 와서, 맥주보다는 브루어리와 함께 나이 든 가이드가 더 신경 쓰이고 마음에 남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투어 끄트머리에 제공되는 맥주 샘플러와 버거 세트까지 깨끗하게 비우고 나오니 비는 완전히 그치고 구름 사이로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말간 얼굴이 너무 반가워서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원래 일기예보에서는 목요일까지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비구름이 예상보다 빠르게 물러나서 오늘 이후로 남은 여행기간 동안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을 것 같다. 참 감사한 일이다. 날씨도 우리를 도와주고 있고 나는 또 하루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내일은 오늘보다 더더욱 최선을 다해서 놀 것이다. 비록 앞날은 미리 내다볼 수 없지만 비가 오면 피하지 않고, 해가 나면 감사해하면서,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나이 들 것이다.
홍이은✐
"호주에서 가장 재밌었던 곳 Best Five"
5. 에어비앤비 마당
이유? 캥거루도 많고 루시랑 같이 놀 수 있어서
4. 골드코스트 숙소 수영장
이유? 거품이 나오고 넓은 온천이 있어서
3. 크리스탈 가게
이유? 보석도 많고 특히 크리스탈도 많아서 좋고 필리핀 악기가 있어서 좋다.
2. 골드코스트 퍼레이드 비치
이유? 퍼레이드를 할 수 있고 수많은 푸드트럭이 있어 배고프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고 심심하면 옆에 바닷가가 있어 심심할 때마다 가서 좋다.
1. 돌이 많은 비치
이유? 말미잘도 많고 가재도 많고 따개비도 많고 고둥도 많아서 언제든지 잡을 수 있고 또 옆에 카페가 있어서 언제든지 와서 먹을 수 있다. 흙도 좋아서 모래성을 만들기도 쉽고 물도 따듯해서 물에서 수영하기도 좋고 바로 옆에 놀이터가 있어 어린이들이 놀기 좋고 놀이터에 철봉이 있어 어른 중에 운동을 좋아하는 분이 운동하기 좋고 비치 옆에 가게들이 있어 쇼핑도 할 수 있고 퀸즐랜드 best 3위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다.
느낀 점: 재미있었던 장소를 떠올려 정리하는 것도 좋았고 이 내용을 나중에 책에다 넣는 게 신났다.
⛳︎ 오늘의 일정
숙소 → 웨스트 엔드 거리 (West End Street) → 모닝 애프터(Morning After) → 웨스트 빌리지 (West Village Shopping Precinct) → 고 비트윈 브리지 (Go Between Brg) → 포엑스 브루어리 투어 (XXXX Brewery Tour) → 퀸스트리트 (Queen’s Street) → 숙소
◇ 웨스트 엔드 스트리드 (West End Street)
브리즈번의 연남동이라 일컬어지는 곳. 헌책방, 레스토랑 등의 오래된 터줏대감 점포들부터 브런치 카페, 바 등의 젊은이들이 힙한 감성으로 꾸려나가는 가게들까지 한 동네에 어우러져 웨스트 엔드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더 사랑하는 곳이라고 하니, 관광지의 북적거림에 지쳤을 때 잠시 들러 휴식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 모닝 애프터 (Morning After)
웨스트 엔드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 맛있고 산뜻한 브런치 메뉴들을 즐기러 아침마다 사람들이 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선다. 브런치 외에도 각종 베이커리, 커피, 주스, 오늘의 메뉴(매일 바뀐다고 한다) 등을 판매한다. 바깥에도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니 날씨가 좋을 때에는 햇살과 바람을 곁들인 브런치를 즐겨보면 어떨까.
◇ 웨스트 빌리지 (West Village)
줄 서는 맛집들과 소품샵, 마트 등이 들어서 있는 작은 거리. 모든 식당들이 사람들로 늘 북적이고, 특히 거리 안쪽에 위치한 Harris Farm Market은 시티 근처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물건도 다양한 마트로 손꼽힌다. 싱싱한 꽃, 과일, 채소, 고기, 치즈, 베이커리 등등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대형 체인마트인 wool’s worth도 그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니, 여행 중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들러보자.
◇ 고 비트윈 브리지 (Go Between Brg)
브리즈번에서 결성된 인기 록밴드 “The Go-Betweens”의 이름을 따서 만든 다리. (우리나라에 이런 다리가 생긴다면 어떤 록밴드의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브리즈번 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어서, 건너면서 강의 경치와 강가를 따라 달리는 사람들을 감상할 수 있다. 다리를 따라 조깅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포엑스 브루어리 투어 (XXXX Brewery Tour)
136년 전통의 호주 맥주 브랜드 XXXX의 양조장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 가이드가 맥주 공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맥주 제조 과정 및 XXXX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준다. 투어를 마치면 맥주 시음과 함께 버거와 감자튀김을 맛볼 수 있다. 뽀짝한 브랜드 굿즈 코너도 마련되어 있으니 꼭 구경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