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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Oct 26. 2024

여행이 끝나고 난 뒤

Day. 14

2024년 8월 17일 일요일



홍박사✐


보름간의 호주 일정이 끝났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적도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 북반구로 넘어가는 스크린 안의 조악한 비행기 그림을 멍하니 따라가자니 이제 선을 넘었으니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요!라고 안내를 하는 것만 같다. 김 군은 옆에서 밀린 잠을 자고 있고 아이는 전구빛 아래의 엄마 무릎에 누워 로빈슨 크로소를 다시 읽고 있다. 사뭇 진지한 얼굴인걸 보니 이야기 속 모험이 정점에 다다르고 있는 걸까. 우리 가족이 겪은 보름의 시간을 톺아보니 하나의 '모험'을 끝낸 것 같기도 하다. 여러 계획을 세워야 했고, 그 안에서 일이 틀어지기도 하며 대안을 만들어야 했다. 끝없이 길을 찾아야 했고 매일 밤에는 다음 날을 준비해야 했다. 아이는 언제나 씩씩했지만 종종 돌봄과 위로가 필요하기도 했다. 여행의 기회를 선물한 김 군에게는 있는 힘껏 행복한 여정을 선물하고 싶었다.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처럼 모험 끝에 해방은 없다. 좁디좁은 이코노미클래스 3석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9시간을 이동해 현실로 복귀하면 밀린 회사 업무를 처리해야 하며 동시에 아이의 남은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고심해야 한다. 여행의 진실은 세상에 대한 발견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황급한 도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도피의 시간이 기어코 끝나버렸다면 우리가 보낸 보름은 그저 시간 낭비였을까. 그럴 리 없다. 모험의 수많은 퀘스트 앞에서 우리가 머리를 맞대어 이야기하고 문제를 해결해서 찾은 해답은 이따금 꺼내먹을 수 있는 우리만의 추억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번 여행이 우리 가족이 추구해야 하는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 준 것도 같다.


No Worries.


친절한 호스트에게서, 길거리에서 만난 낯선 이들에게 건네들은 이 말에 대해 김 군과 이야기를 나눴었다. ‘별 것 아닌데 힘이 나네.’ ‘이상하게 걱정이 사그라드는 것 같아.’ ‘너무 좋은 말 같아.’ 공교롭게도 일이 꼬이거나 풀리지 않던 상황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라 우리에게 그 잔향이 더 컸던 것 같다. 어떤 뉘앙스를 갖고 있는지 좀 더 찾아보니 그간 익숙했던 표현인 ‘Don’t worry’ 보다는 진지하지 않되 부드럽고 편안하게 일상적인 대화에서 상대방에게 위안을 건넬 때 사용한단다. 듣기 참 좋은데 숨은 뉘앙스도 딱 느낌 그대로였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얼마나 수많은 불안과 걱정 속에 살아갈까 생각하면 조금 아찔해진다. 겪어도 겪어도 당황스럽고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답이 있을 것만 같은데 찾지 못할 때도 많다. 세상은 편리해진다는 핑계로 좀 더 복잡해지고 되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진다. 이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걱정 마.’ ‘괜찮아.’와 같은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한 마디가 아닐까. 함부로 조언하고 가르치려 하지 말고 딱 필요한 만큼의 공감과 다정함.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더군나나 가장 가까운 반려자에게 듣는 그 한마디를 건네줄 수 있다면 세상 최고의 멘토나 구루에게 듣는 조언보다 더욱 힘이 있지 않을까. 새로운 문제와 위기가 닥쳐올 때 No Worries 가 써진 이정표는 우리가 어디를 향하든 또 한 번 잘 이겨내리라고 토닥여줄 것이다.






김 군✐


고백하자면 나의 마지막 일기는 여행을 다녀온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에 쓰이고 있다. 입국 후 이틀 뒤부터 지금까지, 언제 그렇게 긴 여행을 다녀왔냐는 듯이 회사와 학교와 학원을 오가고 있다. 책임과 의무와 기한과 숙제와 보고와 타의와 평가와 ‘잠시만요’와 ‘죄송한데’가 가득한 세상으로 기어코 다시 돌아오고야 만 것이다.


변한 것 하나 없는 여전한 일상이었지만 그 틈바구니에서 호주에서 써온 일기를 하나씩 정리해서 올리는 일은 작고도 큰 즐거움이었다. 일기에 적힌 감상과 풍경을 가만히 따라가며 곱씹다 보면 다시 여행하던 날로 돌아간 듯 그날의 온도, 습도, 조명까지 사진처럼 떠올랐고, 저녁 식사 후 KBS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을 BGM 삼아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의 하루를 기록하던 시간들, 일기를 적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곡이 너무 좋아서 잠시 연필을 멈추고 조용히 귀 기울이던 순간까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곤 했다. (Oscar Peterson Trio의 Hymn To Freedom이라는 곡이었다. 제목도 어쩜 ‘자유를 위한 찬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듣고 있다.)



돌이켜보건대 낯선 장소를 종일 헤매고 난 하루의 끝에 뭔가를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는 압박이 때로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날씨가 궂거나 몸이 고된 날은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이 여행과 기록이 책임과 의무와 기한과 숙제와 보고와 타의가 아닌 순전히 우리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두고 온 일상과는 정확히 정반대로 모든 것들을 우리의 순수한 자의로 해 내면서 오랜만에 ‘재미있다’ 내지는 ‘신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릴 때의 여행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기분이어서 신선하기도 했다.


평소 나의 걱정과 근심들은 대부분 남들의 기준, 요구,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했었다. 이번 여행과 기록의 여정을 통해 앞으로 어떤 자세로 삶에 임해야 할지 희미하게나마 갈피가 잡히는 것 같다. 호주에서 배워 온 자유를 위한 찬가를 목청껏 부르면서 내 XXXX대로 살아보고 싶다. 누가 뭐라 하든, "No Worries"를 외치면서! 아무튼 이렇게, 한여름에 시작된 여행은 이 일기를 마지막으로 늦가을에서야 끝이 났다.


우리의 느슨하고 완벽한

여름이었다.






이은✐


여행을 마치며

엄마아빠와 같이 호주에 가려니 신나는 생각.

배영을 마스터해 기쁜 생각.

호주를 떠나려니 아쉽고 서운한 생각.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한국 사람이 하던 샌드위치 집.

또 가고 싶은 곳은 스테이크 집.

가장 귀여웠던 캥거루.

가장 좋았던 숙소는 골드코스트 숙소. 또 가고 싶은 숙소는 비치몬트 숙소.

가장 좋았던 장소는 브리즈번 시청. 또 가고 싶은 곳은 브리즈번 뮤지움.

가장 재미있었던 놀이기구는 관람차. 또 타고 싶은 놀이기구는 물 위에 떠다니는 공.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브리즈번 여행을 추천합니다.

느낀 점은 ‘여행은 힘들다’였다. 그다음 여행은 뉴질랜드로 가고 싶다.





가족 일동✐


그간 저희의 작은 행복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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