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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 Mar 07. 2024

라이프스타일로서 스타트업을 선택하다 (1/2)

나는 지금 20명이 채 되지 않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영업, 마케팅, 사업개발, 전략, 프로덕트 오너(PO)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전에는 맥킨지라는 전략 컨설팅 펌에서 1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전략’이라는 주제의 프로젝트만 6번 하고 나왔고, 대학교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학업에 충실하지는 않았기에 학교 수업에서 들은 내용이 도움이 된다고 느낀적은 크게 없다(번외로 스무살 때는 경찰대라는 특수한 학교에 입학했다가 중퇴했다). 다만 대학 시절 스타트업, VC, 빅테크 등 다양한 형태의 회사에서 일해보기는 했고, 짧게나마 창업을 시도해본 적은 있다(물론 결과가 좋지는 않았기에 지금에 이르렀지만).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나에 대해 소개하는 일도 종종 있는 편이다. 영업 카운터파트, 사업개발 협력사, 투자자와 같은 업무적인 관계는 물론이고, 업무적인 관계와 무관한 커피챗에도 종종 응하고 또 청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 글을 써본 적은 한번도 없다. 지금과 같은 장문의 포스팅은 물론이고, 흔한 유튜브 댓글조차 남겨본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나의 자아와 생각은 계속 변하는데, 어떠한 순간이 캡쳐(내지는 박제)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종종 글을 써보려고 한다. 우선 앞서 말한 우려들의 경우 ‘남들이 내 글을 열심히 보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는 가정에 한해 유효하다. 그렇지만 살다 보니 딱히 사람들은 남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을 뿐더러, 사람과 생각은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대부분 납득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반대로 글을 쓰며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예전에 비해 많다고 생각한다. 우선 솔직하게는 나와 회사를 알릴 필요가 생겼다. 앞으로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비즈니스 인력을 채용하게 된다면 어떤 형태이건 나와 일하게 될 것인데, 내가 회사를 대표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는 나의 글을 통해 우리 회사가 관련 도메인(인공지능, 이커머스 등)과 일(제품개발, 세일즈, 마케팅 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이러한 생각들을 공공연하게 공유한다고 생각하면, 한번 더 정제하고 정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은 것 같고, 때로는 댓글 등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동기부여로 작용하고 있다.


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다. 위에 밝혔듯 코딩 빼고는 어떤 일이든 필요하면 하고 있는데, 많은 시행착오와 가끔 있는 성공들에 대해 공유하고자 한다. 글을 읽고 한 명의 독자에게라도 울림을 주거나 도움이 되는 것이 1차적인 목표이다(지난 3개월간 작은 조직과 프로젝트일수록 목표를 점진적으로 상향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럼 오늘은 왜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내지는 좁게 말하면 일에 대한 가치관)을 실현하고, 내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첫 두 편의 글에서는 나에 대해 있는 그대로 소개해보고자 한다(1편: 어린 시절~대학교 초중반 / 2편: 대학교 후반~지금). 이를 통해 저런 성향의 사람이, 저런 동기부여를 가지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설명해보고자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은 일을 잘 하지 못했다. 스스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엄마가 시켜서” “선생님이 하라고 해서”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괜한 반감마저 가졌던 어린이였다.  그래서 10살까지는 ‘공부’라고 일컬어지는, 학교 수업 및 시험에 충실하지 않았다. 공부를 안했으니 성적이 낮았던 것은 당연하고, 그러던 와중 초등학교 3학년 때 반에서 실시한 영어시험에서 말 그대로 ‘꼴등’을 했다. 항상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고, 어릴때는 최대한 많이 놀아봐야 한다고 하시던 부모님도 그때는 조금 충격을 받으셨던 것 같다. 아닌게아니라 두분은 대학에서 각각 영문학/영어교육학을 전공하셨기도 하다.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가 내게 공부를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던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단순히 “반에서 꼴등이 뭐니, 엄마 마음이 속상하구나”라는 식은 아니었고,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설득을 해주셨다. 우선은 공부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영어를 공부하면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내가 더욱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기도 하고,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것보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할때 할줄 알면 가장 좋은 것이라고도 얘기해주셨다(와닿지는 않았지만 ‘다른 과목들보다는’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다닐 동안은 영어만 조금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행히 졸업할 때 즈음에는 영어만큼은 학교에서 꽤 좋은 성적을 받는 학생이었고, 어느정도 영어 공부에 재미도 붙였던 것 같다. 그리고 중학교에 갈 무렵에는 다른 과목에도 슬슬 눈이 가기 시작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냥 공부 잘하는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에게 ‘학원’에 보내달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내게 그럼 학원에 왜 가야하는지 설득해야 한다고 말해주셨다. 처음에는 그 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학원 다니는데 왜 나만 안보내주냐고 울었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엄마는 끝끝내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고, 나는 엄마에게 학원에 다니면 왜, 어떻게 성적을 올릴지에 대한 계획을 공유해준 뒤에야 처음으로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학교 시절까지는 공부에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면 다른 것보다는 동기부여의 부족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그저 ‘공부 잘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영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들(특히 암기과목)을 공부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힘들어했다. 초등학교때와는 달리 하기 싫지만 공부 잘하는 친구가 되기 위해 붙잡고는 있었는데, 성적은 내가 원하는 만큼 잘 나오지는 않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도 비슷했던 것 같다. 나는 이번에도 엄마를 간신히 설득하여 ‘외고’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설득 논리가 잘 생각나지는 않지만 사실 별다른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공부 잘하는 애들이 가는 학교였고 부러워서 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대서 입학하게 되었다(엄마도 아마 알면서도 자식이니까 보내주셨던 것 같다). 1학년 때는 그래도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해서 입학한 만큼 내신 공부를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선생님들이 유망한 학생이라 생각해주셨던 걸로 기억한다(정부24에 들어가면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를 열람할 수 있는데, ‘전과목에서 전교 최상위권 성적에 두 학기 연속 장학금을 받은~’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남에게 그럴듯해 보이고 싶어서’라는 동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2학년 1학기에 나의 성적은 수직낙하하였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과 부모님, 선생님의 걱정으로 한 학기를 가득 채웠던 것 같다. 2학기가 시작되었음에도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학업에 대한 고민은 날로 깊어만 갔다. 고민 끝에 나는 ‘내신’을 포기하기로 결정했고, 이전까지는 따로 공부해본적이 없던 ‘수능’공부에 집중해보기로 결정했다. 그전까지 수능 위주로 대입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는데, 고3때 딱 하루로 나의 지난 학창시절이 평가받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수능공부를 시작하고 나니 꽤나 재미있었고(나의 고등학교는 내신시험이 거의 암기식이었는데, 수능은 암기보다는 사고력에 초점이 있다 보니), 모의고사 성적도 금방 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스스로에 대해 다시한번 정리할 수 있었는데, 나는 하루하루 스스로가 와닿고 재미있는 일을 해야 능률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던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을 뒤로하고 내가 선택한 학교는 경찰대학이었다. 선택의 이유는 부모님께서 너무나 원하셨기도 하고, 나 역시 경제적인 부담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집은 대학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줄 수 없는 환경이었고, 부모님도 어릴 때부터 “스무살 이후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당시의 경찰대학은 입학만 하면 취업을 보장해주고, 직업 안정성도 높으며, 대학생활 동안 학비가 면제이고 생활비까지 지원해주는 학교였다. 자연히 부모님은 내가 경찰대를 다니시기를 바랐고, 나는 처음에는 위에 말한대로 하고싶은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부정적이었으나 결국 부모님에게 설득되어 경찰대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경찰대학에 입학하고서는 얼마되지 않아 자퇴를 결심했다. 우선 경찰대 졸업 후 나를 기다리는 삶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제한적이고, 납득되지 않더라도 조직적 결정에 수긍해야 한다는 점이 특히 그러했다. 선배들이 잘 챙겨주신 덕분에 하루하루의 생활은 꽤나 재밌었지만, 결국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자퇴 의사를 밝히고 나서 경찰대의 담당 교수님과 부모님은 극구 만류했다. 긴 공방 끝에 부모님은 “그래서 자퇴하고 서울대 갈 수 있겠니?”라고 물어보셨고, 나는 “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자퇴 확인서에 바로 서명을 해 주셨다.


나는 그렇게 경찰대를 자퇴 후 수능을 한번 더 보았고, 운 좋게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입학하고 나서 1학년 동안은 내내 방황했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지 못해서였다. 집안 사정상 확실하게 서울대에 합격해야 했고, 불확실성을 가능한 배제하고 확률 높은 학부에 지원해야 했다. 처음부터 뭔가 자의가 아니었던 탓인지, 학교 수업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특히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과 동떨어진 강의를 4년 동안 듣고 사회에 나간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물론 지금은 인문학이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체감한다).


끝내 1년 동안 스스로 설득될 만한 목표를 발견하지 못한 나는, 2점대 학점과 함께 입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입대한 군대는 초반에는 의외로 편하고 즐거웠다. 어차피 누구나 2년 버리러 온거고, 뭘 어떻게 하려는 것보다 그냥 적당히 때우다 가자고 생각하니 그닥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몇개월쯤 지나니 슬슬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다시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주로 경비 업무를 했는데, 경비 업무라 함은 그냥 정해진 시간동안 가만히 서있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원래 시간을 잘 가게 하려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점점 그렇게 하기 힘들어져 갔다.


그래서 비록 군생활이지만 그나마 재미있는 업무가 무엇일까를 열심히 찾았고, 중앙 지휘부서의 홍보실(보도자료 검토/배포 담당) 담당 병사로 면접을 볼 기회를 얻었다. 다행히 합격하여 일병 후반부터는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군대의 특성상 직업군인(직원)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지만, 나름대로 주어진 일을 효율화하고 빠르게 처리하는데서 만족했다. 직원분들도 가끔 일을 잘한다며 좋아해 주셨던 걸로 기억하고, 그러한 타인의 칭찬에서 오는 만족감도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1년정도를 중앙 부서에서 조금은 색다른 군생활을 경험한 뒤 전역하게 되었다. 전역할 무렵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 이유를 요약하자면 ‘인생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 군대에서 부서를 옮기는 것과 같은 일들은 주어진 선택지(이미 존재하는 대학교들 중 하나에 입학, 이미 존재하는 군 내 부서 중 하나로의 전출) 중 하나를 택하고 노력해서 쟁취하는 종류의 일이었지만, 이후의 인생은 선택지가 너무 많아 객관식이라 보기 어려웠다. 그 당시 괴로워하며 했던 생각은 주로 ‘나는 지금까지 2n년 살아오면서 무엇을 잘하는지,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구나’ 였다.

어쨌거나 복학을 하게 되었고, 1차적인 목표로 삼은 것은 ‘전과’였다. 당시의 나는 그래도 ‘와닿는’ 공부를 하고 싶었고, 가장 와닿는 키워드는 ‘돈’이었다. 그래서 돈과 밀접해 보였던 경영학과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1년동안은 학점 공부를 열심히 해보기로 결심했고, 너무나 뛰어난 친구들 사이에서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4점대 학점을 달성할 수 있었다. 전과도 성공했다. 1학년 때 학점이 너무 낮아 으레 알려진 전과 기준 학점에는 미달했지만, 전과 지원을 하며 담당 부서에 내가 전과해야 하는 이유를 작성해서 같이 첨부했는데 그것이 조금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다만 전과한 이후로는 더이상 학점 공부를 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번에도 ‘와닿지’ 않았다. 목표 달성을 위해 단기간 동안 열심히 하는것은 가능했으나, 더는 동력이 생기지 않았다. 특히 전과하는 과정에서 경영학과 수업도 많이 들었는데, 오히려 인문학 수업보다도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전과 이후에는 실제 사회에서, 직장에서 쓸 수 있는 실무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집단을 찾았다. 서울대학교에는 ‘학술동아리’라고 부르는 집단들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자체적인 교육 세션과 선후배 네트워크 기반의 산학협력 프로젝트, 인턴십 등을 주요한 혜택으로 제공했고, 사회에 나갈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나로서는 매력적인 기회였다.


그런데 와중에 남들이 소위 ‘정석’이라고 생각하는 코스를 밟고 싶지는 않았다. 끈끈한 네트워크와 탄탄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컨설팅, 투자은행, 대기업 등에 취업하는 것은 문제없다는 학술동아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동아리에서 먼저 활동하고 있던 친구들은 내 생각에도 아주 역량이 뛰어나고, 커리어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은 내게 ‘너도 욕심 많고 열심히 하는 편이잖아. 여기 들어오면 잘 맞을거야’라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뭔가 나만의 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학술동아리에서 검증된 프로세스를 통해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도 좋지만, 내 생각대로 결정하고 실행하면서 배워나갈 수 있는 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만들어진지 1년이 갓 넘은 ‘데이터 분석’ 학술동아리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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