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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23) 인도 단편소설 '월급 45루피'

by 동화샘 지연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에서

'이기는 습관' 뿐만 아니라,

작가가 기록해준

인도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이야기'가 참 좋다!


두 번째 습관- 배우고 성장하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고대 인도의 창조 설화에 따르면, 신은 가장 먼저 조개를 만들었다. 조개는 고요한 심해에서 생동감 없는 삶을 산다. 하루 종일 읿을 열어 약간의 바닷물을 흘러들어오게 한 다음 다시 입을 닫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다음으로 독수리를 창조해 하늘을 날아 가장 높은 산의 정상까지 올라갈 자유를 주었다. 이러한 자유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독수리는 날마다 먹잇감을 얻기 위해 '투쟁'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신은 인간을 창조한 뒤 조개와 독수리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할 권리를 부여했다.

조개와 독수리

딱 둘 중에서만 고르라면,

당신의 어떤 것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여덟 번째 습관- 어려움을 돌파하라(포기하지 말고)에서

인도의 한 시인이 말했듯 '인생은 하나의 여인숙'일지도 모른다. 그 여인숙에 어떤 손님을 들이고 어떤 손님을 떠나보낼지는 오롯이 당신에게 달려 있다.


이렇게 인도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기던 차에...



인도 작가 나라얀(1906~2001)의 단편소설 <월급 45루피>(1972)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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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K.나라얀(1906~2001)은 인도의 신화와 전설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으며, 주로 비극과 희극이 혼합된 작품을 썼다. 1935년에 발표한 첫 작품 <스와미와 친구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작품에서 인도인의 독특한 기질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영어로 작품을 쓴 최초의 인도 문학가로, 안톤 체호프, 윌리엄 포크너, 오 헨리 같은 작가들과 견주어진다.



단편 소설 "월급 45루피"는 인도의 어느 도시에 사는 아빠 벤카트 라오가 딸 샨타에게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한 날의 아침부터 밤까지 있었던 이야기다.


벤카트 라오는 월급 40루피로 회사가 자신을 몽땅 산 것처럼 굴고 있다고 불만이 있지만, 가장의 무게 때문에 꿋꿋이 회사에서 경리과 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딸 샨타가 영화 광고지를 보여 주며, "아빠, 오늘 함께 영화 보러 갈래요?"라고 묻는다. 딸과 영화를 본 게 겨우 두 번뿐인 걸 깨닫고 아내와 딸에게 미안하다.

"오늘 저녁에 영화 보러 가자. 5시쯤 올 테니 준비하고 있어라."

딸과 약속을 하지만,

"아이한테 지키지고 못할 약속은 하지 마세요."

아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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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딸 샨타가 학교에서 5시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낮 2시 45분. 선생님께 아빠가 일찍 오라고 했다고 하고, 샨타는 평소보다 일찍 집에 간다. 가장 좋아하는 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땋은 후 녹색 리본으로 묶었다.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한 뒤, 이마에 주홍색 표식을 찍었다(인도의 힌두교 장식용 점 '빈디'). 아빠를 기다리다가 아빠 회사에서 바로 극장으로 가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는다. 다행히도 옆집 하인을 만나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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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빠 벤카트 라오는 회사에서 정시 퇴근을 또 방해하면 사표를 낼 각오를 하고 있던 터다. 그러나, 18루피 차액의 이유를 찾느라 5시 정시 퇴근을 못하고 있다.


'나는 40루피에 자신을 깡그리 팔아 버린 노예가 아니다. 그 정도 돈쯤은 쉽게 벌 수 있을 거야.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굶어 죽는 편이 명예롭겠지.'라고 생각하며,

사직서를 쓴다.


사직하고자 합니다.
당신들이 40루피로
나의 육신과 영혼을 샀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입니다.
나는 당신네들이 몇 년 동안
나에게 책정해 놓은
그 보잘것없는 40루피를 받는
노예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굶어 죽는 것이 '
나와 내 가족을 위해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네들은 내 월급을 올려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신네들끼리는 몫을 잘 나눠 가지면서
왜 우리는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이제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은 나의 사직서입니다.
나와 내 가족이 굶어 죽게 되면,
우리의 혼령이 당신들을
평생 괴롭힐지도 모르겠습니다.


"벤카트 라오, 나는 자네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할 거라고 확신하네. 회사에서 오늘 임금 인상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자네 월급을 5루피 인상하자고 했네. 아직 최종 결정이 된 것은 아니니 혼자만 알고 있게."


이 말을 듣고 벤카트는 사표를 건네기는커녕 2주 휴가를 신청하려다가 취소한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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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벤카트 라오는 잠이 든 샨타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외출해 보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어. 오늘 회사에서 월급을 올려 주겠다는 거야......"


그는 흐느끼며 말했다.









[후기]

8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아빠가 생각이 난다.

아빠는 은행에 다니셨고 2~3년마다 전근을 다니셔야 했다. 우리 4남매는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아빠를 따라 전학을 다녔다. 첫째인 오빠가 고학년이 되면서 한 지역에 머물기로 하면서, 아빠는 홀로 이곳 저곳을 이동하시며 주말에만 집에 오셨다(한때는 우리 여섯 식구는 서울 등 네 곳에 따로 사는 이산 가족이었다). 주말에 집에 오실 때 술에 취하면, 아빠는 엄마만 좋아한다고 우리한테 그렇게도 서운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아빠가 술 취해서 하는 말이 듣기 싫어, 놀다가도 아빠가 들어오면 자는 척하거나 피해 다녔다. 1998년 IMF 때 아빠는 은행에서 명예퇴직으로 나오신 후, 한참을 고개 숙인 채 사셨다. 그때는 아빠가 힘들어 하는 줄도 몰랐었다. 그저 아빠가 직업이 없다는 게 창피했었던 것 같다. 몹쓸 딸 같으니라구... 스무 살이 넘어서도 철이라고는 안 들었었구나...

'가장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몇 kg쯤 될까? 우리 아빠가 짊어졌던 그 무게는 어느 정도였을까 물어보고 싶은데, 아빠가 곁에 없다. 마흔을 한참 넘어 곧 쉰 살이 되는 지금도 아빠가 없다고 하니까... 눈시울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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