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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은 Oct 10. 2024

친절하지 않음은 불친절함이 아니다


집 앞에 정말 자주 가는 베이커리가 있다. 구움 과자도 잘 만드시고, 버터뿐만 아니라 내용물도 모두 좋은 재료를 사용하시는 데다 매일 새벽 부지런히 일하시는 것을 잘 알아서, 동네 빵집 치고는 가격이 좀 있는데도 몇 년째 가족이 애용하고 있다.


몇 년간 거의 모든 종류의 빵을 먹어봤고, 그중 분명 별로인 빵이 몇 가지 있지만서도 취향에 너무 잘 맞는 빵도 많다. 주인분께서는 인사를 반갑게 해 주시고, 나는 시간을 갖고 빵을 고르고. 넓지 않은 빵집임에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다.


유산지를 트레이에 놓고도 내 고민이 길어질 때에는 잠시 지켜보시다 주방으로 가서 반죽을 마저 둘러보시곤 했다. 가장 좋아하는 빵은 버터프레첼인데, 프레첼 빵만을 우선 준비해 두시고 구매하면 바로 중간을 갈라 시원한 버터 조각을 끼워 잘라주신다. 다른 빵들은 별도의 준비가 필요 없는데 이 빵만 그렇다.


나는 요리나 베이킹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 비슷한 것이 있다. 일의 순서에 굉장히 능하다는 것이다. 음식이 내어지는 전체적인 시간이나 각 재료들의 각기 다른 익힘 시간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특히나 1인 사업장의 경우 즉각적으로 혼자서 주문 건을 다 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대체로 손이 빠르고 우선순위를 추리는 데에 능할 것이라는 나름의 고정관념이 있다. 


정말 그런지 사장님은 내가 트레이에 담는 걸 슬쩍 보시면서 포스기를 하나둘 찍어두신다. 바로 계산하고 포장해 갈 수 있도록. 버터프레첼을 사겠다고 결심이 들어서 프레첼을 트레이에 올리면, 사장님은 포스기에 찍고 냉장고로 향해 버터를 꺼낸다.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나도 프레첼을 집으면 내 트레이가 아니라 사장님의 도마 위에 둔다. 사장님은 웃으시며 별말씀 없이 어느새 다 준비해 두신다. 


예약할 일이 있어 네이버 플레이스로 검색을 하다 우연히 리뷰를 보게 되었던 날이다. 빵을 다 고른 후 트레이를 캐셔 중간으로 올려뒀는데, 주인분께서 그것을 휙 들어 캐셔 왼쪽으로 탁 두시며 포장을 시작하셨다는 이야기이다. '이쪽으로 주세요' 한마디가 어려웠는지 기분이 참 나빴다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는 방문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적어두셨다. 게다가 '오늘따라 말이 빠르셔서 빨리 사고 나가라는 느낌'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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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과 불친절은 두 사람의 가위바위보 같은 것이 아니라서, 한 명이 이긴 판이라는 것이 다른 한쪽은 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친절하지 않은 경우를 불친절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0과 1이 아니라, 0에 가까운가 1에 가까운가, 그 사이에도 많은 수치가 있는 온도와 비슷하다.


리뷰를 작성한 분이 기대하기에 판매자의 친절은 더 뜨거워야 했을 것이다. 더 환한 응대, 더 밝은 웃음, 더 긴 문장, 더 절절한 스몰토크. 내가 봐도 이 사장님은 아주 살가운 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살갑고 정이 많은 분은 아니지만, 담담함 너머에서 자신의 상품에 대한 책임감과 이 동네에서 터를 잡고 몇 년을 운영하고 있는 자신감이 보인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감은 쉬이 생기지 않는다. 응당 이 돈을 받아 마땅한 상품인가 하는 생각 없이 마냥 유행이나 흐름을 따라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요즘은 훨씬 더 많다. 이 분은 넉넉하고 좋은 재료, 늘 동일하고 좋은 품질을 관리한다. 밀가루나 계란 등 변동이 큰 원재료와 직결되는 만큼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 또한 사업자의 능력일 수 있다.


일관적인 불친절도 당연히 그렇지만, 때로는 격한 친절함도 방문을 머뭇거리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느 단골이었던 카페는 갈 때마다 내가 지불한 음료 외에 티 한 잔을 더 주셨는데, 감사함을 번번이 표했지만 어느새 마음의 부담으로 남아 발길이 끊기게 되었다. 어느 식당은 가족과 너무 자주 간 나머지, 막내 동생에게 몇 번 용돈을 주시면서 발길이 끊겼다.


한편, 나는 이 분이 가진 미온의 친절함이 적당히 좋다. 구매 시 적립에 사용하는 번호 네 자리, 버터 프레첼을 자주 구매해 간다는 것, 동생과 엄마와 내가 모두 같은 전화번호 뒷자리를 쓴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는 것. 티 내지 않으셔도 감사한 마음과 내심 기분 좋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부분은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고객 입장인 내가 값을 잘 지불하고 사장님을 존중하며 공간에 머무는 것 그 이상으로 친절의 대가로서 상대방을 만족시켜야 할 것 같은 부담을 주지 않는다. 거절이 어려운 내게, 마지노선이 얇은 내게 이런 부분은 더욱 발길이 잘 닿게 만드는 요인이다.


누군가에게는 미온의 친절이 불친절로 이어질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미온의 친절이 뜨거운 친절보다 낫게 느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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