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간
나는 사하라의 붉은 모래 위를 걷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모로코에서 따진을 먹고 향긋한 민트차도 마셨다. 생애 처음 간 유럽의 나라들은 고풍스러운 건물과 바닥에 깔려 있던 타일 한 장도 밟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웠다. 4월과 5월의 유럽 하늘은 또 얼마나 파랗고 하얗던지. 뭉게뭉게 떠다니는 흰 구름을 보면서 잊었던 우리나라 가을 하늘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레온의 순례길을 걸을 때엔 광활한 황무지에 피어난 작은 꽃들에 마음을 빼앗겼더랬다. '내가 이것을 보려고 여기에 왔구나', 환호성이 절로 터졌다. 아름다운 자연을 내 두 발로 걷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올봄, 나는 생애 첫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4월 22일 출발해서 5월 31일에 돌아오는 39일간의 여정이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쉽게 국경을 쉽게 넘을 수 있었다. 비싼 비행기를 타고 외국여행을 다니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많이 부러웠다. 가고 싶은 나라, 도시가 얼마나 많던지! 추리고 추려서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이탈리아 4개국을 뽑았다. 욕심을 부리고 들면 시원찮은 무릎 연골이 너덜너덜 해지고, 통장은 나달나달 할 판이었다. 욕심을 줄이며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꼬박 2달이 걸렸다. 가고 싶던 도시를 빼는 일은 살 빼는 다이어트보다 더 어려웠다. 여행 일정을 짜는 2달은 내 욕심의 크기를 보는 시간이었다.
40살에 첫 인도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20년 넘게 배낭여행을 해 왔다. 동남아 여러 나라들을 배낭을 메고 혼자 룰루랄라 다녔다. 안정적인 일상을 벗어났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보였다. 환경이 바뀌고, 경험을 다르게 하면서 발견하게 된 내 모습이었다. 내가 선택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라서 새로운 사람, 환경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나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낯선 장소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여행의 시간을 통해서 몰랐던 단점을 알고, 스스로 가졌던 편견도 보았다. 그런 시간들을 겪어내며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고, 할 수 없는 일들과 해야 할 것들을 구별하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내가 진 배낭과 어디든 데려다주던 두발, 그리고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은 나를 성장시킨 도서관이었다.
이제 나는 환갑(環甲)의 시간을 살고 있다. 아이들은 나를 할머니라고 부른다. 무르팍도 성치 않고, 체력도 약하다.
' 나는 계속 배낭여행을 할 수 있을까?'
'두 발로 걷는 여행이 곧 나'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배낭을 지고, 두 발을 움직여 아름다운 자연을 걷고, 개발이 덜 된 오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성장되는 기쁨이 있었다. 얼마나 더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흐린 눈으로 스마트폰 앱을 열고 비행기표, 기차표, 버스표를 검색하고 예약할 수 있을까? 낯선 길을 더듬어 숙소를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궁금했다.
젊음과 미모는 밥을 사 먹을 때도 길을 물을 때도 무기가 된다. 우리도 젊고 예쁜 사람에게 더 친절하지 않던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현실도 나를 위축시켰다.
마지막 배낭여행이라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스페인을 선택했던 이유는 모로코 때문이었다.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면 내 오랜 로망이던 사하라에 닿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유럽여행의 시작을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정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던 첫날, 공교롭게도 그날은 ‘세계 책의 날’이었다. 도시는 축제분위기였다. 15,6세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길에서 장미꽃을 팔았다. 금발의 눈 파란 아이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빨간 장미송이를 내밀었다. 꽂아둘 꽃병도 없으면서 꽃을 샀다. 장미 한 송이를 손에 들고 나는 서서히 스페인에 스며들었다.
이번 여행은 나를 새롭게 만나는 시간이었다. 이 여행의 목적이기도 했다. 청춘의 시대, 중년의 시대를 거쳐 막 노년의 문턱을 넘어섰다. ‘생애전환기’로 접어든 것이다. 8,90세를 살고 있는 진짜 노인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귀에 쟁쟁히 들리는 것 같다. ‘새파랗게 젊은 애송이가 무슨 소리야? 내가 네 나이였다면 쌀을 가마를 지고 백두산도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그랬을까?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9.6kg의 배낭을 지고, 두 발로 얼마큼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을지 궁금했다.
2박 3일 사하라 투어를 끝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남편과 통화를 했다. 휴게소에서 모두 내리고 혼자 버스에 남아 있을 때였다. 불쑥 울음이 터져 나왔다. 수화기 너머 남편이 놀라며 말했다. “당신 진짜 힘들구나.” 그 한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고 따뜻하던지!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넓은 가슴팍에 안겨 펑펑 울었을 것이다. 남편은 당장 비행기표를 바꾸었다. 43일짜리였던 비행기표를 39일짜리로. 겨우 4일? 아니,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을 만큼 나는 지쳤고, 폭삭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레온에서 시작했던 순례길 13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은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까지 22.5km를 걷는 날이었다. 전날 사리아의 알베르게에서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한국인 부부를 만나서 김치와 라면, 술까지 얻어먹고, 함께 선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그날은 평소보다 더 특별한 시작이었다. 갈리시아 지방에 접어들면서 자주 내리던 비도 내리지 않았고, 동해바다처럼 짙푸른 코발트색 하늘에 눈이 시렸다. 낮은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즐겁게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순례객들이 늘어났다. 조용하던 카미노는 어수선한 시장통이 되어버렸다.
사리아에서 콤포스텔라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는 100km. 여기부터 갑자기 순례객들이 늘어날 거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조용함이 사라진 까미노에 정이 떨어졌다. 처음으로 줄을 서서 음식을 사고 화장실도 다녀왔다. 얼마쯤 걸었을까, 내 오른발 뒤꿈치를 못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족저근막염이었다. 꼼보스텔라까지 남은 날은 3일, 5월 9일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포르투갈, 모로코, 로마를 여행했다. 그리고 5월 31일 집으로 돌아왔다.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마음으로만 출발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의 고생은 예상했고, 체력의 한계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족저근막염은 생각지 못한 복병이었다. 여행을 앞당겨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 여행이 힘들었던 것이 꼭 ‘발’ 때문만 이었을까?
돌아와 두 달 동안 잠만 잤다. 많이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왜? 여러 번 질문했지만, 답은 찾지 못했다. 출발할 때 등에 졌던 9.6kg의 배낭보다 더 무거운 숙제를 받아 온 기분이다. 어쩌면 이 숙제에 선물이 들어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