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사랑을 한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려고 했다.
오늘 아침은 너무 흐린 데다가 바람까지 불어서 옷을 아무리 여며도 코가 얼 것 같다. 교복은 얇아서 너무 춥다. 아줌마가 긴 패딩을 사준다고 할 때 괜찮다고 말한 게 후회가 된다. 호들갑을 떨며 북에서의 추위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따뜻해서 안 사줘도 된다고 극구 거절했었다.
아줌마가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굳이 나를 기다렸다. 어두운 회색빛의 칙칙한 목도리는 아줌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뜨개질을 해서 아줌마에게 목도리를 만들어 줄 궁리를 하며 걷고 있는데 아줌마가 내 손을 잡는다.
"아직도 탈북할 때.. 기억으로 힘들어? "
갑자기 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아줌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너에게 물어보지 못했는데 그 친구 생각 때문에 아직도 악몽을 꾸니.. 너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밤마다 악몽을 꾸었었잖니. “
" 악몽은 꾸지 않지마는 생각은 늘 합네다. 은주는 나에게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나 마찬가지라요.. "
"그 친구는 고아원에 왜 왔다고 했니? "
”오마니가 남조선에 먼저 가 있기로 했는데 탈북가족이 있다는 것이 발각되어 아바지가 잡혀가고 동무는 고아원으로 왔습네다. 오마니가 했던 것처럼 낚싯배를 타고 탈북을 하갔다고 했습네다. 기칸데 왜 자꾸만 똑같은 걸 묻고 또 묻습네까?“
”친구가 총에 맞았다고 했니? 다리에 맞은 거니?“
”은주 말입니까? 아닙네다.....가슴에 피가 흥건했는데 은주는 은주는 지금 어디 있을까요... “
아줌마의 급작스런 질문들은 나의 눈물샘을 찾아서 찔렀다. 아줌마는 멈출 생각이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했다. 나의 울음에도 아줌마는 쉬지 않고 질문을 찾았다.
”혹시 백은주는 아니지? “
"그걸 어찌 알았습네까?”
아줌마가 말을 멈추었다. 아줌마의 두 눈에선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버스정류장 앞에 멈춘 뒤 몸을 떨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는 거지. 그때 아줌마가 털썩 주저앉았다. 당황한 나는 아줌마를 일으켜 세우려 부축했지만 아줌마는 내 손을 마다하고 바닥에 앉은 채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아줌마를 보며 나는 가슴속에 품고 있던 무언가에 미세하게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의 예감이 들었고 동시에 그 예감이 틀리길 빌고 또 빌었다. 말도 안 되었다. 이건 아니었다. 제발 아니길 바랐다.
우리는 둘 다 더는 묻지 않았다. 아니 두려웠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아줌마와 그 옆에 멍하니 선 채 넋이 나가 있는 나... 우리 둘의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거리고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학교는 이미 지각일 테고 아줌마의 반찬가게도 늦은 지 오래다. 아줌마의 가방에는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옷깃으로 눈물을 닦고 가방 속의 전화를 꺼내 든 아줌마가 목을 가다듬고 태연한 듯 말했다.
“아 미안해 내가 늦잠을 잤지 뭐야. 어서 갈게. 재료 좀 다듬고 있어.”
아줌마가 전화를 끓으려 하자 나는 다급해졌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아줌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학교를 향해 뛰었다. 아줌마는 그 와중에 잠긴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영애야 아직 지각 아니니까, 뛰지 말고 차 조심해. 학교 도착하면 꼭 따뜻한 물 마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