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집콕 모드에 오래된 명작 영화들을 하나, 둘 다시 찾아봤다. 개봉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국이라 볼거리에 목말라 있기도 했고, 우연히 다시 보게 된 <매트릭스>가 20년도 지난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돼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봤던 것도 새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어두웠던 등잔 밑을 뒤져가며 허기진 영혼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쌤, 첨밀밀 봤어요? 어제 다시 봤는데, 와.. 멜로는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구나 싶었어요. 별 거 없는데 되게 절절하네요."
It's my destiny.
그동안 멜로물을 등한시 한 내게 영화 <첨밀밀>을 제안해준 친구는 적절한 수위의 인포메이션을 날리며 흥미를 돋구었다. 분명 봤는데 기억 안 나는, 오래돼서 가격도 착한 영화. <첨밀밀>은 여명과 장만옥이 나온다는 사실 외에는 모든 게 새로운 영화였다.
이요(장만옥)와 소군(여명)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각자의 꿈을 쫓으며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돈 많은 건달을 택한 이요,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약혼녀 소정과 결혼하는 소군.
서로를 잊지 못하던 이요와 소군은 우연한 재회로 다시 만남을 이어가고, 더 이상 후회하지 않도록 둘은 미래를 약속하고 멀리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요는 어려움에 처한 남편을 버리지 못하고 그의 곁에 남는 선택을 한다.
누가 봐도 이요가 사랑하는 사람은 소군이고, 소군의 마음도 같은데 이요는 왜 조폭 건달인 남편 곁에 머무르는 선택을 했을까?
'그래. 저것도 사랑이지'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장면이 이제 와서 공감이 되는 건, 더는 내 경험과 조건에 얽매여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않아서다.
의리이건 연민이건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마음이 결국 그리 향하게 되었다면 그냥 그것도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