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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Jul 03. 2020

상사는 정말 일 잘하는 직원을 좋아할까?

 “일은 내가 다 하는데, 왜 부장이 챙기는 건 항상 딴 사람이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이른바 ‘범생이’인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말 착실하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일의 성과 달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고, 근무시간뿐만 아니라 퇴근 후에도 일 생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열심히 하는 만큼 일도 많다. 이 사람이 없으면 그의 빈자리가 티가 난다.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있을 때는 티가 잘 나지 않는다. 평소에는 그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주변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한다. 죽어라고 열심히 일하지만 정작 윗사람이 아끼는 사람은 딴 사람이다. 그래서 우울하다.


 군대에 있던 시절, 내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시골 경찰서에서 전경으로 근무했는데, 내무반에 이런저런 잡일이 있을 때마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 군대에서의 일이라는 게 누군가가 많이 하면 다른 사람들은 편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일하면 선임들의 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임이 곧 하늘인 군대 아닌가.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선임들도 나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종종 나를 칭찬하는 얘기가 들려올수록 나는 더 열심히 했다. 나한테 일을 맡기면 믿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나에게 오는 일도 많아졌다. 그 일들을 처리하느라 나는 매일매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 정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을 때였다. 경찰서를 가면 정문 앞에서 정자세를 하고 서서 민원인이 찾아오면 무슨 용무로 왔는지 물어보고 안내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당시에는 이게 모두 전경의 몫이었다. 사실상 경찰서의 첫인상 같은 역할을 하다 보니 다리를 어깨넓이로 벌리고 두 주먹은 똑바로 떨군 채 흐트러짐 없이 정자세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같은 자세로 서있다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온 몸이 굳는 느낌이 날 정도로 힘들기 때문에 전경들이 매일 한 시간씩 나눠서 근무를 했는데, 내게 주어진 한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난 것 같아서 시계를 보면 3분쯤 지나있고, 또 한참 지나서 시계를 보면 1분밖에 흐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날도 그렇게 정자세로 서서 피곤함과 지겨움을 참아가며 시계와 싸우고 있는데, 근무시간이 끝나기 5분 전쯤 내무반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음 근무자인 내 두 달 위 선임이 내무반에서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근무를 할 수 없으니, 내가 한 시간 더 근무를 하라는 거였다. 끝나는 시간만 기다리며 버티고 있었는데, 이 지겨운 한 시간을 다시 원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다니,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무조건 선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대이다 보니, 별 도리 없이 고단함을 참아가며 두 시간의 근무를 마쳤다. 다음 사람과 교대를 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내무반으로 갔다. 온몸이 녹초가 되어 내무반 문을 열었는데, 에서는 상상 못 한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근무를 할 수 없다던 그 선임이 내무반장 옆에서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채 깔깔대며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선임들이 그와 놀고 싶어서 나한테 그의 일을 대신 시키고 그에게는 근무 빼준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누구는 노는 사람이고 누구는 일만 하는 사람인가. 그렇다고 어쩔 도리는 없으니, 혼자 내무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열을 식히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뭐가 문제인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또 잘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왜 난 윗사람들한테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일까.

 내무반장 옆에서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있는 선임을 바라봤다. 그는 항상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가 있는 곳은 항상 분위기가 좋았다. 차이가 많이 나는 선임들과도 적절히 선을 지키며 즐겁게 지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처럼 일에만 매달려 있지는 않았지만 자기 일은 문제없이 처리했고 사람들에게 일로 폐를 끼치지도 않았다. 선임들로서는 그와 함께 있으면 즐거우니 계속 곁에 두고 싶어 할 만했다.

 그럼 나는 어떤가. 늘 소처럼 일만 하는 나.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 편해지니 좋긴 하지만 굳이 나와 함께 있을 필요는 없었다. 힘든 일은 나에게 시켜놓고 즐거운 일은 그 선임과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항상 밝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과 언제나 피곤한 얼굴로 있는 사람 중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은 누구겠는가.


 직장생할 17년 정도 해보니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사들은 항상 일 잘하는 사람을 데려가려고 하지만, 가장 아끼는 사람이 꼭 그 사람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생활도 결국은 인간관계이고, 인간관계는 이성보다 감정의 영역에 속해 있다 보니, 평소 일할 때는 일 잘하는 사람을 찾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 선택하는 사람은 가장 아끼는 사람이다.

 그럼 상사가 가장 아끼는 사람은 누구일까.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 즉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다.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속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돼 있다. 일단, 직장에서 일 못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기 맡은 일은 충분히 문제없이 잘 처리하고, 조직의 성과에도 기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건 기본 요건일 뿐이다. 하루 일과 중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은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직장에서 연차가 쌓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은 외로워진다. 고민할 것들이 많아지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개인의 성과에 대한 조직의 판단과 평가는 더 냉정해진다. 그렇게 외로운 조직 생활에서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뜻을 아는 사람, 거기에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까지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있고 싶을 수밖에 없다. 윗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아끼고, 그런 사람을 챙긴다.


 그렇다고 조직에서 무조건 윗사람의 구미에 맞춰 살고, 억지로 아부를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본심과 다른 억지 아부는 오히려 상대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내가 조직에서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된다면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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