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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여행 1 [호텔],

여행처럼

by 우사기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갈게요. 도쿄행의 시작은 여행이었습니다. 저에겐 저를 이모라고 부르는 조카와 고모라 부르는 조카가 한 명씩 있어요. 이모라 부르는 조카는 여고생이고 고모라 부르는(아직 정확한 발음을 못하지만) 조카는 이제 곧 2살이 된답니다. 이번 여행은 여고생 조카를 위한 여행이었어요. 둘째 동생과의 도쿄 여행도 너무 오랜 민이라 살짝 들떴고요. 출발하는 날 아침 새벽 5시 벤을 예약해두고 동생네 집으로 가니, 세상에나 그제야 욕실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준비한 저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근데 것보다 더 신기한 건 그렇게 허겁지겁해도 대충 시간에 맞춰 벤을 탔다는 거예요.(물론 머리도 말리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그렇게 여자 세 명의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떠나는 날 바다가 참 예쁘더라고요. 잘 다녀오라는 뜻인지 새 출발을 응원한다는 뜻인지 알 수는 없지만 행운을 빌어주는 것만 같아 감사했어요.

조금 연착이 되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나리타에 도착했어요. 오랜만에 마주하는 화창한 도쿄 하늘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예상보다 공항은 붐비지 않아 곧바로 긴자행 공항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어요. 그렌데 문제는 버스에서 내려서부터였어요.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건 완전한 여름의 한가운데인 거예요. 결국 여행 기간 내내 최대의 폭염이 이어졌답니다. 일주일만 일정을 늦췄어도라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그건 말로 다 못해요.

그래도 호텔에 도착하니 살 것 같았어요. 이 호텔은 예전 저의 산책 코스에 있던 곳인데요, 겨울이 되면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일루미네이션이 얼마나 따뜻하고 예쁘던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혹여 도쿄를 여행하는 날이 온다면 꼭 이곳에서 머물러야지 했었답니다. (그 소원을 이룬 샘이죠)

이곳은 도쿄에 있지만 파리의 부티크 호텔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시간이 묻어나는 것도 관리가 잘 되어있는 것도 위치까지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거리감이라는 게 참 신기하긴 해요. 제가 예전 산책 때는 이곳과 역이 아주 가깝다 느꼈거든요. 그런데 막상 여행객으로 걸어보니 완전히 가깝다고 하기도 뭐 하더라고요. (오래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동생과 조카를 보니 마음이 쓰여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동생과 조카는 트윈 베드로 저는 싱글로 예약해서 층이 다를 거라 예상했는데 감사히도 같은 층으로 배려해 주었어요. 트윈 베드 룸은 고층 예약으로 어느 정도 기대는 있었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뷰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세어 나왔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웅장한 나무들, 그 안쪽으로 영빈관 아카사카 이궁이 있고, 그 너머로 신주쿠의 빌딩 숲이 보여요. 침대에 누우면 한눈에 들어오면 풍경이 정말 멋졌어요. 밤이 되면 뒤덮인 어둠 너머로 빌딩 숲들이 별을 뿌려 놓은 것처럼 반짝였구요. (아, 물론 동생 침대에 살짝 누워 본거지만요)

싱글룸이라 제 방 뷰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같은 층이라고 할 때부터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어요. 한눈에 쏙 들어오는 오모테산도로 쭉 뻗은 도로가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호텔 예약을 할 때 동생은 끝까지 3명이서 한 룸에 있는 걸 원했지만 저는 절대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했죠. 역시 정답이었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동안 생활 패턴이 다른 우리들이 같은 룸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그건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지친 일정을 끝내고 홀로 침대 한 편에 기대어 뷰를 내려다보던 시간, 어느 한때는 나의 일상이기도 했던 이 비일상적인 여행의 순간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자그마한 호텔이지만 2층 조식 뷔페식당은 나름 규모가 커요. 음식이 아주 다양한 건 아니지만 분위기만큼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아, 세프가 갓 만들어주는 오믈렛도 일품이었습니다.

멋진 창가 자리가 여행 기분을 한껏 끌어올려 주었어요

창 너머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활기를 전해 받으며 오랜만에 가장 일본스러운 아침식사를 즐겼습니다.

4박 5일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이전 밤 산책으로 즐겼던 그 코스를 아침 산책으로 즐겼습니다. 홀로 그 길을 걸으며 즐겨갔던 신사에 들러 돌아왔다는 인사를 전했고 즐겨 찾던 빵집도 기웃거렸습니다.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도큐호텔 앞을 지날 때는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했던, 조금은 두려웠고 조금은 힘들었던 어떤 한때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여행과 지난 일상을 오간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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