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여성 풋살 동호회를 운영하며
주장; 운동 경기에서 팀을 대표하는 선수
흔히, 어떤 팀이나 단체의 리더라 함은 그 분야에 경력이 많아 팀원들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 있거나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주로 맡곤 한다. 팀원들의 신뢰를 얻기가 수월하고 팀의 중심을 잘 잡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풋살에 대한 경험이 있지도 그렇다고 운동 실력이 좋아 축구를 빠르게 배우는 사람도 아니었다. 사회생활에 대한 경험도 많지 않았다. (당시에는 오히려 팀의 막내였다.)
그런 내가 주장이 된 이유는 생각해 보면 오지랖 때문이었다. 초반에 우리는 KF94 마스크에 가려져 얼굴도 잘 알지 못했지만 나는 ‘와, 정말 잘하시네요. 어렸을 때 운동하셨었나요?’ ‘우와! 풋살화 바꾸셨네요. 너무 예뻐요’ 등의 처음 보는 사람이 느끼기에 오지랖처럼 보일 수 있는 말들로 호시탐탐 친해질 기회를 노렸다.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을 알아본 동료에 의해 추천을 받아 나는 그 후로 팀카카오의 주장이 되었다. 그리고 눈 깜빡할 새 우리 동호회는 약 아홉 개의 계열사, 약 40명의 직장인이 있는 어엿한 3년 차 동호회가 되어 있었고, 지금은 총무와 부주장과 함께 안정적인 운영 체제를 마련해 나가고 있다.
단체 활동을 좋아해서 설레이는 마음도 잠시, 판교 근방에서는 최초였던 ‘회사 여성 풋살 동호회’의 운영진으로서 그리고 팀카카오라는 ‘풋살 팀’의 주장으로서의 걱정과 부담감이 이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풋살도 처음이고, 나이도 어린 내가 과연 우리팀의 주장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처음 주장을 맡았던 당시 사회생활 2년 차였던 나에게 나보다 경력이 많은 회사 선배들이 속한 동호회를 이끄는 것은 그 자체로서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선 매번 팀장님께 빨간펜을 받는, 쭈뼛쭈뼛 선배들에게 다가가 조언을 구하는 아직 신입 사원을 티를 벗지 못한 팀의 막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호회 운영을 위해 내려야 하는 결정과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어떤 스타일의 주장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나 우리팀의 색깔에 대한 고민의 시간보다, 초반에는 이 많은 사람이 속한 단체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의사 결정 앞에서 매번 허덕였었다.
고민을 줄이기 위해서는 팀을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했다. 그러나 판교 근방에서의 최초 타이틀을 달고 있던 우리였기에 ‘회사 여성 풋살 동호회’로서 참고할 만한 선례가 많지 않았고 동호회의 가입/탈퇴 조건부터, 동호회 활동 중단과 대회 참여 방식 등 모든 규칙을 처음부터 하나씩 만들어 가야 했다.
동호회가 생긴 후 약 6개월이 지나가고 있을 무렵, 한 팀원으로부터 임신 계획이 있어 한동안 활동이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그 당시에는 ‘임신’으로 인한 활동 중단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아예 예상하지 못했었다. 팀카카오 회칙 문서에는 그저 ‘부상 시 3개월 활동 중단’ ‘N명 이상 코로나 확진 시 휴강’ 정도의 회칙만 나열되어 있었다. ‘직장인’ ‘여성’ 풋살 동호회라는 특성상, 임신/출산으로 인한 활동 중단이나, 안식 휴가 등 장기 휴가 시의 상황에 대한 회칙 등이 필요했던 것이다.
동호회 회칙이 갖춰지니 의사 결정 과정이 더욱 간결해졌다. 모든 팀원이 동의한 기준에 따라 결정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도 주장이라는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팀원들은 우리팀이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건강한 회사라면 그 회사만의 조직 문화를 담은 ‘그라운드 룰’이 있는 것처럼 동호회도 하나의 단체로서 필요한 규칙을 세우는 것과 이 규칙에 기반하여 모든 팀원이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동호회에서 회칙이란 단순히 팀원들의 문의사항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팀원들이 서로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우리만의 문화를 조성하게 하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우리 회사에는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 대표와 직원들이 솔직하게 서로의 생각에 대해 공유하는 ‘오픈톡’이라는 문화가 있다. 이것을 우리 팀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운영진이 동호회의 모든 모임과 연습에 참석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오랫동안 보지 못하는 팀원이 생겼고 자연스레 그 팀원의 생각을 직접 들을 기회가 적어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팀카카오 오픈톡’은 최근 4회차를 맞이했다.
오픈톡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팀 레슨의 지속 여부에 관한 결정 등의 안건 결정을 위해 각자 팀 레슨에 대한 판단과 근거를 설문으로 수집하고 그 결과를 모두에게 공유한다. 이후 함께 결과를 검토하며 서로가 생각하는 팀의 방향성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마지막으로, 오픈톡에서 취합한 의견을 바탕으로 운영진의 논의 하에 최종 결정을 내린다. 단체 생활에서 의사 결정을 할 때에는 소수의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운영진의 결정이 어떤 고민 속에서 내려진 것인지 그 과정과 근거를 솔직하게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소해 보일 수 있을 지라도, 누군가는 팀에서 내린 결정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소규모였던 동호회 초반에는 최대한 많은 팀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지만, 팀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각자의 구력에도 차이가 나면서부터는 모두의 생각과 감정을 하나로 모으기 어려워졌다. 현재는 팀원 모두의 의견을 반영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음을 알지만, 여전히 팀원들의 의견을 듣는 오픈톡 자리를 공개적으로 많이 만들고 의사 결정의 과정을 투명하고 솔직하게 공유하는 것만은 꼭 지키고자 한다.
팀카카오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소하더라도 우리 팀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역할을 맡아 보는 것이었다. 특히나,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된 팀원들끼리는 유대감이 자연스레 생겨날 수밖에 없고, 이때 새롭게 가입한 팀원이 우리 팀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에도 ‘온보딩' 프로그램이 있듯이, 새로 가입한 팀원들이 우리 팀에서 어떠한 작은 역할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유대감을 쌓게 하는 것이 팀을 운영하면서 꼭 지키고자 한 보이지 않는 전략 같은 것이었다.
여름 MT, 송년회는 우리 팀의 연례행사이다. 이러한 연례행사를 준비할 때는 꼭 세 명에서 다섯 명으로 구성된 TF를 꾸린다. 단체 활동 속의 작은 단체 활동 같은 것이랄까? TF 팀원들끼리 팀카카오를 위한 행사를 함께 준비하면서 삼삼오오 소통하는 것은 운동장에서는 차마 만들지 못했던 또 다른 형태의 친밀감을 갖게 한다. 어쩌면 운동장 밖에서 먼저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팀 스포츠인 축구에서 편안한 관계는 중요하다. 축구는 ‘발’로도 하지만 ‘말’로도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일명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는 ‘콜’이자 경기장 안에서 그 경기를 이끌어 내야 하는 소통은 패스의 질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그렇기에 편안한 관계에서의 소통을 위하여, 우리는 축구 동호회지만 운동만 하지는 않았다. 벚꽃이 피면 다 같이 서울숲에 가서 피크닉을 한다거나, 예능인들처럼 음악 퀴즈를 내고 맞히거나, 그냥 날이 좋아서 술을 마신다거나 하는 축구와는 연관이 없지만 팀으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같이했다. 단체 활동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이 관계 안에서 내가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팀원이 오면 ‘TF 한번 해 보시겠어요?’라고 제안을 한다. 함께 발을 맞추는 것뿐만 아니라, 먼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풋살팀에서의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팀에는 연례행사의 준비 위원회 말고도 다양한 ‘00부장’이 있다.
예약 부장: 공과 신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구장’이다. 매월 정해진 날짜에 그 무엇보다 치열한 티켓팅을 해야 한다. 아이유 콘서트보다 어려운 게 있더라. 바로 날씨 좋은 가을날의 평일 저녁 구장 예약이다. 특히, 판교 근방의 풋살장은 몇 개 없어서 예약이 매우 치열하다. 그렇게 오늘도 예약 부장은 유연 근무제인 회사에서 수상하리만큼 일찍 아침 아홉 시 출근을 강행한다.
세탁 부장: 어쩌면 우리 팀을 위해 가장 희생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역할이 아닐까? 팀원들의 땀 냄새를 견뎌 내는 세탁 부장. 풋살 레슨 시에 제공되는 형광 조끼에서 좋은 향이 나면 조심스레 코치님께 다가가 말을 건다. ‘이거 무슨 섬유 유연제 쓰셨어요?’
스트레칭 부장: 운동 전 꼭 해야 하는 ‘스트레칭’. 온몸을 부딪히며 하는 풋살에서 스트레칭은 부상 방지 목적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성들은 특히, 발목뿐만 아니라 고관절을 잘 풀어 줘야 한다. 하나 둘 셋 넷, 스트레칭 부장의 구령에 맞춰 몸을 풀다 보면 학교 체육 시간에 다 함께 새천년체조를 하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몽글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작지만 팀을 위해 하나의 역할을 맡아 본다는 것. 팀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빨리 외울 수 있어 운동장 안에서 쉽게 ‘콜’을 할 수 있게 하고, 내가 맡은 역할을 해냄으로써 소속감을 갖게 하여 출석율이 높아지고, 팀에 대한 애정을 자연스레 갖게 하는 우리 팀만의 효율 좋은 ‘온보딩’ 프로그램이다.
조기 축구 동호회 사이에 유명한 밸런스 게임이 있다. 성실하게 훈련을 나오지만, 실력은 평범한 팀원 vs 훈련은 잘 나오지 않지만, 실력은 훌륭한 팀원. 풋살을 시작한 초반에는 실력이 훌륭한 팀원 한 명의 역할이 게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다. 특히나, 우리가 하는 풋살은 5 vs 5 경기였기 때문에 한 명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다.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회사 동호회들과 함께하는 리그전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팀코리아에게 아시안게임이 있다면, 팀카카오에게는 판교 리그가 있었는데 아시아에서는 최강자인 우리나라처럼, 우리는 판교 리그에서 3회 연속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 우승팀과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부담감 내지 어쩌면 자존심 때문에 우리는 또 다시 우승을 위해 경기의 기세가 떨어질 때면 확실히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는 실력 있는 멤버들을 투입시켰다. 에이스 멤버들도 이 상황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지만 잘 견뎌 주었고, 출전 시간이 적었던 멤버들도 우리팀의 승리와 우승에 함께 기뻐했다. 그때는 승리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팀이 패배하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기에, 팀의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승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점 다양한 경기의 승패를 맛보면서 우리에게는 함께 실패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팀 스포츠를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경기에서 패배하더라도 서로를 격려하는 말 속에, 연습한 패스 플레이가 나와 우리도 모르게 지은 놀란 표정 속에, 가장 열심히 노력한 팀원의 성장 속에 있었다. 팀으로서의 승리보다 함께 한 실패가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각자의 역할을 되돌아보고 함께 나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제 승리만을 위해 실력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함께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가 만들어 가는 이야기와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에게 ‘행복 풋살’이란, 결국 서로가 서로를 믿는 안전한 환경 속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성장의 순간이 아닐까. ‘실패하더라도 함께 하는 풋살’. 이것이 현재 3년 차 팀카카오만의 행복 풋살에 대한 정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마음이 조급했다. IT 회사 특성상 근속 연수가 짧기에, ‘팀원들이 회사를 떠나면 어떡하지?’ ‘퇴사로 인해 몸이 멀어지면 자연스레 마음도 멀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과 내가 다니던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아 (실제로 희망퇴직을 받던 때가 있었다.) 내가 먼저 회사를 떠나야 할 수도 있었던 순간에는 남몰래 작별 인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를 끝을 생각하다 보니,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소중함이라는 감정은 가끔은 팀 운영에 대한 과한 부담감으로 이어졌고, 그리고 소위 축구 선수들이 말하는 ‘A매치’ 골이 없는 주장이라서, 카리스마 있는 주장이 아니라서, 경험이 많지 않아서 등 스스로 만들어 낸 주장 자격에 날 한껏 재단하며 소심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늘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믿는다고 말해 주는 팀원들이 있기에 이제는 더 이상 혼자 자기 검열을 하지 않는다. 힘들지 않냐며 먼저 손을 내밀고 물어 주는 동료들이 있기에 더 이상 말 못 할 감정을 삼켜 내지 않는다. 그리고 팀의 주장이 꼭 팀의 에이스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주장이란 팀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임을 팀원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여전히 날씨가 좋아서 혹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팀 훈련의 출석률이 낮을 때면, 부상을 당해 오래 활동을 쉬는 팀원이 있을 때면, 주장으로서 어떠한 말과 행동으로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우리 팀이 만들고 싶은 팀은, 내가 만들고 싶은 팀의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주장이 되고 싶은 걸까?’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고민만은 멈추지 않으려 한다. 내가 되고 싶은 주장은 어쩌면 우리팀을 위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고민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