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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경 Jan 26. 2023

귀신의 시간에 난 거실에 앉아 있었지 (1)

[프롤로그] 좀 천천히 늙을게

정기적으로 병가를 낸 후 목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거리의 광주에 간다. 광주에 있는 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에서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기 위함이다. 진료 간격은 주치의가 정하는데 대개 1~3개월의 사이를 둔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를 가로지른 후 외곽으로 조금 빠지는 듯 30분쯤 가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풍광을 배경으로 병원이 나타난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광주의 다정한 택시기사들은 승객이 어디서 왔으며 왜 목적지를 향해가는지 특유의 사투리로 묻곤 한다. 광주의 대학병원 가는 길, 흔한 택시 안의 대화다.

“병문안 가시는갑소~."

“아뇨, 진료받으러 가요, 제가.”

“오메, 건강해 보이는디 우짜쓰까. 워디 아프씨오~.”

“네, 류머티즘요.”

“썽썽할 나인디 아가씨가 겁나게 아픈갑네, 그랑께 이라고 큰 병원 다니지 않겄소~.”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썽썽할 나이'의 '아가씨'가 아니다. 하지만 육십 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나를 아가씨라 부른다. 목포에서 출근길 택시를 이용했을 때 어느 기사는 이렇게 인사했다. “잘 가요!” 아마도 타지에서 왔을 것이다, 목포의 억양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어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진짜 내 나이를 안다면 “잘 가요!”란 인사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30대 초반, 화장기 없는 얼굴로 어머니의 식당 홀에서 주말마다 일을 거들곤 했다. 점심식사를 하던 그들은 나를 ‘학생’이라 불렀다. 그들 중 상당수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그들은 내 나이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나는 상대의 나이를 얼추 가늠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초면의 상대는 내 나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당연한 듯 반말을 하거나 한참 아랫사람 대하듯 실수하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30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보기보다 진짜’ 나이가 많다는 말을 자기들끼리 수근댔다.

나는 33세에 결혼했고, 34세에 첫째 아이를, 37세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둘째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면 이상히 여기는 이가 없었으나 -12월생이어서 공짜 나이 한 살을 더해 우리 나이 네 살이 된- 큰 아이를 동행하면 “이렇게 큰 아이가 있었냐?”라고 놀라며 물었다. 남편과 넷이 동행하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생각보다 크다며 어려서 일찍 결혼했구나 미루어 짐작하는 듯했다.


그렇다, 나는 줄곧 생기 넘치며 또한 젊어 보였으며 지금 역시 그렇다.

나에 대한 기본 정보를 풍문으로 들었던 당신은 실제의 나를 본 후 고개를 갸웃하리라.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려 보여요. 진짜 그렇게 안 보이세요. 군살이 전혀 없고, 흰 피부는 타고 나신 건가요? 아니면 피부관리를 따로 하시나요? 아이가 중, 고등학생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요. 초등학생 아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술도 꽤 좋아하신다던데 체중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요가하신다 하던데 몸매관리의 비결인가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대의 이런 질문과 감탄으로 시작해 나의 감사 인사로 마무리되는 이 루틴은 꽤 익숙하다.


거의 평일 모든 날, 출근하자마자 손목이나 손가락에 파스를 붙인다. 파스는 신*파스 아*스만 사용한다. 하얀 파스를 꺼내 특유의 향을 킁킁 맡으며 가위로 길게 삼등분한 후 모서를 둥글게 다듬는다. 이렇게 잘라 다듬어 놓으면 적어도 세 번은 편해질 수 있다. 발갛게 발적하며 단단히 부어오른 통증 부위에 붙이면서 딸깍하고 온몸의 전원 스위치를 켠다. 전원이 켜진 온몸에서 조금 기운이 나고 머그컵에 아메리카노를 내린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1층에 내려가 잠시 들른 매점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다른 층으로 전보 발령 난 동료직원이다.

“언니, 어제 연가셨어요? 알림이 로긴이 안되어 있더라고요."

“응, 어제 병원 다녀왔어."

“아, 왜요? 어디 아프세요? 그렇네, 파스 붙이셨네.”

“사실 나 지병이 있어. “

“네?”

그녀가 놀라며 묻기에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이 병은, 치료 약이 없대. 난치이며 불치병인데, 어제 의사 쌤이 정말 큰일이라고, 그 사이 증세가 심해진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 이 나이에도 좀처럼 병증이 사그라들지 않는 건 이례적이래.”

“그니깐, 무슨 병인데요? “

“너에게만 알려주는 건데, 공주병! 크~ 하하하하하.”

“앜, 큭큭큭큭큭 하하하하하하하”

우리는 그렇게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류머티즘에 대해 나름 심각하긴 하지만 내 남은 생의 전반이 우울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웃음거리를 찾아 장치로써 이용한다. 공주병과 류머티즘은 참말 비슷하기도 하지! 나는 이미 류머티즘과 공주병의 공통점을 50개 이상 찾아냈으며 류머티즘과 공주병의 차이점을 찾기가 더 어렵다.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할수록 더욱 유려하게 다듬어진달까?



 “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들이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류머티즘은 나를 그리 쉽게 죽이지 못할 것이다. 다만 내가 살아있는 내내 한계를 느끼게 하고, 깊은 우울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나를 등지고 조롱하겠지. 지병으로 공주병(같은 류머티즘)을 가진 자로서, 늘 제 나이보다 어리게 사는 사람으로서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 삶을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강해진다는 '진짜' 의미를 말이다.


류머티즘이 처음 나에게 내려앉은 후 그것의 존재를 모른 채 절망했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통증이 익숙해질 즈음 병증에 대해 진단받고 전문의의 치료받으며 현재에 이르렀다. 몸에 새겨진 기억을 더듬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글로 남기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진짜' 강해져가는 스스로를 위한 격려에 있다. 이 세상 온갖 종류의 통증을 돌아보며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력을 갖는지 새겨보는 것은 나에겐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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