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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초이 Sep 23. 2022

인간관계는 숙명이다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는 인생에서 가장 난해한 숙제 과목처럼 느껴진다. 잘 풀리는 관계도 있고, 어떻게 풀 줄 모르는 관계도 있다. 엮이고 싶지 않은 관계도 있다. 원하는 관계보다 원치 않는 관계 때문에 고통받는 경우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너무 가까이했다가 낭패를 당하게 된다. 또 너무 멀리했다가 곤란한 일을 겪기도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만큼 인간관계에서도 거리 두기가 중요해진 것 같다.


인간관계의 시작은 태어나면서부터이다. 나를 기준으로 본다면 부자관계를 시작으로 형제 관계, 친구관계, 스승과 제자 관계를 형성한다.


결혼하면서 부부관계, 처가와의 관계가 새롭게 맺어진다. 나의 자식이 태어나 부자관계의 자에서 드디어 부가된다. 아들이었다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아들이면서 아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시소 놀이는 중요하다. 부모와 친구 중에서 친구에게 무게중심이 쏠리면 부모 입장에선 놀라고 서운하다. 아내와 시부모 가운데서 중심잡기는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시소를 잘 타게 되면 재밌는 놀이가 되는 것처럼 인간관계에서도 양쪽을 균형 있게 다룰 수 있어야 피곤함이 덜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신임에서 중간관리자로, 후배에서 선배로, 멘티에서 멘토가 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그야말로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인간관계의 다른 말로 인연이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그런 인연이란 말 때문에 인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혼자 태어날 수 없고 혼자 힘으로 생존할 수 없다.


윤회의 의미를 살아가면서 처지의 변화가 계속된다는 것으로 해석해 본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처지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아들이었다가 아버지가 되는 것처럼, 멘티에서 멘토가 되는 것처럼 인간은 어느 고정된 모습일 수 없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


하늘과 땅, 음과 양, 남자와 여자처럼, 행복과 불행, 부자와 가난, 삶과 죽음처럼,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공존하듯이, 세상은 한 쌍의 작용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하늘만 있을 수 없고 땅만 존재할 수 없다. 어둠만 계속될 수 없고 밝은 빛만 계속될 수 없다. 세상에 남자만 살 수 없고 여자만 살 수 없다.


행복하다는 사람의 그림자가 불행일 수 있다. 자만하지 말고 교만하지 않아야 하리라. 불행하다는 사람의 그림자가 행복일 수도 있으니 낙담만 해서도 안된다. 지금의 부자들 중에는 가난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죽음이 곁에서 따라다니지만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죽음은 결코 떨쳐내지 못한다. 돈은 앞면과 뒷면이 다르다. 앞면만 있어도, 뒷면만 있어도 제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하나이면서 둘로, 둘이면서 하나로 움직이고, 서로에게 작용하고 있다.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생존하고 살아가는 것이 숙명이다. 사랑, 행복, 기쁨, 미움, 괴로움 등 인간의 감정도 결국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른 인간관계를 맺으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품 안의 자식이라도 심리적인 사이는 띄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거리두기란 물리적 효과를 체험했다. 인간이란 단어에서 -사이, -관계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은 어떤 누구와도 적당한 물리적, 심리적 사이를 띄워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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