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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 성경과 정치 사이

by Sol Kim

월요일 저녁, 어머니의 전화를 기다릴 때마다 마음이 살짝 굳는다.




버지니아에 처음 정착하던 2020년은 비자와 영주권 문제로 매일같이 마음이 무너져 내리던 시기였다. 그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 같이 공부해 보자, 주님을 더 알아가면 네 세상 문제는 해결해 주실 거다”라는 말씀이 내 마음 깊이 와닿았다. 어떤 것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그때, 어머니와의 매주 말씀 나눔은 한 줄기 희망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매주 한 번의 성경공부와 말씀 나눔이 어느덧 5년이 넘어 간다. 험난하고 척박한 이민 생활 속에서 영주권, 집, 이직, 태민이의 Medicaid 같은 큰 일들이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풀려가는 걸 보면서 “정말 하나님이 도와주셨구나”라는 혼잣말이 나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한 매주 한 번씩이라도 어머니 목소리를 듣고 안부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겐 소중한 보너스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복잡하다. 말씀 공부가 싫어진 게 아니다. 나는 여전히 그 시간을 통해 세상에 치여 살면서 놓치고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태도’를 다시 배우곤 한다. 세상적인 관점과 배치되는 성경적 가치관을 실천하는 어머니의 삶을 보며 감탄할 때도 많다. “언제쯤 저렇게 살 수 있을까?”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그럼에도 전화를 받는 월요일 저녁마다 마음 한편에 묵직한 부담이 생기는 이유는 단 하나, 어머니 말씀 속에 점점 짙어지는 ‘정치 이야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원래 보수 성향이신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지난 2–3년 사이 극우 유튜브에 깊이 빠져들면서, 시각이 아예 그쪽으로 굳어져 버리신 것 같다. 작년부터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다. 계엄으로 구속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에 열심히 나가신다거나, 유명 극우 유튜버를 “믿을 만한 정보원”이라고 확신 있게 말씀하실 때부터. 최근 몇 주 사이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회 탄압'이나 중국 공산당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부정선거'에 관여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하시는데, 이럴 때면 솔직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지 막막해진다.


나도 과거 미국 민주당 정부의 DEI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다양성 및 포용) 정책이나 LGBTQ 이슈 등에 대해서는 “이건 너무 나갔다”라고 생각해 왔다. 많은 교민들도 그 이유로 지난 대선에 공화당에 투표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비 백인 (non-White)들은 공화당 정부의 폭압적인 관세 및 이민정책, 그리고 노골적인 부패, 인종차별, 정적 탄압 속에 살면서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을 매일 실전으로 체험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한국이든 미국이든) 민주당 = 공산주의 = 반기독교”라는 등식, “이걸 고치기 위해 하나님이 미국에 트럼프를 보내셨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내 안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닳아내려 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귀한 통화 시간을 정치 논쟁으로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냥 흘려듣고, 대답을 흐리고, 주제를 슬며시 돌린다.


한국의 기독교가 극우와 결합했다는 기사들을 보며 솔직히 나는 이를 '고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현상” 정도로 치부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현실을, 내 삶 한가운데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보고 있다.


나는 우리 대화가 예수님 이야기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분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셨는지, 약한 자들 곁에 어떤 마음으로 서 계셨는지, 권력과 돈과 명예를 어떻게 대하셨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그 분을 따라 살아야 하는지. 설령 우리의 대화가 금세 이렇게 다시 돌아가지 않더라도, 어머니와 내가 서로를 향해 품은 사랑과 예수님을 따라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만큼은 정치보다, 유튜브보다, 이념보다 훨씬 더 앞에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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