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만들어준.
어제 영화를 하나 봤다. 자려고 누웠는데 도무지 잠이 안왔다. 어떤 일을 해야할까 고민이 많은 시기인 듯하다. 서른 중반에 이런 고민이라니, 어렸을땐 생각하지도 못했다. 뭔가 힐링되는 영화를 보고싶었다. 넷플릭스에서 '힐링영화' 라고 검색하니 신민아가 나오는 "3일의 휴가"라는 영화가 나왔다. 죽은 엄마가 3일동안 휴가를 받아서 딸을 보러오는 내용이었다. "아 엄청 슬프겠네"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김해숙씨가 엄마로 나오고 김기영이 저승 가이드로 나온다. 둘이서 티격되는 코믹스러운 부분이 재밌었다. 극중에서 엄마는 살기가 바빠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다른집에 엄마로 들어간다. 극중에서 딸인 신민아는 '진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진주는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의 그런 노력으로 진주는 UCLA 교수가 된다. 그렇지만 어릴때의 서운함으로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미국에서 듣는다. 그리곤 돌아와서 엄마가 하던 시골의 백반집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을 엄마가 3일 휴가를 와서 보는 이야기. 엄마는 다 그런건가. 우리엄마랑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 기억속에서 나는 엄마가 키웠다. 이혼하고 단칸집에 들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낯선 주인집 옆에 딸린 방하나 세를 얻었는데, 밤에 들어가기전에 보일러를 틀어놓고 "나중에 들어오면 따뜻할거야"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를 업으면 긴머리가 계속 내 입에 들어가서 단발로 자르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나는 항상 엄마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엄마 중고차를 사러갔다. 엄마는 그때 풀무원에 다니셨는데 한달에 50만원정도 벌었다고했다. 그때 엄마 나이가 30대후반. 나랑 별로 차이도 안난다. 맨날 혼자있는 내가 불쌍하다고 시장에서 고양이를 사오셨던 것도 기억이난다. 맨날 동생하나 안만들어줘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릴때 친구들은 나한테 좋은 향기가 난다고했다. 내 옷에서는 항상 좋은 향기가 났다. 우리엄마는 빨래를 정말 보송하게 향기가 오래남게 한다. 특별한게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그렇다. 모든일을 정성들여서한다. 수건을 말려도 그냥 널어놓지않고 수건이 접히지않게 모서리에 집게를 집어서 길쭉하게 말린다. 그런사람이 자기 아들은 얼마나 정성스럽게 키웠을까싶다. 어릴때 맨날 김밥만 사줬다고 미안하다고하고, 내가 때써서 혼냈던거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기억도 안나는 그런일들.
친아버지가 내가 대학생때 돌아가셨다. 안치실에서 아버지의 손이 정말 차가웠다. 버튼을 누른것 처럼 눈물이 나왔다. 친아버지와의 기억은 추석과 설날때 뿐이었다. 그래도 나에 대한 애정을 나름대로 표현해주셨었고 지금도 그리운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 현대차를 들어갔을때 무서웠던건, 너무나 반복된 일상이고 예측가능한 미래속에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을 것 같았다. 그 미래까지도 너무 뻔하게 보였다. 조금더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싶다라는 생각. 그게 퇴사한 가장 큰 이유었다.
그 뒤로 6년정도가 지났다. 나는 개발자가 됐고 여기저기 IT 스타트업들에서 일하고, 어떻게 창업이라는걸 해야할지 고민하면서 이런 시간들이 지나갔다. 여전히 헤매고있다. 엄마한테 잘하고싶다는 생각은 나도좀 불쌍하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내 삶을 좋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엄마에 대한 생각보다 앞서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들에 다시 숨어들어온 곳이 고향 진주다. 그냥 엄마 옆에 있고싶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시간이 돌아봤을때 가장 소중한 시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중에 내가 충분히 자리잡고 내 가족도 만들었는데, 엄마가 없는 순간을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좋은가 싶기도 하다.
진주에서는 사무실공간을 따로두고 잠은 집에와서 자고있다. 내 방에 들어오면 항상 좋은 냄새가 난다. 우리 엄마는 택시를 하고있으신데, 힘든일임에도 항상 내 옷을 빨고 잘 말려서 걸어두신다. 아무리 엎어져도 엄마는 나한테서 좋은 향기가 나게 만들어준다.
요즘은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주에와서 4개월정도, 주말없이 일했다. 마냥 앱을 만들어서 큰돈을 버는게 진짜 내가 하고싶은일인가? 나는 항상 '사업'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게 어색했다. 내가 하고싶은 건 그런 거창한게 아니라, 그냥 내시간을 좀 자유롭게 쓸수있는 일인건데.. 내가 생각하는 삶이 어떤건지 조금더 명확하게 생각하고, 그걸 이루기위해서 지금 뭘해야할지 생각하는 시간을 좀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