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지략가 곽가
가끔 뉴스를 보면,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던 스타들이 갑작스럽게 요절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그럴 때면 너무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그들이 너무나 안타까운데, 하늘은 왜 그런 인물들만 골라서 데려가는 걸까. 아무리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너무나 속상하고, 안타깝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찍 죽어 안타까운 인물들 특집을 만들어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오늘은 일찍 죽어 안타까운 인물들 특집 1편 천재 지략가 곽가(郭嘉)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곽가는 예주(豫州) 영천군(潁川郡) 사람으로, 자는 봉효(奉孝)다. 곽가는 어려서부터 원대한 기량이 있었는데, 한나라 말 천하가 어지러워지려 하자, 약관의 나이(20살) 때부터 이름과 행적을 숨기고, 은밀히 영걸들과 교제하며, 속세와 접하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 중 많은 이가 그를 알지 못하고, 오직 식견이 높고 사물의 이치에 밝은 이들만 그를 높게 여겼다고 한다.
원래 곽가는 하북으로 가서 원소를 만나보고, 원소의 모신인 신평과 곽도에게 이렇게 말하고, 마침내 그를 떠난다.
"원공(원소)은 사람을 씀의 중요한 점을 알지 못하오. 두서는 많으나, 요령은 부족하며, 모책을 좋아하나, 결단력은 없으니, 그와 더불어서 함께 천하의 대난을 구제하고, 패왕의 업(業)을 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오!"
조조의 책사 희지재가 일찍 죽어 조조가 그를 대신할 사람을 찾았을 때, 순욱이 곽가를 추천한다. 조조가 곽가를 불러 만나 천하의 일을 논하고는, "내가 대업을 이루도록 해 줄 사람은 필히 이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곽가 또한 밖으로 나온 뒤에 기뻐하며 말하기를, "실로 내 주인이시다."라고 한다. 조조는 곽가를 사공 군좨주로 삼는다.
그 후, 조조가 원소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원소의 군세가 강성한 것을 들어 염려하면서 곽가에게 묻는다.
"원소는 기주, 청주, 병주 땅은 넓고, 병사는 강한데, 여러 차례 오만불손한 짓을 하였소. 내가 그를 치고자 하는데, 역량상 대적할 수 없으니 어찌해야 하겠소?"
그러자, 곽가가 대답하기를,
"원소에게는 패배할 열 가지 요인이 있고, 공에게는 승리할 수 있는 열 가지 요인이 있으니, 비록 원소가 병사가 강하나, 할 수 있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한다. 그러면서 조조와 원소를 비교한 열 가지 요인을 말한다.
도(道): 원소는 예의가 형식에 사로잡히지만, 조조는 자연스럽다.
의(義): 원소는 황제를 거스르나, 조조는 천자를 받들어 천하를 이끄니, 그 이치에 있어 순하다.
치(治): 원소는 관대하여 정치를 정돈할 수 없으나, 조조는 엄격하다.
도(度): 원소는 시기하며 의심하고 혈연을 중시하나, 조조는 재능을 중시한다.
모(謀): 원소는 모의만 하고 결단하는 것이 적으나, 조조는 책략을 세우면 곧바로 행한다.
덕(德): 원소는 명예를 얻고자 겉멋을 치장하나, 조조는 내실을 중시한다.
인(仁): 원소는 연민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참상을 고려하지 않으나, 조조는 염려가 두루 미친다.
명(明): 원소의 대신들은 권력을 다투어 참언이 횡행하나, 조조는 그렇지 않다.
문(文): 원소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나, 조조는 신상필벌한다.
무(武): 원소는 허세와 수에 의존하나, 조조는 요점과 용병을 중시한다.
그러자, 조조가 웃으며 말한다.
"경이 말한 바와 같은 것들을 내가 무슨 덕으로 감당할 수 있겠소!"
곽가가 이에 답하기를,
"원소는 바야흐로 북쪽으로 공손찬을 공격하니, 그가 원정하는 것을 틈타 동쪽으로 가서 여포를 취하십시오. 먼저 여포를 취하지 않았는데, 원소가 우리를 침범한다면 여포가 그의 외원(外援)이 될 것입니다."
라고 한다. 그러자, 조조가 옳은 말이라고 말한다.
조조가 여포를 토벌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하비까지 이르렀는데, 여포가 퇴각하여 굳게 지키니, 공격해도 함락시키지 못하고, 연이어 싸우다 보니, 병사들은 피로해져 조조는 돌아가려 한다. 이때, 순유와 곽가가 말하기를,
"여포는 용맹하나, 지모가 없는데, 지금 세 번 싸워 모두 패배하였으니, 그 예기(銳氣)가 쇠퇴하였습니다. 무릇 진궁에게는 지모가 있으나 더디니, 지금 여포의 기세가 다시 회복하지 못했고, 진궁의 지략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때에 진군하여 급히 공격하면 하비를 가히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라고 한다. 이에 기수와 사수를 끌어 성 쪽으로 물을 대니, 성에서 물이 넘쳐나 결국 여포를 사로잡는다.
조조가 원소와 관도(官渡)에서 대치할 때, 강동의 손책이 허도를 습격하려 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우려하는데, 곽가가 그를 헤아리며 말한다.
"손책이 이제 막 강동을 아우르며 죽인 자들은 모두 영웅호걸들로 능히 남으로 하여금 사력을 다하게 만드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손책은 경박하고, 이를 방비하지 않으니, 비록 백만의 무리를 거느린다 한들, 중원을 홀로 다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로는 그는 필시 필부의 손에 죽을 것입니다."
손책이 장강에 이르렀다가 미처 장강을 건너기 전에 과연 허공의 식객에게 죽임을 당한다.
원소가 병으로 죽은 후, 조조는 여양에서 원소의 후계자 원상과 싸운다. 조조는 수개월 간의 싸움 끝에 원상군을 밀어냈으나, 거듭 진군하다가 원상의 역공을 받아 패하기에 이른다. 제장들이 계속해 나아가 공격하자고 하니, 곽가가 말한다.
"우리가 급히 공격하면 원담과 원상은 서로 도울 것이고, 느슨하게 하면 뒷날의 다툼이 반드시 생겨날 것입니다. 남쪽으로 형주를 향하여 마치 유표를 칠 것처럼 하면서 변화가 생긴 뒤에 그들을 공격한다면 일거에 평정할 수 있습니다."
조조는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남정(南征)하여 군이 서평에 당도했을 때, 과연 내분이 일어나 원담과 원상이 기주를 다툰다. 원담이 원상군에게 패하고는 달아나서 평원에 의지하고, 신비를 조조에게 보내 항복을 청한다. 조조는 이를 받아들여 원담을 구원하고는 뒤이어 업을 평정한다. 또, 뒤이어 남피에서 원담을 공격하고, 기주를 평정한다.
한편, 세력을 잃은 원상은 오환으로 망명했으며, 오환의 지원을 받아 재기를 노리며 국경지역을 거듭 침공하며 반란을 사주해 조조에게 커다란 피해를 준다. 더 이상 피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조조가 오환의 원정을 논의했을 때, 대부분의 신하들은 원상은 망명한 포로에 불과하니,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단지 유표만은 유비를 이용해 허도를 습격할 것이니, 이를 염려하며 유표를 먼저 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곽가가 말한다.
"오환은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믿고 있으니, 필시 방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표는 앉아서 담소하기나 좋아하는 인물일 뿐이라 자신의 재능이 유비를 부리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유비에게 중임을 맡기면 그를 제어할 수 없을까 두려워하니, 공이 염려하실 게 없습니다."
조조는 이에 원정에 나서고, 역현(易縣)에 도착하니, 곽가가 말한다.
“병(兵)에서는 신속을 귀하게 여깁니다. 짐수레로 인해 진군이 늦어져 저들이 우리가 온다는 것을 듣게 되면 필시 방비를 할 것입니다. 짐수레는 남겨두고, 가볍고 날랜 차림의 군대로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가서 출군함으로써 적이 뜻하지 못할 때에 엄습하느니만 못합니다.”
조조는 그의 계책을 채용하여 오환을 격파하여 무찔렀고, 원상 등은 요동까지 도망치게 된다.
오환 정벌이 끝나 유성(柳城)에서 귀환하던 도중, 곽가는 풍토병에 걸려 병을 치료하다 38살로 요절하고 만다. 조조는 곽가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였고, 순유 및 다른 이들을 향해 말한다.
"여러분들은 나이가 모두 나와 동년배인데, 오직 봉효만이 가장 젊었소. 천하의 일이 끝나면 뒷일을 그에게 맡기려고 하였는데, 중년의 나이에 요절하니, 이것이 운명인가 보오!"라고 한탄한다. 그러고는 헌제에게 상주하여 곽가의 식읍을 800호를 더해 모두 1,000호가 되게 한다. 그리고, 정후(貞侯)라는 시호를 내린다.
곽가는 사물을 주의 깊게 살피는 데 뛰어나, 적절한 혜안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조에게서 "봉효만이 나의 참뜻을 이해하고 있다."라고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다고 한다.
208년, 적벽대전에서 패배할 때, 조조는 탄식하여 말한다.
“곽봉효가 살아있었다면 내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곽가는 조조가 가장 사랑하고, 신뢰해 마지않았던 책사였다. 그가 있었기에 조조가 중원과 하북을 평정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일찍 죽어 결국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마는데, 그때 조조는 "슬프구나, 봉효여! 애통하구나, 봉효여! 아깝구나, 봉효여!"하고 곽가의 죽음을 비통해한다.
곽가의 죽음은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안타까운 죽음 중의 하나로 여겨질 정도로 조조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아픔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곽가가 살아 있었다면 조조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곽가의 때 이른 죽음은, 1,8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독자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희대의 천재 지략가 곽가. 그의 공적을 기리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