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랑 주유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일찍 죽어 안타까운 인물들 특집 2편으로, 미주랑(美周郞) 주유(周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주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적벽대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적(大敵) 조조를 상대로 한 적벽대전에서 어떻게 통쾌한 승리를 거뒀는지와 동오의 초대 대도독(大都督)으로서 그가 쌓은 공적과 삼국정립 시대를 향한 그의 포부와 야망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주유는 자는 공근(公瑾), 양주 여강군 서현 사람으로, 건장하고 기상이 굳세며 자태와 용모가 빼어났다고 한다. 반동탁연합군 결성 당시 손책의 아버지인 손견이 의병을 일으킬 때, 손견이 집과 가족을 여강군 수춘현으로 이주시키자, 10세였던 주유가 동갑이었던 손견의 아들 손책의 명성을 듣고 정중하게 찾아가 손책과 만난다. 주유가 손책에게 여강군 서현으로 이주해 살 것을 권하자, 손책이 이 말을 따라 모친 오씨를 데리고 서현으로 옮겨가서 살면서, 주유 등 여러 사대부들과 친교를 쌓게 된다. 그로부터 주유는 손씨 가문과 인연이 생겼는데, 어찌나 사이가 가까웠는지 길 남쪽의 큰 저택을 손책에게 주고, 손책의 모친 오씨에게도 절을 했다고 한다. 또한, 서로 있는 것과 없는 것까지 도우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손책과 주유의 단금지교(斷金之交)가 시작된 것이다.
손책의 아버지 손견이 유표와의 전투 중에 전사하자, 손책은 원술의 밑으로 들어가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원술과 유요군의 전쟁이 발발하자, 손책도 참전해 병사를 받아 강동으로 오게 되는데, 이때 주유가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손책에게 귀순해 유요와 싸워 이기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손책이 왕랑이 있는 회계로 진출하면서 주유에게는 단양군을 지키게 한다.
이후, 주유는 손책과 함께 여강태수 유훈을 무찌르고 여강을 점령한다. 이때, 유훈의 본진인 환성을 함락시키면서 교공의 두 딸을 포로로 잡는데, 모두 천하의 절색으로, 언니 대교를 손책이, 여동생 소교를 주유가 아내로 삼는다.
200년, 손책이 허도를 습격하려는 북벌 시도를 추진하다가 허공에게 암살당해 죽게 되고, 남동생인 손권이 그 뒤를 이었는데, 손책의 유훈을 받아 주유와 장소가 국정을 주관하게 된다.
그 후, 형주의 유종(형주자사 유표의 후계자)이 조조에게 항복하고, 수십 만의 병사를 가지게 된 조조는 강동으로 눈을 돌린다. 조조가 손권에게 편지를 보내자, 손권은 신료들을 불러 모아 논의하는데, 신료들은 주화파와 주전파로 나뉜다. 장소를 필두로 한 대다수의 신료들이 항복을 주장하지만, 노숙만이 반대하면서 손권에게 파양에서 수군을 훈련시키고 있던 주유를 불러들이게 한다. 파양에서 도착한 주유는 조조를 이길 수 있는 이유들을 제시하면서 항전을 주장한다.
1. 수전에서는 우리 오군을 이길 수 없다.
2. 북쪽에는 아직 마초, 한수 같은 배후의 세력이 남아 있다.
3. 지금은 겨울이라 말에게 먹일 마초가 없다.
4. 중원의 사람들이 이 먼 곳까지 왔으니, 반드시 질병이 돌 것이다.
5. 조조는 한나라의 승상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역적이다. 한왕조를 위해 조조를 제거해야 한다.
6. 장군(손권)은 아버님과 형을 이어 강동을 점거해 땅이 수천 리이고, 군사는 날래야 이용하기 충분하다.
주유는 조조가 이러한 금기들을 무릅쓰고 전쟁할 것을 결정한다면 손권이 조조를 사로잡는 일은 마땅히 오늘이니, 청컨대 정예병사 수만 명을 주시면 하구에 주둔했다가 조조를 격파하겠다고 말한다. 이에 결심한 손권은 "늙은 도적 조조가 한 왕실을 폐하고 자립하려 한 지 오래인데, 몇몇 영웅들은 이미 없어졌고, 오직 나만이 있을 따름이오. 나과 조조는 형세로 보아 둘이 동시에 서 있지 못하고, 그대는 마땅히 쳐야 한다고 말했으니, 나와 (생각이) 아주 일치하고, 이것은 하늘이 그대를 나에게 준 것이오."라고 말한 후, 칼을 뽑아 앞에 놓인 책상을 베며 전쟁할 것을 결정한다. 손권은 주유와 정보를 좌, 우 도독으로 삼고, 노숙을 전군교위로 삼아 출전을 명령한다.
한편, 조조에게서 피난 중이었던 유비군은 노숙과 상의해 제갈량을 손권에게 파견해 힘을 합치게 된다. 이후, 조조군과 손유 동맹군은 적벽에서 대치하게 되는데, 조조는 주유가 나이가 어리면서도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 그를 설득시키기로 결심하고, 유명한 세객인 장간을 보낸다. 장간은 주유를 설득하려고 왔지만, 주유가 군영의 여러 곳을 보여주면서 도리어 장간에게 "옛 위인들이 날 설득하려고 해도 난 거절했을 텐데, 왜 자네 같은 애송이가 남들을 설득하겠다고 나서는가?"라고 말하자, 장간은 주유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조군 진영으로 돌아와 주유의 아량과 고상함을 칭찬하고, 말로써 주유를 이간시키는 것을 그만둔다.
적벽에서 대치중이었던 조조군에 과연 질병이 퍼졌고, 첫 교전에서 패해 장강 북쪽으로 물러난다. 이때, 주유의 부장 황개가 화계를 제안한다.
"지금 적군은 많고, 아군은 적기 때문에 오랜 시간 싸우는 것은 불리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조조군의 배는 앞뒤가 서로 이어져 있으므로 불을 질러 달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주유는 몽충과 투함 수십 척에 풀을 가득 싣고 그 가운데에 기름을 부어 휘장을 씌우고, 위에 깃발을 세워 위장시킨다. 그리고 먼저 편지를 써서 조조에게 황개가 거짓으로 항복한다고 알린다. 황개는 항복하는 척하면서 열 배를 풀어 동시에 불을 지른다. 그때 마침 동남풍이 매우 사나워 해안 위의 진까지 불길이 번진다. 순식간에 연기와 불꽃이 하늘 가득 퍼졌고, 불에 타 죽거나 익사한 병사와 말의 수는 셀 수 없었다. 주유는 유비와 힘을 합쳐 추격해 조조군을 대파하고, 그 주선을 불태운다. 조조는 조인 등을 남겨 강릉을 지키도록 하고, 자신은 북쪽으로 달아난다.
주유와 정보는 승리를 틈 타 남군으로 진격해 조인군과 대치한다. 도중에 감녕이 적군에게 포위당하자, 주유는 능통에게 본진을 지키도록 하고, 여몽과 자신은 감녕을 구출한다. 주유와 조인은 결전을 치를 날을 정하고, 정면대결을 벌이지만, 주유는 직접 말을 타고 지휘하던 중, 날아오는 화살에 오른쪽 겨드랑이에 부상을 입는다. 주유가 부상이 심해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은 조인은 주유군을 공격하지만, 주유가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 맞서자 패한다. 주유는 1년간의 공방과 유비와의 연합 끝에 조인을 무찌르고 남군을 얻는다.
손권은 주유를 편장군과 남군태수로 삼는다. 주유는 남군의 남쪽 땅을 쪼개 유비와의 동맹 강화를 위해 유비에게 주는데, 조조군에 복종했던 과거 유표의 관원, 병사 중 다수가 조조에게 배반하고, 유비에게 와서 투항한다. 유비는 주유가 나누어 준 땅이 부족하다고 여겨 다시 손권에게서 형주 남부 4군을 빌려간다.
이후, 장로가 유장의 익주를 약탈하자, 주유는 손권에게 지금이 촉을 얻을 때라고 청하고, 손권의 승낙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주유의 천하이분지계(天下二分之計)다.
"저는 본위장군(손유)과 함께 촉을 취하러 나가기를 원합니다. 촉을 얻고 장로를 병합한 후에 분위장군을 남겨 그 땅을 단단히 지키도록 한다면, 마초와 동맹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돌아와 장군과 함께 양양을 점거해 조조를 추격한다면, 북방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강릉으로 돌아온 주유는 다시 병마를 조련하며 서천 정벌을 준비하지만, 병에 걸려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행장을 꾸려 강릉을 출발했지만, 결국 파구에서 명을 다한다. 그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길고 짧은 것이 인생이니 진실로 애석해할 거리도 못 됩니다. 다만 제 작은 뜻을 펼치지 못하고 주군의 명을 다시는 받지 못함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노숙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라는 말을 이어간다.
"현재 조조와는 적이고, 유비는 가까이 공안에 있으며 변방 지역과 가까이 있고 백성들이 아직 귀의하지 않았으니, 응당 훌륭한 장수를 얻어서 진무시켜야만 합니다. 노숙은 지혜와 지략이 있어 이 일을 맡기에 충분하니, 저를 대신하도록 해주십시오. 제가 죽은 그 당일이라고 해도 걱정할 일 따위는 없을 것입니다."
주유가 죽자, 손권은 소복을 입고 크게 슬퍼했고, 주유의 영구가 강동으로 돌아오자, 장병들, 신하들과 같이 무호로 가서 맞이한다. 후에 고인이 된 장군 주유의 집안사람들에게는 부세와 요역을 지지 않게 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주유의 죽음은 손씨 정권에 치명적인 손실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손권을 비롯해 동오의 인사들 사이에는 대대적인 확장이나 접전을 꺼리는, 안전주의적 근성이 팽배해 있었는데, 주유만이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뻗어나가는 팽창주의적 정책을 지지하던 보루였다. 그런데 그가 급작스럽게 죽어버리니 안 그래도 소극적이던 성향의 동오는 더욱더 얼어붙게 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주유를 주로, 제갈량의 재능을 시기해 그를 죽이려고 획책하는 교활한 지략가의 이미지로 그리는데, 실제 정사 삼국지에서의 주유는 천하이분지계를 설계할 정도로 대범한 군략가요, 손책, 손권 2대 정권을 연이어 섬기며 장소와 함께 조정의 중심축을 담당하던 실세 정치가였다.
그런 주유의 죽음은 오에 있어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천하이분지계가 실현되어 오나라가 세력을 촉까지 세력을 확장했을 수도 있었고, 유비가 촉까지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주유가 살아 있었다면 손권 말년의 후계자 싸움인 이궁지쟁(二宮之爭)이 일어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유라는 인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 오나라에 있어서는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미주랑 주유. 음악에도, 서화에도 조예가 깊었고, 다재다능했던 주유. 그를 기리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