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관한 시 3편
과거 몇십 년에 비해 절대적 빈곤의 수치는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상대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계속된 경제 불황으로, 물가는 치솟고, 살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사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짙어지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집 한 채 없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가난의 어려움을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애환을 시에 담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가난에 관한 시 3편을 가져와 봤습니다. 그 시들은 바로,
김현승의 《내가 가난할 때》, 윤수천의 《가난한 자의 노래》, 김재진의 《달빛가난》
입니다. 자, 그럼 시를 감상해 보실까요?
내가 가난할 때
김현승
내가 가난할때......
저 별들이 더욱 맑음을 보올 때.
내가 가난할때......
당신의 얼골을 다시금 대할 때.
내가 가난할때......
내가 육신일 때.
은밀한 곳에 풍성한 생명을 기르시려고,
적은 꽃씨 한알을 두루 찾아
나의 마음 저 보랏빛 노을속에 고이 묻으시는
당신은 오늘 내집에 오시어,
금은기명과 내 평생의 값진 도구들을
짐짓 문밖에 내어놓으시다!
가난한 자의 노래
윤수천
가난도 잘만 길들이면 지낼 만하다네
매일 아침 눈길 주고 마음 주어 문지르고 닦으면
반질반질 윤까지 난다네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는 되지 못해도
그런대로 바라보고 지낼 만하다네
더욱이 고마울 데 없는 것은
가난으로 돗자리를 만들어 깔고 누우면
하늘이 더 푸르게 보인다네
나무의 숨소리도 더 잘 들리고
산의 울음소리도 더 말게 들린다네
더욱이 고마운 것은 가난으로
옷을 기워 입으면
내 가까이 사람들이 살고 있고
내가 그들 속에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라네
달빛가난
김재진
지붕 위에도 담 위에도
널어놓고 거둬들이지 않은 멍석 위의
빨간 고추 위로도
달빛이 쏟아져 흥건하지만
아무도 길 위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부지, 달님은 왜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나요?'
'잠이 안 와서 그런 거지'.
'잠도 안 자고 그럼 우린 어디로 가요?'
'묻지 말고 그냥 발길 따라만 가면 된다'.
공동묘지를 지나면서도 무섭지 않았던 건
아버지의 눌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부지 그림자가 내 그림자 보다 더 커요'.
'근심이 크면 그림자도 큰 법이지'.
그날 밤 아버지가 지고 오던 궁핍과 달리
마을을 빠져나오며 나는
조금도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시 세 편을 감상하고 오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는 형편은 비록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았던 옛 시절이 생각이 나는데요. 그러면서 가난과 공생하며 살아가던 우리네들의 삶을 반추해 봅니다. 가난한 자들의 애환을 담아본 오늘, 가난은 문 밖에서 외풍처럼 쳐들어오지만, 문 안에는 '화목'이라는 풍요가 그득그득해서 쉽사리 온기가 사라지지 않는가 봅니다. 제갈해리는 다음번에 더 좋은 시로 찾아오겠습니다.
추가로, 제가 대학 때 썼던, 가난에 관한 시 《빈털터리 민달팽이 아저씨》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