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노래한 시 5편
근교의 논밭에는 오곡이 풍성하게 자라나고, 과수원의 과일들은 풍요롭게 영글어갑니다. 참새들은 논밭의 허수아비 주변을 지저귀며 이리저리 날아다닙니다.
바야흐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하늘이 푸르다 못해 시퍼렇다 할 정도 청명하고, 곳곳에서는 아이가 색동옷 갈아입듯 나무들의 잎새가 노랗게, 빨갛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또, 동식물은 생명을 잉태하기도 하고, 인고의 끝에 큰 결실을 맺기도 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위로 지치고 힘들었던, 그 무더운 여름을 지나 선선한 가을로 접어들면서 식욕은 더 왕성해지고, 반팔에서 긴 팔로 새 옷을 갈아입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변해가듯 인간도 자연과 함께 변해갑니다. 우리 인간도 그런 자연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자연 속의 일부로 존재합니다.
오늘은 자연을 벗 삼아, 지붕 삼아 살아가는 인간. 그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연을 노래한 시 5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늘 제가 찾아온 시는, 백석의 《백화》, 이스 돌람(몽골인)의 《경주마의 눈》, 자크 프레베르의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 정지용의 《향수》,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가을》입니다. 자, 그럼 시를 감상해 보러 가실까요?
백화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너머는 평안도 땅도 보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경주마의 눈
이스 돌람 (몽골인)
수많은 경주마 앞에서
뽀오얀 먼지를 일으키며
선두로 달려 오고 있는 경주마의
눈을 보라
광막한 지평선에
어둠이 서서히 열리고
먼 산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새벽의 금성이 그렇게 빛난다.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
자크 프레베르
죽은 잎의 장례식에
두 마리의 달팽이가 가고 있다
검은 색깔의 껍데기 옷을 입고
뿔 주위에는 상장을 두른 차림이었다
그들이 떠난 시간은 어둠에서 나와
아름다운 가을 저녁이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불행하게도
이미 봄이 되었다
죽었던 나뭇잎들은
모두 다시 소생하였고
두 마리 달팽이는 매우 실망해버렸다
하지만 여기 태양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견뎌내세요, 괜찮으시다면
여기 앉아서 맥주 한잔 드시지요
그럴 생각이 있다면
정말 그럴 생각이 있다면
파리로 가는 버스도 타보시지요
오늘밤 떠나는
바깥의 풍경들을 보게 될 거야.
이제 상복은 벗고
더는 애도하지 마세요
상복은 눈의 흰부분을 흐리게 하지
까맣게 만들고
그리고 인상을 추하게 만들지
견딜 수 있어야 해요
죽음의 역사 그것은
슬프고 아름답지도 않다
너희들의 색깔을 다시 짚어라
삶의 색깔을
그럼 모든 짐승들
나무들과 식물들이
노래하게 되는 거야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는
진짜 노래는 살아 있다
여름의 노래
그리고 모두들 술을 마시며
모두가 건배하는
멋진 밤
아름다운 여름 밤
그리고 두 마리 달팽이들은
그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매우 감격하고
매우 행복해진다
술을 많이 마셨으니,
작은 몸을 조금 비틀거리지만
하지만 저기 저 하늘에
달이 그들을 지켜봐주고 있다.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가을
라이나 마리아 릴케
나뭇잎이 진다. 나뭇잎이 진다. 먼 곳에서 내려오듯이.
하늘 속에서 먼 정원이 수없이 시들어가는 것처럼 나뭇잎이 진다.
역겨운 몸부림을 치면서 떨어진다.
그리하여 여러 밤 사이에 검은 지구가 고독 속에 가라앉는다. 다른
모든 별들을 떠나서.
우리들 모두가 떨어진다. 이 손이 아래로 떨어진다.
네 또 하나의 손도ㅡ보라, 모든 손이 떨어진다.
자연을 노래한 시 5편을 감상하고 오신 느낌이 어떠신가요? 인간은 무한한 우주의 한 파편, 또는 작은 먼지에 불과하지만, 지구의 광활한 자연에서는 중심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자연과 공생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과 자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죠.
오늘은 숲 속이나 산속을, 또는 강가나 바닷가를 거닐며 산책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연 속에서 평온함을 느끼면서 말이죠. 그럼, 제갈해리는 다음 번에 더 알찬 시로 찾아오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대학 때 썼던, 자연에 관한 시 《태양의 오케스트라》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