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정의 풍요를 기원하며

가족과 관련된 시 5편

by 제갈해리

풍요와 풍성함의 계절인 가을의 절정 추석 황금연휴가 지나고 있습니다. 추석날 아침 차례상에 풍년을 맞이해 올라온 온갖 음식들이 차려졌습니다. 올해는 비도 많이 오고, 일조량도 풍부해 과일과 벼농사가 풍년이라고 합니다. 정말 풍성한 한가위입니다. 국내 경제 상황까지 좋아지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래도 농사가 풍년이라는 것에 앞으로의 경제 상황도 기대를 걸어 봅니다.


가을은 수확과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고, 가정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민족의 명절로 불리는 추석이 있기 때문이죠.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한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지고, 가족, 친지와 함께 즐겁게 명절을 즐기는 추석. 추석의 보름달이 가득 찬 만큼 우리의 허전했던 마음도 가족과 친지를 방문하면서 가득가득 차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가족과 친지를 만나 험담과 욕설을 입에 담지 않고, 부디 덕담과 좋은 말들을 나누면서 즐거운, 민족의 명절 한가위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추석을 맞이해 가족과 관련된 시 5편을 엄선해 왔습니다. 가족과 관련된 시 5편은,


박목월의 《가정》, 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 김종길의 《성탄제》, 기형도의 《엄마 걱정》, 박재삼의 《추억에서》

입니다. 이 시 다섯 편을 통해 가족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번 듬뿍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가정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컬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 다른 아홉 컬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굵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로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어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깨끗한 피로......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ㅡ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추억에서

박재삼

진주(晋州) 장터 생어물(生魚物)전에는
바다 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晋州) 남강(南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가족과 관련된 시 다섯 편과 함께 하셨는데,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저는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면서 가족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시를 통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느껴보니, 가족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번 추석 가족, 친지들에게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한번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가족과 친지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드리는 건 어떨까요? 아니면 손수 편지글을 써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여러분의 마음을 적어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가족, 친지 간의 애정이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요. 제갈해리는 여러분 가정의 풍요를 기원하며 다음번에 더 좋은 시로 찾아뵙겠습니다.


추가로, 제가 대학 때 썼던, 가족에 관한 시 《오늘은 엄마가 되어야지》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오늘은 엄마가 되어야지


가정의 풍요를 기원하며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2화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을 반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