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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대한 책임

2025년 11월 3일 월요일

by 제갈해리

나는 9년째 조현병을 앓고 있지만, 조현병이라고 하여 항상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트리플 대형 사고를 쳤을 때에도 모두 조현병이라는 것이 참작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행한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고를 치면 칠수록 죄의 무게는 더 커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한때 조현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이 나를 좀 더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병이 있으니, 나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내게 하는 언행을 조심해 주길 바랐는데, 가족들은 (특히 부모님은) 크게 내 병에 관심을 가지지도, 내게 하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를 평범한 가족의 일원으로 대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이 되려 내 병을 다스리는 데 더 나은 방식이었던 것 같다.


병이 있다고 해서 특별대우를 바라는 건 나의 욕심이요, 자만이었고, 특별대우를 할 만큼 이 병이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망상과 환청을 동반한 이 조현병은 각별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한 병이기는 하다. 그러나 조현병이라는 핑계를 대고, 나의 모든 행동에 면죄부를 준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식이라는 것이다.


설사 내가 다시 조현병으로 인해 폭행사건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조현병을 예방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 큰 것이다. 미리미리 병을 다스리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가 터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현병이라는 이름으로 어물쩍 묻어가지 않아야 한다. 병은 병이고, 그것을 관리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암에 걸린 환자도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받듯이, 조현병 환자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행한 범죄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기에 심신 미약으로 자신의 형량을 낮추려는 행위는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행동인 것이다. 심신 미약 이전에 병을 다스리지 않고, 범죄를 저지른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조현병과 공생하는 환자들은 자신의 병에 대한 책임이 있다. 자신의 병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성인이요,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자신의 병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 누가 조현병을 관리하고, 극복해 낼 수 있겠는가. 부디 조현병 환자들이 병을 잘 관리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병에 대한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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