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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일제강점기에 쓰인 시 3편

by 제갈해리

최근 일본 총리가 바뀌었는데요. 바로,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인 다카이치 사나에인데요. 여성이 총리가 되기는 했지만, 보수적인 자민당 정권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합니다.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같은 인물이 되고 싶다고 했다는데, 과연 일본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궁금해집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 전범들의 위패가 놓인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 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극우파인 것만은 확실해 보이는데, 한국과의 상호호혜적인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요. 한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갈지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과거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일본이 사과하지 않고,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는 한, 한국 국민들과 일본 국민들은 과거사를 청산할 수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일본이 역사 왜곡을 계속해 나가고,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한, 한국과의 미래 관계는 불투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제강점기에 쓰인 시 세 편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시 세 편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육사의 《광야》, 윤동주의 《참회록》


입니다. 그럼 시를 감상해 보실까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날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시를 감상해 보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일제의 만행에 대한 시인들의 분노와 슬픔이, 또는 빼앗긴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각자 다른 목소리로 시를 노래했지만, 결국 일제강점기를 고통스럽게 살아갔던 시인들의 아픔과 성찰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결을 같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인들은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요? 작금의 일본과의 관계를 우리는 어떤 자세로 바라봐야 할까요?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다시금 생각해 보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대학 때 썼던 시 《제국의 품격》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제국의 품격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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