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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너는_이런 생각이었을까?

by 성준

이 놈의 돼지 비린내가 싫다. 어디선가 고인 피의 잔향 같은 냄새가 코끝을 때렸다.


바람이 멎은 날이면 더 진해지는 그 냄새는 마치 이 동네 전체가 썩은 기억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기분 좋게 술에 취해 집에 오다가도 집 근처에 다 오면 이 놈의 돼지 비린내가 난다. 처음 이사 올 때는 몰랐다. 도대체가 이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6-7년을 함께 살던 형이 뜬금없이 장가를 갔다. 뭐 본인이 간다니까 가는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아니 그 덕에 내가 이곳에 살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형은 새 삶으로 갔고 나는 남겨진 공간에 들어왔다.


그것이 다였다.


형이랑 함께 살던 신촌이 조금 낫기는 했는데 뭐 어쩔 수 없었다.


형은 방송국을 다녔었는데 벌이가 영 시원치 않았었던가보다. 자세히 묻지도 않았고 말해주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공부해 겨우 들어간 방송국도 몇 년 채우지 못하고 직장을 옮겼다. 한 때 잘 나가는 소셜 커머스를 다녔는데 그곳마저 겨우 일 년을 채우고 뛰쳐나왔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뛰쳐나온 건지 잘린 건지 그것도 모르겠다. 첫 조카가 태어나자마자 그 일이 벌어졌으니, 형수가 오죽 답답했을까 싶다.


형수는 조금 어렵다. 형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으니 나와는 네 살이나 차이가 난다. 젊어서부터 자기 사업을 했어서 그런지 좀 시원시원한 면도 있고, 고집스러운 면도 있다. 뭐 어찌 되었던 나와 부딪치지만 않으면 된다. 내게 뭐라 그러면 나도 가만있지만은 않을 거다. 이제 와서 누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지겹다. 지금까지 충분히 그랬는데 이제라도 좀 편했으면 싶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형수라는 사람이 좀 오지랖이 많다.


형이 결혼한 덕분에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여행을 갔다. 그러고 보면 가족들이 어디 근사한 곳으로 여행을 갔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여름, 개울가에 텐트를 치고 하루쯤 자고 오거나, 친척집을 다녀온 걸 제외하면 어느 여행지를 다녀 본 적이 없었다. 참 우리 집도 재미없게 살아왔다. 뭐. 그 일들에 내가 어느 정도 한몫을 하긴 했으니 불평은 못하겠다. 어쨌든 집 안에 여자가 들어오니 분위기가 바뀌려나? 싶기도 했다. 첫 가족 여행은 바닷가 어느 펜션으로 갔다. 아버지 어머니는 며느리가 들어오고 첫 가족여행이라서였을까 다 먹지도 못할 만큼 돼지고기며, 소고기를 잔뜩 사 오셨다. 아무리 봐도 좀 오버하신 거다. 그런데 그날은 웃기게도 바람이 너무 불어 숯불이 제대로 피어오르지 않았다. 방안에 좀 그럴싸한 프라이팬 하나만 있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마저도 제대로 없어, 제대로 익히지도 못한 고기들로 겨우 겨우 끼니를 때웠다. 여행도 다녀본 사람이나 다닌다고, 평생을 다녀보지 않았던 가족이 여행을 가니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암튼 어색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 저녁을 일찍 잠들고 다음날 박속낚지로 점심을 먹었는데 이 맛도 저 맛도 아니어서 좀 웃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생각했다. 여행도 다녀봐야 즐길 줄 안다고. 우리는 여행을 모르는 가족이었다. 고기를 굽는 것도, 불을 피우는 것도, 서로를 편하게 대하는 것도 모두 어색했다. 그런데 그 어색함이 나중엔 가끔 그리워졌다.


암튼 형이 결혼을 한 덕분에 같이 살다 혼자 독립하게 된 거다. 형이랑 둘이 살 때는 그래도 거실도 있고, 방도 두 개나 있던 빌라였는데 혼자 똑 떨어져 살려니 그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건 원룸밖에 없다. 고시원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원룸으로 옮겼다. 방이야 어차피 잠이나 자고, 혼자 있으니 별 상관없었다. 문제는 방이 작으니 조금만 정리를 안 해도 금세 지저분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상관이 없다. 형이랑 살 때도 내가 청소해 본 적 한 번 없었고, 안 해도 괜찮은데 형이 때때로 알아서 치웠다. 그런데 여기는 형이 없다. 그리고 때때로 엄마가 올라오는 날이면, 이 작은 방을 참 꼼꼼히도 치우신다.


물론 안다. 내가 걱정돼서 그러시는 거라는 걸 아는데 듣기 싫다. 술 먹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마라. 꼭 식사는 제때 하고 운동도 해라. 시간 없으면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걷기라도 해라. 주사 꼭 잊지 마라. 뭐 하나하나 틀린 말은 아닌데.. 이제는 듣기가 싫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고 못되게 입이 나간다. 어느 날 엄마는 내 퉁명거림과 욱 하는 모습에 기차가 끊긴 시간 내 방을 나서기도 했다. 원래는 자고 가는 계획이었는데 그날 엄마는 내 모습이 너무 속상해 함께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방이라도 두 개였으면 다른 방에 피해서 밤을 보냈을 텐데. 원룸에는 숨거나 가릴 곳이 없기에 그날 엄마는 기차도 끊긴 기차역에서 새벽 첫 차를 기다렸고, 그 첫 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셨다. 엄마는 기차가 끊긴 역에서 말 한 마디 없이 새벽을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핸드폰만 붙들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내가 평생 지고 갈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나도 안다. 내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엄마가 내게 하는 모든 말들이 어느 하나 그른 것이 없다는 걸 나도 안다. 그 말랑한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면 가시가 된다.


돼지 비린내의 정체는 이 동네에 도축장이 있다는 거다. 과거 이곳은 우시장으로 유명했고, 지금도 소와 돼지를 도축하는 공장이 곳곳에 남아있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원룸 근처에도 있는 것 같다. 밤이 되어 공기가 가라앉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유독 이 비린내가 더 심하다. 술에 취해 집에 오다가도 비린내가 느껴지면 술이 깬다. 이놈의 돼지 비린내. 뭐 더 이상 상관없는지도 모르겠다.


평소보다 주머니가 가벼워 좋다. 간단히 챙겼고 가뿐하게 나섰다. 아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놈의 비린내 때문이다. 좋았던 기분이 다시 우울해진다. 발걸음은 무거운데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이 놈의 비린내 좀 그만 맡았으면 좋겠다. 비린내에 밀려 발걸음을 떼었고, 밤공기가 제법이나 차가워졌는지 정신이 조금 든다. 큰길로 나서 더 이상 비린내를 맡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밤공기가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기분이 이상하리만치 맑아졌다.

감정이 없다기보다는, 감정이 정리된 느낌.

그렇게, 나는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서울의 불빛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서울은…



너 없는 문장으로

어쩌면 이 글들은 너의 마지막 하루를, 내가 대신 써보는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너는 아무 말 없이 갔고, 나는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그날 너는, 어떤 냄새를 맡았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문을 열었을까.

이 글은 내 상상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상상은 때때로 기억보다 더 진실해질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너를 상상하며, 너를 다시 한 번 불러보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그런 상실 속에 있다면, 조용히 앉아 함께 울어주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늦었고,
미안하다는 말은 아직도 어렵다.
그러니 이 글의 첫 문장은
그저, 너 없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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