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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너는_PTSD

by 성준

성준이를 보내고 그리 오래지 않았던 때 아내의 지인이 찾아왔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지인은 인명구조자격증을 따기 위해 이것 저것을 배우고 있었다. 인공호흡을 배우고, 수영법을 새로 익히고, 체력 테스트를 받았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의 지인은 성준이에 대해 알지 못했다.


"바닷가에서 스킨 스쿠버를 하는데 갑자기 호흡기가 고장이 난거야. 제대로 체크를 하지 않았던 건지, 내가 시간을 오버한 건지 갑자기 산소가 더 나오지가 않았어. 평소라면 바닥을 박차고 수면 위로 올라갔을 텐데. 당황해서 그랬나봐. 어찌 할줄 모르겠는거야. 숨은 턱까지 막히고, 당황하다보니 바닷물을 울컥 삼켜 버렸는데...와 가슴을 무슨 바늘 천개가 동시에 찌르는 것처럼 아파오는거야. 몰랐어 기도로 물이 들어가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숨을 컥컥 거리며 겨우 수면위로 올라왔는데...글쎄 그 짧은 사이에 눈에 실피줄이 터져버린거야.. 정말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니까?"


방심하고 있었던 순간 나는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와 절망감을 경험했다. 그 순간의 묘사에 성준이의 마지막이 너무도 선명하게 눈 앞에 그려지는 것이었다. 아내와 함께 듣고 있던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 잠시라도 더 머물렀다가는 그 자리에서 내 속을 다 게워내어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 묘사가, 그 경험을 듣지 말았어야 했었다. 그 고통스런 순간을 나는 몰랐어야 했었다. 어떤이도 수면아래 마지막 숨이 어떠했는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그 녀석도 그랬을 테니까.


얼마나 후회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눈물이 났을까?

얼마나 되돌리고 싶었을까?


상처를 겨우 꼬메어 두었다 생각했는데, 마치 한 웅큼의 소금으로 박박 문질러 대는 듯한 잔인함이었다. 예상치 못한채 얻어맞은 카운터 펀치 같았고, 정말 문자 그대로 순식간에 나는 암흑 그 자체에 묻혀버렸다. 지인은 아무것도 몰랐고, 그럴 의도도 아니었기에 원망을 할수도, 화를 낼수도, 그렇다고 그렇게 동생을 잃었노라고 설명을 할 수도 없었다. 악의 없이 쏟아낸 경험 하나 하나가, 그 단어 하나하나가, 그 자음과 모음 하나 하나가 바늘이 되었고, 소금이 되었을 뿐이었다.


지금쯤이면 그 지인은 자격증을 획득했을 테고, 어쩌면 바람대로 몇몇의 목숨을 살렸을 수도 있다. 세상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을런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때의 기억들로 성준이의 마지막 순간이 더 생생하게도, 더 잔인하게도 기억에 아로새겨져 버렸다.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잔인했을지. 무력해 했을지, 막연하게 고통스러웠을 거란 상상이 눈앞에 영화로 새겨져 버렸다. 성준이의 마지막이 내게 각인되어버렸다.


그 순간 그 지인은 세상 누구보다 내게 잔인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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