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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너는_때로는 서운함에 휘둘려

by 성준

기일이 다가오면 성준이의 친구들은 모임을 갖는다. 그의 기일에 맞추어 친구들이 모인다. 서로 안부를 묻고, 시간을 함께 하고는 마지막으로 성준이의 납골당에 들러 인사를 하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벌써 그렇게 십 년의 세월을 보냈다.


성준이가 처음으로 집을 나섰을 때 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성준이의 이야기를 하자만 그 동무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 순간 순간 모두 그들이 있었다.


성준이와 함께 살던 대학 시절, 친구들은 방안갓 드나들듯 집엘 찾아왔다. 내가 군대를 가고 성준이 혼자 살던 시기엔 아예 그들의 아지트가 되었었다. 그나마 형과 함께 산다고 체면을 차린 것이라는데 가관도 아니었다. 매일을 만나고도 무엇이 또 궁금한지 노상 집으로 찾아왔고, 밤이 되면 불나비가 되어 어디론가 재미를 찾아 나섰다. 어느 술집에서도 함께 였고, 그렇게 마시고도 다음날이면 머리를 쥐어싸며 해장을 하고는 또 밤이 되면 살만하다 꺼리를 만들었다. 청춘이었다.


즐거움만 함께 한 것도 아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병원 신세를 질 때면 그 응급실에 꼭 누군가 있었고, 한껏 죄송하다는 말투로 상황을 전달하곤 했다. 반성하리라 여겼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조금만 살만하면 또 함께 밤을 즐기곤 했으니까. 성준이의 희노애락 모든 순간은 가족보다 그들과 함께 있던 순간들로 채워져 일을 것이다.


성준이가 사라지고 그 친구들은 보름 가까이를 성준이를 찾는데 매달렸다. 갈 만한 곳, 만날 만한 사람들, 찾아보아야 할 모든 곳들을 찾았지만, 성준이는 그 노력에 다른 방식으로 답을 주었다.


젊은 날의 장례식장은 참 시끄러웠다. 모두들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친구의 모습을 영정 사진으로 만나는 일도, 친구의 영정 앞에 어떻게 문상을 드려야 하는지도, 상주에게 어떤 방식으로 위로를 나눠야 하는지도 모두가 처음이었고, 어색했었다. 형식은 어설프고 모양새는 낯설었지만 성준이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워 하는 그 마음 하나만은 진심이었다.


자식과 형제를 먼저 보내는 상주들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성준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떻게 추억해야 할지 발인이 다 되도록 정하지 못했다.


"민수야. 나는 우리 어머니가 너무 걱정 돼. 성준이가 어디 있는지 아시면, 그 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실까봐. 걱정돼 죽겠어. 그래서 니들에게 염치없지만 성준이를 맡길게. 우리 성준이 너희들이 잘 보내줘"


발인이 가까워 질 무렵 나는 성준이를 맡겼다. 성준이의 마지막 안식을 가족이 아닌 친구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최선이라 여겼던 일이지만 나는 비겁했다.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화장을 마치고 마지막 온기를 품고 있던 유골을 그렇게 친구들에게 넘겨졌다. 아들의 장례식 내내 표정이 없던 아버지는 그만 보내라는 아버지의 친구에게 처음으로 감정을 쏟아 내셨다.


"그만해.. 내 아들이라고, 내 아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내고 성준이는 친구들과 함께 떠났다. 우리 가족은 49재를 마치도록 성준이가 어느곳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49재를 마치고 한참 후에야 수몰된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음을 전해들었다.


1주기 되었을 때는 그 녀석들이 모여 추모제를 열었다. 카페를 하는 친구의 가게에서 성준이의 친구들이 모여 성준의 옛 사진과 영상을 틀고 잊지 않으려 애를 썼다. 성준이는 가족보다 친구들에게서 더 사랑받고 있었다. 그 사진 속에는 우리가 몰랐던 웃음과 미소와 즐거움이 비쳤고, 아쉬움도 미안함도 서운함도 느껴졌다.


십 년이 지나도록 성준이의 생일과 기일때가 되면 납골당에는 포스트잇이 붙는다. 작은 메모가, 편지가 붙는다. 벌써 시간이 이리도 흘렀다는 이야기, 이제 곧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 꿈속에 니가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남겨진다.


그 메모를 읽고 있자면 친구들의 그리움도 보이고, 안타까움도, 미안함도 읽힌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작은 원망과 서운함도 느껴진다. 동생은 여전히도 서른 세살의 그대로인데 너희들은 마흔이 넘었고,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겼구나. 너무도 당연한 일상에 작은 못난 생각과 미움이 들기도 한다.


그럴때면 웃고 있는 성준이의 사진이 나를 꾸짖을 것만 같다.


"내 친구들이야. 뭐라 하지마!"

라고 내게 한 소리 할 것만도 같다.


나도 살고 있는데. 형인 나도 살아가고 있는데. 삐뚤어진 생각이 부끄러워 때론 애써 모른척 전화를 넘기기도 한다. 그래도 알고 있다. 그냥 동생이 그리운 순간에 어찌할 바를 몰라 잠시 못나게 생각이 솟은 거라는 걸. 그저 내가 못나 잠시 삐뚠 생각을 하는 것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서운함은 동생이 그리워서라는걸. 나도. 그들도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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