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민박집

제 05화.민박집의 새식구

by 성준

- 오빠는 계속 민박할 거야? -


수인은 잘 잤느냐는 아침 인사도 없이 해진을 보자마자 물었다. 어젯밤 긴 수다와 대화로 새벽이 가까워서야 잠자리에 들었지만, 어느 때 보다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은 기분이다. 아침 기상이 이렇게 설레이는지 오랜만에 느낀 것 같다.


- 그래 수인아 좋은 아침! 이거? 민박집? 음... 아직 잘 모르겠네 시간도 보내고, 몸도 움직일 겸 시작은 했는데. 쉽지가 않아. 일은 별로 어렵지 않은데 민박을 왜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자고 하는 일도 아니니까. 왜 그게 궁금해? 자 일단 아침부터 먹고! 차려놨어 -


수인은 해진의 이끌림에 자연스레 식탁에 앉으면서도 눈과 귀는 온통 해진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얀 김이 오르는 밥냄새가 좋다. 하마터면 밥그릇에 먼저 손이 나갈 뻔했다.


- 오빠! -

- 왜? 무얼 바라는 게 있어 이리도 친절하게 부르실까? -


수인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지금부터 자신이 하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오랜 시간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한번 뱉어 버리면 쉽게 돌이키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쯤은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책임감뿐 아니라 금전적인 면 등등 여러 가지로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 오빠... 나 여기에 오면서 처음엔 되게 당황했거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거야. 관광 명소도 없고, 풍경은 예쁘지만, 주변에 편의시설 하나도 없고, 처음 과수원에 도착했을 때는 숙소가 있기는 한 건가 의심마저 했었다니까. 만약 내가 아는 오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면, 아마도 112에 신고했을지도 몰라. 납치된 것 같다고.


그런데 어젯밤을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서 뭔가 내 안에서 굉장히 달라진 것 같아. 여기는 내가 지냈던 곳과는 너무 다른 곳이야.


나는 밤이 이렇게 어두운 줄 몰랐어, 어둠이라는 걸 처음 경험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밤하늘은 또 너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단 말이지. 여기 이렇게 불멍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너무 마음에 드는 거야. 그냥 앉아만 있어도 내 속에서 무언가 녹아내리고 있는 것 같아.


그동안 쉽게 털어놓지 못해서 딱딱하게 뭉쳐 있는 응어리들이 무언가 살랑살랑 녹아서 다 흘러내리는 것 같아. 마음이 좀 홀가분해졌어.


그래서 말인데. 나는 오빠가 이 민박을 계속했으면 좋겠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도 이 민박 같이 하고 싶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여기를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 내가 여기서 힐링을 하고 싶어.


나.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하지 않았는데. 항상 제대로 쉬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 그냥 하는 일 없이 계속 쫓기는 기분으로 살아왔는데. 여기서는 쉬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이 민박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어. -


수인은 살짝 맛있는 냄새에 무너져 내릴 뻔했지만, 정신 대신 젓가락과 숟가락을 꽈악 움켜잡고 식탁 위에 두고 말을 이어나갔다.


- 어? 정말?


수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해진은 몹시 당황했다. 한 번도 이렇게 진지하게 민박을 고민해 본 적 없었기에 수인의 이야기가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 수인아. 근데 그러기엔 여기가 좀 부족하지 않을까? 제대로 꾸며 놓은 것도 없고.. 둘이 같이 하기에 그렇게 일도 많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나도 여기에 더 투자를 할 여력은 없거든

- 내가 투자할게. 딱 천만 원만. 그리고 수익은 반반이야. 투자금액은 2년 후에 회수. 그때까지만 우리 운영해 보자. 내 판단이 틀려도 오빠에게 책임지라고 하지 않을게 -


-... 너... 진심이구나? -


- 나? 응 진심이야! 완전 진심!! -


해진의 집은 툇마루가 있는 방 3개짜리 공간이었다. 거실은 툇마루와 이어져 있다. 요즘 아파트 식의 공간에 거실과 마루가 이어져 있는 셈이다. 그리고 창고 겸 작업실이 하나 딸려있다. 지금까지는 해진의 아버지가 공구며 작업도구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집이 40평 작업실이 20평 정도 되었다.


해진과 수인은 작업실을 직원 숙소로 바꿨다. 숙소 한쪽 벽으론 테이크아웃 커피숍처럼 외부로 향하는 바를 만들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본채는 민박을 위해 각 방들로 꾸몄다. 수인과 해진이 추구하는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과한 실내 장식과 가구들은 피했다. 딱 머무를 수 있을 정도의 소박하고 담백한 가구와 침구류가 전부였다. 대신 불멍을 할 수 있는 공간에 더 큰 투자를 하기로 했다. 모든 것은 해진과 수인이 도맡았다. 서로 상의해본 결과,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하지만, 돈은 없었기에 유튜브며 주위 사람들의 조언이며 많이 듣고 배워가며 스스로 진행하기로 했다. 마감과 솜씨는 거친 느낌이었지만, 꽤나 저렴한 금액으로 공간을 꾸밀 수 있었다.


해진의 아버지가 만들어 두신 화로대를 중심으로 6-7평 정도 되는 공간을 정리했다. 주변은 폐석으로 혹시나 화재에 대비하고, 방화수도 잊지 않았다. 캠핑용 의자 중에 가장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를 4개 골랐다. 화로대를 중심으로 5미터쯤 떨어진 곳에 원을 그려 낮은 담장을 쌓았다. 바람이 잠잠해져 훨씬 더 안락한 분위기가 들었다. 주변 잡초를 정리하기만 했는데도 훨씬 분위기 있는 공간이 되었다.


- 오빠 우리 여기는 더 손대지 않아도 되겠는데? 여기는 뷰가 다 했네


화로대는 해진의 아버지가 가장 신경 써 고르신 장소에 있었다. 민박집에 저녁노을이 질 무렵이면, 서편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이 아무 방해 없이 오롯이 들어왔다. 적당히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풍경과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의 색은 어떤 장식보다 더 뇌리게 심어졌다. 그저 주변을 깔끔하게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이곳의 준비는 끝난 것 같았다.


해진은 아버지가 이런 풍경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하고 아버지가 그리워져 콧날이 시큰해지곤 했다.


모든 작업은 둘이 머리를 맞대고 끊임없이 의견을 나눴다. 그 사이 수인은 서울 자취방을 정리하고 짐들을 옮겼다. 그래도 이사라고, 해진의 픽업트럭에 한가득 짐을 옮겼다.


- 우리 서로 잘하는 걸 맡자! 오빠는 요리를 하면, 내가 청소를 맡을게, 아무리 생각해도 요리는 나보다 오빠가 더 잘해. 나 그날 여기서 먹은 저녁 아직도 기억할 정도라니까?

- 맞아 내가 봐도 너한테 요리를 맡기면 안 될 것 같긴 해.. ㅎㅎ

- 어쭈.. 아주 매를 번다?


해진이 요리를, 수인은 청소를 전담하고, 그 외의 일들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해진과 수인은 많은 대화 끝에 하루 단위의 숙박은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최소 2박 정도는 여기서 묵어야 자신들이 추구했던 힐링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편이 서로가 이곳에서 느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전달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원칙은 정해놓되, 유연함은 잃지 않기로 했다. 해진과 수인 모두 세상일이 생각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과수원 곳곳에 앉아 쉴 수 있는 의자와 산책로를 만들었다. 예쁜 나무 아래 벤치를 만들고 과수원 구석구석을 천천히 거닐 수 있도록 작은 오솔길을 만들었다. 본채로 오르는 길에는 조명들로 발길을 밝혀 아늑함을 더했다. 제법 운치가 더해졌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그 사이 눈이 쌓였다 녹았고 과수원의 사과나무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봉우리들이 봄이 옴을 알리고 있었다. 심장이 말랑해졌다.


민. 박. 집 문이 열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 04화.밤은 생각보다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