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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민박집

제08화. 처음 만난,진상 손님

by 성준

- 우와 정말 아무것도 없네 여기.. 헐..


택시에서 내리며 주위를 둘러본 윤성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택시가 멈추기 전부터 저기 과수원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래도 여기에 호스트가 아닐까 싶었다. 윤성보다 많이 어려 보였다.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윤성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 어서오세@#% 오늘 %34 주신 %!2신거죠?

- 아.... 네..


자꾸만 말의 중간중간이 멀게 들려온다. 마치 물속에서 물 밖의 소리를 듣는 것만 같다. 그나마도 상대방의 얼굴과 입모양을 보면 더 이해하기 쉽지만,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이해하는 데 한참 생각해야 했다.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씩 짜증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듣지 못한 다는 것에 안타까움만 가졌을 뿐 기본적인 삶조차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은 외면하며 살았던 것이다.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삶을 이야기해 준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이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과 그로 인한 자괴감등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었던 자신이 떠올랐다.


- 갑자기 오신다고@#$ 당황했어@#, 그래도 여기 마@에 드실%$에요 오@!은 날이 @#$아서 저@놀이 꽤나 6#@$%할 거예요. 저녁^67&% 후에 #$^235이 있어요. *^%$면 참^54 추천 @#요.


여성 스탭이 무어라 꽤나 길게 설명해 주었다. 윤성은 문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아마도 저녁노을이 예쁘다고, 식사 후에 불멍이 있으니 시간 되시면 오시라는 그런 이야기라 생각했다. 문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아... 네 그럴게요. 여기는 과수원이었나 봐요.

- 네. 작년까지도 과수원이었어요. 지금도 저기 나무들은 다 사과나무예요.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사과 꽃도 필 때가 되었어. 꽤 볼만해요.

- 저... 숙소는... 어디에.. 제가 조금 피곤해서요.

- 아고. 참 가방 주세요. 숙소는 저기 보이는 저 건물이에요.


수인은 억지로 가방을 받아 먼저 성큼성큼 올라섰다. 민박집을 준비하면서 과수원을 오르락 거릴 때마다 힘들다며 투덜거리곤 했는데, 손님의 반가움 때문일까? 제법 허벅지에 근육이 붙어서일까 산을 오르는 사슴처럼 훌쩍훌쩍 잘도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해진은 손님의 뒤에서 천천히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삼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꽤나 단정해 보이는 옷차림에 세련된 해드폰까지, 요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손님이라 생각했다.


- 길이 조금 힘드시죠?


해진이 조심스레 물었지만, 남자는 주변에 정신 팔린 듯, 둘러보며 대답도 없이 수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여기 과수원 좀 둘러봐도 될까요?

- 그럼요. 산책길이 있으니 편하게 둘러보세요. 그런데 지금 길이 조금 미끄러우니까. 되도록이면 블록을 벗어나지는 마세요. 내려가시다 보면 우측으로 빠지는 길이 있는데 그곳은 아직 정비 중이라 조금 험해요 그곳만 빼고는 편하게 둘러보시면 돼요.


윤성은 처음 과수원을 와봤기에 이곳저곳이 궁금했다. 짐을 풀면서 창문 밖의 노을이 꽤나 멋졌기에 산책을 해보고 싶었다.


과수원이라 해도 산책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사과나무에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보니 또 도심 속의 가로수와는 다른 생명력이 느껴졌다. 천천히 거닐며 산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과나무라 그런지 묘하게 사과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새로 돋아나는 어린잎들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작고 어린잎들이 한겨울의 혹한과 바람을 견디어냈다고 생각하니 대견하다.


- 오빠 저기 오른쪽길 가시지 말라고 말씀드렸지?


수인은 엊그제 그 길에서 크게 넘어진 것이 떠올랐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며 푹신 거리기도 또 쉽게 미끄러지기도 했기에 내심 불안했다. 해진 앞에서 온갖 우스꽝스러운 몸개그란 몸개그는 다 펼치고도 철퍼덕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직도 꼬리뼈가 얼얼하다. 수인은 그때의 충격이 가시지 않는 듯 허리와 엉덩이를 문질러보았다.


- 그럼 설명드렸지. 저기 아래 보이네.. 봐봐.. 우측으로... 어! 오른쪽길로 가는데? 어? 저기요!~ 그 길로 가시면 안 돼요!! 손님!!

- 앗!!!

해진이 큰 소리로 손님을 불렀지만 손님은 아랑곳 않고 오른쪽길로 발걸음을 옮겼고, 아니나 다를까 크게 손을 휘저으며 중심을 잃는 모습이 모였다.

- 아이코


수인은 손님이 넘어지는 순간, 마치 자신이 넘어졌던 때처럼 비명을 질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해진과 수인은 둘 다 자리에서 벌떡 일러나 아래로 잔걸음을 옮겼다. 언덕의 내리막은 더 위험했기에, 마음은 급했지만 조심히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 괜찮으세요?

- 아고고.... 길이 꽤나 미끄럽네요.. 아고 엉덩이야. 미리 이야기 좀 해 주시지...


남자는 히필 얼음이 녹아 진흙탕이 된 곳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주변에 큰 돌은 없어 크게 다치지는 않았겠지만, 하필이면 진흙탕이라 옷은 살릴 겨를이 없었다.


- 네?? 안 그래도.. 아까..

- 어디 불편하진 않으세요? 저도 엊그제 여기서 크게 넘어졌어요. 출입금지 팻말을 준비하고는 있었는데.. 괜찮으세요?

- 네... 뭐... 옷만 좀 버렸어요. 아고. 참...


윤성은 꽤나 아끼던 옷이 진흙 범벅이 되자 짜증이 솟구쳤다. 괜히 시골로 여행을 왔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산책해도 된다던 남자 스탭에게 서운함이 피어올랐다.


- 뭐 괜찮아요.. 그런데 앞으로는 손님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셔야겠네요. 조심해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 같은 곳을 좀 제대로 안내해 주셔야겠어요. 그것도 서비스의 범위 내에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애들이나, 어른들이 여기서 넘어지면 크게 다치겠어요. 그나마 저였기에 이 정도인 것 같네요. 암튼 뭐 신경 좀 쓰셔야 할 것 같아요.


애써 짜증을 삼켜가며 좋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는데, 남자 스탭의 얼굴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읽고는 못 알아들은 것 같아 한 마디를 덧붙였다.


- 왜요? 제가 뭐 잘 못 말씀 드렸나요? 이런 길은 미리 가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는 게 맞는 거 같은데... 뭐.. 시골은 다 이런 건가. 아고 허리야...


옆에서 여자 스탭도 눈이 똥그래지며 무어라 이야기하려 하는데 남자 탭이 여자 스탭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 네 알겠습니다. 여기 출입금지 팻말이랑, 길 정비를 빨리 처리할게요. 죄송합니다. 혹시 불편하신 곳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일단 저희랑 같이 올라가세요. 숙소에 제 옷이 있으니 일단 그거로 갈아입으시면 옷은 저희가 세탁해 놓을게요.


윤성은 지금이라도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다. 집 안의 폭신한 소파가 그리웠고, 아끼는 옷이 더러워져 짜증도 났지만 이미 어둑해지는 길에는 차가 쉽게 잡힐 것 같지도 않았다. 그나마 코끝에 스치는 아득한 사과향에 윤성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네.. 그래주세요..


윤성을 짜증 가득한 몸짓으로 다리의 진흙을 탁탁 털어가며, 비탈길을 올랐고, 해진은 무언가 한 마디 하려 쫓아가는 수인의 팔을 잡았다. 수인은 소리 없이 왜 그러냐며 해진에게 입모양으로 항의했지만 해진은 그냥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수인을 말렸다.


- 어휴 답답해..


수인은 손으로 자기 가슴을 퉁퉁 치며 통통 거리는 발걸음으로 윤성의 뒤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해진은 혹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게 없어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언덕 아래는 해진의 발걸음을 마지막으로 어둠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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