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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민박집

제 11화. 가장 외로운 빈자리는 내 옆이었다.

by 성준

일터로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운 사람이야 많지 않겠지만, 민우의 발걸음은 유난히도 무거웠다. 일을 생각하기만 해도 머리가 멍하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가지 말까?' 생각하다가도, 그런 생각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겼다.


현장에 가까운 사거리에 신호가 걸렸다. 이 신호만 통과하면 오늘의 현장이 보인다. 민우는 급 우울함이 밀려들었다. 이제 익숙해져 몸은 고되지 않다. 견딜만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일을 생각할수록 기운이 빠졌다. 일을 마치고 나면, 의뢰인들의 감사하다는 인사에 보람을 느낀 적도 많았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런 감사 인사에 타성적으로 답례를 하는 자신을 깨달았다. 그때 문득 자신이 방치해 둔 빵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단단해지고, 찢기지 않고, 말라가는 그런 빵조각이 된 것 같았다.


민우의 직업은 '특수 청소부'다. 보통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에서 주로 일을 한다. 그리고 주된 현장은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 현장이 많다. 늦게 열린 문 안, 뒤섞인 냄새와 어지러운 흔적들 사이로, 제때 오지 못한 전화 한 통이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는 것. 고독사란 그런 것이다.


민우는 아직도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선배들로부터 몇 번을 듣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생각했음에도, 현장 근처에서부터 맡을 수 있는 그 냄새는 지금까지 잊히지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몇 주를 방치한 듯한, 단내와 쇠비린내가 겹겹이 눌린듯한, 익다 넘어진 과일의 알코올 기운과 암모니아의 냄새가 쌓이고 쌓인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문을 열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도 그 냄새는 묘하게 발목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벽지와 섬유에 스며들어, 피부에 들러붙어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냄새라기보다 한때의 온도가 부패하여 남긴 그림자 같았다.


그 냄새 때문에 몇 번이나 화장실 변기를 잡고, 토하고, 또 그 냄새에 토하기를 반복하며 첫 현장을 마친 기억은 아직도 어제일 같다. 그 냄새가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에는 이제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마지막 온도를 상상하며, 그 흔적을 치워 나갔다.


지병이 있었는지, 정수기 근처의 한아름이나 되는 약봉투가 있는 곳도 있었고, 그만큼 술병이 뒹구는 현장도 있었다. 주변에 폐가 되지 않고자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해 준비를 하셨던 분도 있었고, 부지불식간에 겪은 마지막에 미쳐 치워지지 못한 저녁상을 마주한 현장도 있었다. 공통점이라면 외로운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봐줄 사람이 없었던, 혹은 폐가 되기 싫어 소식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어떤 현장이라도 오랜 시간이 흘러 발견된 까닭에 그 냄새는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외로움이 냄새를 더 끈적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민우는 현장을 청소하던 날이면, 쉽게 잠을 자지 못했다. 냄새도 냄새지만, 사람이 살아온 흔적들을 지우고 치우는 일이 가슴 아프다 느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인생을 지우는 일인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현장은 아무나 쉽게 치워 낼 수 없기에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작은 자긍심을 잃지는 않았다. 그래서 현장을 하나 정리할 때면 조용히 고인의 삶을 기리며, 좋은 곳으로 가시길 남몰래 기도하곤 했었다.



- 민우 씨 이제 제법 익숙해졌지?

- 예? 그럼요 이제 제가 몇 년 찬데요.

- 그치? 처음 왔을 때 변기 잡고 왝왝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제법 꾼이 다됐어. 아주. 이제는 민우 씨 없이는 현장도 안 돌아가

- 그럼요. 이제 저 없으면 여기 3일은 더 해야 정리돼요. 그니까 월급 좀 올려주세요!

- 어디 보자. 저기는 다 치웠나? 여보세요?? 안 들려?


실장님과 작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던 민우는 자신의 월급 인상 이야기를 피해 딴청피우는 실장을 흘겨보며 손을 바삐 움직였다. 본인이 생각해도 자신이 없으면 이제 현장은 몇 배는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 어이 막내야 괜찮아?


자신 대신 변기를 부여잡고, 왝왝 토하고 있는 신입을 보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짜식 나도 그랬다. 너도 곧 익숙해질 거야. 하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 오늘도 고생했어. 그럼 다음 일정 잡히면 연락 줄 테니까. 오늘은 모두 들어가 깨끗이 씻고.

- 저... 팀장님은 괜찮으세요?

- 응? 뭐가? 익숙해졌지. 나도 처음에 그 냄새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 아... 그것도 그런데.. 사람들이요.

- 응? 뭐가?

- 그냥 청소하다 보니까.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떠났는지 자꾸만 눈에 밣혀서요. 냄새가 심해서 들어오시지는 못하지만 문밖에서 훌쩍거리고 계시는 가족분들 보면, 전 왜 그렇게 자꾸 눈물이 나는지 그것 때문에 우울증 올 것 같아요. 죽음이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는 건가. 제가 너무 어리게만 자라왔는지 싶기도 하구요.

- 아... 그거.. 지나면... 괜찮아. 다 괜찮아져..


민우는 뒤통수를 쾅하고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민우는 유족의 울음소리도, 고인의 남겨진 삶에도 큰 관심 없이 그저 묵묵히 치우고, 정리하는 데만 신경을 집중했었다. 더 이상 냄새에 고생하지도 않았고, 죽음에 대한 우울함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한 채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우는 문득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고인에게 나지막이 전했던 인사말을 떠올렸다.


' 제가 깨끗하게 정리해 드릴게요. 더 이상 외롭지 않게, 이제 행복하게 떠나세요. '


언제 마지막으로 인사했던가. 민우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현장에 도착하면, 어느 짐을 먼저 치우고, 어느 곳부터 처리해야 효율적으로 깔끔하게 이 공간을 비워나갈지에 대해서만 정신을 집중해 왔다. 이제 고인의 흔적과 삶은 정리해야 할, 치워야 할 대상처럼 바라보았다. 이제 민우에게 죽음과 이별은 더 이상 안타까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이별이 익숙해져서가 아닌 그저 한 발 멀어져 바라보게 되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그저 당연한 일중의 하나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였다. 민우는 스스로가 식탁 위의 말라버린 빵이 된 것 같다고 느껴진 것이다. 수분이 모두 말라 썩지도 않으면서, 단단하게 굳어 버린 빵 조각들. 자신이 그 모습을 닮아 간다고 느껴졌고, 그때부터 민우는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 민우 씨, 혹시 고향이 충청도야?

- 예 충북 OO시예요.

- 어머님은 잘 계시고? 양친 모두 잘 계신가?

- 아버지는 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잘 계시죠, 구정에 찾아뵈었었죠.

- 그래... 전화는 자주 드리고 있지?

- 뭐. 무소식이 희소식이죠. 자주 해야 하는 데 잘 못해요.

- 그럼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드렸어?

- 에이 뭘 자꾸 그런 걸 물으셔. 근데 갑자기 실장님이 저희 어머님은 왜요.

- 아냐... 그나저나 뭐 전화 온 데는 없지? 경찰이나 어디서나...

- 아 정말 답답하게 왜 이러실까? 무슨 일인데요


실장과 전화하는 도중에 다른 전화가 들어왔다.


- 실장님 잠깐만요 나 전화가 오네요 나중에 통화해요, 여보세요?

- 네 민우 씨 전화되십니까? 여기는 OO시 OO경찰서입니다. OOO님 아드님 되시나요?

- 경찰서요? 왜요?

- 이런 말씀드리기 안타깝지만, 고향댁에 한 번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XX 병원 영안실로 오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3일 전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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