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부산함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차에 시동을 걸고 비로소 한숨을 내쉬어 본다.
오늘의 목적지는 네비를 맞춰보지 않아도 되는 익숙한 길. 어느 정도 걸릴지, 어느 구간이 막힐지도 머릿속에 다 있다. 막힘없는 길을 달려도, 마음이 뻥 뚫리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구간을 기어가도 속이 답답하지 않다. 머릿속을 최대한 비우고 도착해야 할 곳을 그리며 타성에 운전을 한다.
차를 타기 위해 내려온 지하 주차장은 꽤나 싸늘했고, 창밖으로는 마지막 낙엽들이 바람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랬다. 이 계절이었다. 기온이 영하에 다다를 무렵, 온기가 떠나간 자리에 싸늘함이 피부를 훑어 갈 무렵 바로 이 계절이었다. 누구에게나 계절의 흐름과,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는 시기가 있다면, 나는 기온이 떨어지는 이 무렵이 그렇다.
싸늘한 기온에 소름이 돋을 정도가 되면, 그날의 기억이 몽글몽글 살아난다.
동생이 떠난 그때, 아니 그보다는 동생을 찾은 그때의 날씨와 온도와 기온이 이랬다. 피부를 뚫고 소름이 돋아나는 것처럼, 그때의 기억은 기억의 딱정이를 뚫고 나를 그 계절로, 그 시기로 끌어내린다.
동생은 바로 이런 계절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런 날씨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내가 두 어시간을 운전해 도착한 그곳은 동생이 잠들어 있는 곳. 납골당이다. 평일의 납골당은 그 이름만큼이나 정적과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동생이 좋아하던 음료수와 간식거리와 소주 한 병을 샀다. 생전 동생을 지키지 못한 형이 무엇이 당당하여 근사한 제사상을 차릴까 싶었다. 그것조차 미안했기에 그저 동생이 좋아하는 몇 가지만을 챙겼다.
편의점 주인은 그저 어떤 중년 남자의 낮술거리라 생각했으리라. 그저 동네 아저씨의 간식거리라 여겼을 것이다. 나는 그것들은 하얀 편의점 비닐봉지에 들고 덜렁덜렁 동생을 만나러 이곳에 왔다.
작은 소반에 소주잔을 채우고, 동생이 좋아하던 파란색 음료를 채우고, 항상 동생 손에 있던 소시지 두어 개를 접시에 담아 소반을 채웠다.
소박하다를 넘어 빈곤해 보여 조금은 부끄럽지만, 지금 와서 거창한 상차림을 한들 동생이 일어나 즐기기나 할까. 그냥 하얀 종이컵에 차가운 소주와 내 부끄러움도 담아 채웠다.
오늘은 눈물짓지 말아야지. 오늘은 담담하게 인사만 하고 가야지 하던 다짐도, 동생의 납골당에 붙여진 빠알간 꽃들을 보며 또다시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누군가 다녀갔구나. 아직 누군가 동생을 추억하며 인사를 하러 오는구나, 고마웠고 미안했다.
유리 안의 하얀 도자기에 적힌 생일과 마지막 날을 천천히 쓸어보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동생은 그들보다 2-30년은 늦게 태어났다. 2-30년 늦게 태어난 동생은 그들과 비슷한, 어쩌면 그들보다 먼저 이곳의 터줏대감이 되어있기도 했다. 동생 대신 내가 억울했다. 괜히 내가 억울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되뇌어봐도,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내가 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마음에 눈물이 솟았고, 한 번 솟아난 눈물은 다시 넘치고 넘쳐 소리 죽이는 흐느낌으로 변했다. 곧 어깨마저 들썩거리며 한 바탕 억울함을 쏟아 내었다. 정작 저 안에 누워있는 건 너인데, 내가 억울하다 몸부림을 쳤다. 정작 너는 소리 없이 담담하게 저곳에 머물고 있는데. 살아있는 나 혼자 억울합니다 소리쳤다. 미안하게.
어느 정도 쏟아낸 눈물에 가슴속 무언가 쓸어내려갔다. 나 혼자 슬프고, 억울하고, 울고 또 후련해하고 있었다. 내 속은 조금 가벼워졌지만, 너의 무게는 단 1g도 줄지 않았다. 너는 지금도 그때도 같은 무게로 그 자리에 말없이 누워있었다. 나 혼자만 후련하다 위안 삼았다. 비겁하게도.
그렇게 너를 만난 건 채 10분이 되지도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너를 만나기 위해 두 어시간을 운전했지만 나는 억울하지 않다. 내게 그 두 시간은 10분 보다도 짧았고, 그 10분은 두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너를 보낸 10년이 짧았던 만큼, 아니 그 시간보다 내가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너와 나의 시간은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네 시간이 거기에 멈춰있기에.
나의 10분이 오늘 두 시간보다 길 수 있었다.
너는 잘 있지? 이제는 평온하게... 이제는 평온하기를 바라도.. 나 괜찮지 않을까?......
또 올게.
바보처럼 또 똑같은 말들만 반복하겠지만, 너의 시간이 그곳인 이후로 나는 너에게 어떤 새로운 말도 할 수가 없구나. 그럼 그날도 또 너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겠지만,
그때는 나도 조금은 평온해져 볼게. 조금은 더 씩씩해져 볼게. 조금은 더 단단해져 볼게. 그때는 꼭 그럴게...